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계속 ‘질문’을 한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픽사베이

픽사베이

“(해당 언론은)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야 정의를 세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회사 입장을 반영해주지 않았습니다.”

“(언론이) 약자 입장을 보도하는 것이 훨씬 자극적이고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어서 회사 입장을 보도해주지 않았다는 취지인가요?”

“네. 그런 취지입니다.”

SPC그룹의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 탈퇴 종용’ 재판의 한 장면이다. SPC그룹 홍보담당 전무가 증인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SPC 측 변호인단 질의에도 수긍했다. 수많은 진술 중 유난히 이 대목에 생각이 머문 까닭은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어서다.

‘약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소수자’의 목소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왜 소수자의 목소리에 주목할까? 내 생각은 이렇다. 소수자들도 목소리가 있음을 공론장으로 가져와 알리는 ‘스피커 역할’이 곧 언론의 책무여서다. 다수의 목소리는 다양한 창구로 곧잘 전달된다. 자본을 업은 기업이라면 더 그렇다. 회사 견해를 담은 입장문부터 언론 인터뷰 등까지 다양하다. 공식 채널로 나온 사측의 입장을 언론이 무시하기란 어렵다. 소수자에 대한 보도는 언론으로선 더 검증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당위성이 있어도 그걸 보도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인 셈이다. 정의를 세운다고 생각해서라거나 자극적이어서 약자,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보도한다는 논리는 그래서 참으로 빈약하다.

SPC 재판에선 사측이 언론 대응을 위해 어떻게 나섰는지가 낱낱이 드러났다. 복수 노조를 이용해 사측의 입장을 마치 노조의 입장인 것처럼 알리는 식이다. SPC 측은 이러한 행위가 “보도 균형을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특정 사안에 관한 내용을 언급했지만 최근 들어 ‘내편 네편’을 가르는 말로 ‘가짜뉴스’가 오염돼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불순한’ 목적으로 허위보도가 이뤄졌다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의심에서 그치지 않고 수사가 이뤄지고 재판으로까지 이어지는 건 꽤 생경한 장면이다. 이런 틈을 비집고 사건 관련자들의 말은 계속 뒤바뀌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마구 퍼진다.

믿고 싶은 것만 보는 틀 안에는 참과 거짓, 사실과 의견, 진실이 한 데 뒤섞여 있는 듯 보인다. 언론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 자문해 본다. 영화 <트루스>(Truth·2015)는 미국 방송국 CBS 뉴스프로그램팀이 미국 부시 대통령의 군 복무 비리 의혹 사건을 다루면서 오보 논란 등에 휩싸이고, 이를 해명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들이 ‘우리가 잘 가고 있는 걸까’ 의심하며 흔들릴 때 선배 언론인 댄(로버트 레드포드 분)이 말한다. “질문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야. 어떤 이들은 쓸데없는 일이라 하고, 어떤 쪽에서는 늘 우리더러 편파적이라고 하겠지만, 우리가 질문을 멈추는 순간 패배하는 것이네.”

이 지점에서 나는 언젠가 세월호 유가족이 말한 “관심이 곧 진실입니다”를 대비해 본다. 그리고 스피커가 닿아야 하는 지점에 관심을 기울여 질문하고, 기록하는 걸 멈추지 말아야겠노라 다짐한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꼬다리바로가기

이미지
용산의 역경루
오늘을 생각한다
용산의 역경루
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