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일부터 3일 동안 파도가 치는 바다를 그린 200개의 캔버스와 테라코타와 레진으로 만든 2개의 별이 산산조각난 채 광주 곳곳에 흩어졌다. 공원과 아파트 단지, 주택가 뒷골목에 버려졌고 어떤 것들은 우편함과 대학 캠퍼스, 시장에 던져졌다. 그림은 아무 설명 없이 버려졌지만 부서진 별의 파편들에는 그것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 위에 뭔가를 쓰거나 그려서 반송해달라는 안내문이 첨부되었다. 20일 뒤, 지역 신문에 분실공고를 냈다. 돌아온 것들은 작품이 된다. 돌아오지 않은 것들의 빈 자리와 함께.
안규철 작가는 7일 개막한 제9회 광주비엔날레에 ‘그들이 떠난 곳에서(From Where They Left)’를 출품했다. 바다 그림은 빈 자리가 그대로 남아있지만 별 조각은 빈 자리에 석고를 채웠다. 별에는 조각을 돌려보낸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가는 “몇 개의 파편이 돌아오고 몇 개가 실종상태로 남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광주라는 도시 속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 하나의 이야기로, 하나의 기억으로 남는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 작품을 두고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은 “실종된 작품들로 80년 5월 광주민주항쟁을 예술로서 상징화했다”고 평했다.
제9회 광주비엔날레는 40개국 출신 92명의 작가와 작가그룹이 모두 300작품 1500여점을 선보인다. 새롭고 실험적인 예술을 소개하는 비엔날레답게 전체 작품 중 60%는 신작들로 채워졌다. 다양한 담론의 생산을 위한 평등하고 열린 대화를 뜻하는 ‘라운드 테이블’을 주제로 했다. 아시아 출신 6명의 여성감독들이 공동감독을 맡아 각기 다른 소주제로 작가를 선정했다.
개인과 집단,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간의 경계를 탐구해온 서도호는 ‘탁본 프로젝트’를 출품했다. 용도가 폐기되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장소의 벽과 창문 등 공간과 사물에 남겨진 흔적을 색연필이나 목탄을 이용해 종이를 대고 문질러 기록하는 작업이다. 구 광주가톨릭대학교 기숙사였던 공간과 광주극장 옛 사택의 내부공간이 탁본으로 떠져 전시장으로 옮겨졌다. 서도호의 ‘틈새호텔’도 구경거리다. 봉고 트럭을 개조한 1인용 호텔이다. 비엔날레 기간 중 광주 도심 곳곳을 이동하며 추첨을 통해 무료로 운영된다. 작가는 “광주를 방문하는 타지인의 입장에서 디자인을 했다”면서 “광주 시민들도 자기가 사는 곳을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러시아 미술가 그룹인 ‘취토 델라트?’는 오페라 같은 뮤지컬 드라마인 ‘타워 송스필’을 보여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403m 높이의 ‘가스프롬 타워’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부당이득을 노리는 관료, 정치인, 신부, 갤러리 운영자, 미술가들과 이를 반대하는 노동자, 예술가, 지식인들이 서로 돌아가며 관객들에게 대사와 노래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호주 작가 벤자민 암스트롱의 ‘마법사들’은 의인화된 나무와 식물의 뿌리가 전시공간 아래로 뻗어나가는 모양을 형상화했다. 얇게 썬 나무들을 강철 지지대에 끼워 붙였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생명체가 춤을 추듯 서 있는 듯하기도 하고, 인삼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경원, 전준호 작가는 이번 광주비엔날레 ‘눈(Noon) 예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눈 예술상’은 광주비엔날레가 지향하는 가치와 전시 주제에 부합하고, 창의적이며 실험정신이 뛰어난 작품을 출품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팀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영상작품 ‘세상의 저편, 2012’에서 급격한 기후변화로 변해버린 미래의 환경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에 관한 이야기를 펼쳤다. 작품은 100년 뒤의 세계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 모습을 통해 현재를 반성하고 되묻는다. 비엔날레는 11월 11일까지 이어진다. 어른 1만1000원. (062)608-4221.
주영재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