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제이컵 솔 지음·정해영 옮김·전성호 부록 메멘토·2만200원
돈의 흐름을 기록하는 일, 즉 회계의 역사는 돈의 역사만큼 뿌리 깊다. 도로를 건설하건 전쟁을 하건,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도자들은 국가의 자산을 추적하고 정치를 관리하기 위해 회계에 의존했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개인적 회계기록을 바탕으로 <업적록>을 썼다. 안토니우스의 예처럼 부실한 회계기록을 남겼다는 것은 정치인들이 공격받는 이유가 됐다. 1300년 무렵 이탈리아 북부에서 등장한 복식부기는 오늘날 회계학의 근간이 됐다. 이때 만들어진 ‘대차균형’이라는 개념은 행정부나 기업의 지도자들에게 재무적·정치적 책임성을 묻고 심판하는 중요한 근거가 됐다. 회계의 발달과정은 재무적 책임을 묻고 맡기는 과정의 발달과정이나 다름 없었다.
책은 회계를 매개로 인류의 문명사를 탐구한다. 르네상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700여년에 걸친 회계의 역사를 살펴보며 재무적 책임성을 달성하기가 왜 그토록 어려운지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15세기 피렌체의 메디치가는 복식부기를 통해 은행업에서 성공해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회계 기록을 제대로 하지 않아 결국 피렌체 공화정 자체의 경제적 쇠퇴에 일조했다. 17세기와 18세기에 유럽의 전제군주들은 지출을 제약하는 정확한 부기가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에 의문을 던지도록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정직한 회계를 피했다.
실제로 루이 16세의 재무총감 네케르가 1781년 왕실의 장부를 공개했을 때 대중은 폭발했고, 이것이 프랑스 혁명의 불씨를 댕겼다. 19세기에 투명한 회계가 마침내 뿌리를 내렸을 때 영국은 세계 제국을 건설했다. 재무 책임성 메커니즘을 설계한 초기 미국도 도금시대에 악덕 자본가, 대규모 분식회계, 재정 스캔들과 함께 재정위기에 빠졌다. 재무 책임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달성하기 힘들다. 이는 기업 차원에서건 정부 차원에서건 마찬가지다. 회계를 조작해 오용하고 싶은 욕망 또한 회계의 역사만큼 뿌리 깊다.
책은 어째서 책임성 있는 회계가 그 어느 때보다 필수적인지를 보여준다. 부록으로 ‘한국 전통 회계는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더해 개성 상인의 회계 기술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해 독자들을 더욱 즐겁게 한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