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저녁만 자고 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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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기자

이효상 기자

“누구든지 높은 사람들이 와서 하루 저녁만 자고 갔으면 좋겠어.”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으로 고통받고 있는 인천 강화군 당산리와 경기 파주시 대성동마을 주민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하루 종일 소음에 시달리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지만 접경지역 밖의 그 누구도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외로움, 절망감이 느껴졌습니다.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처음 소음을 접한 것은 파주에서 민간인 출입이 가능한 지역 중 가장 소음이 잘 들린다는 오두산전망대에서였습니다. 강 건너 북한땅에서 전투기가 이착륙하는 듯한 나지막한 소음이 들려왔습니다. 귀를 기울이면 거슬릴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튿날 당산리에 가서야 보통 일이 아닌 걸 알았습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소리가 귓전을 울렸고, 마을 어디를 가든 소리가 따라왔습니다.

층간소음으로 살인도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최고소음이 주간에는 57㏈, 야간에는 52㏈을 초과할 때 층간소음으로 봅니다. 그런데 이들 마을에서는 70~80㏈ 이상의 소음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 울립니다. 할머니부터 아이들까지 잠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두통약이나 수면제를 먹고, 때때로 환청도 듣는다는 주민들의 얘기가 전혀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이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정부는 이 고통을 들여다보고 공감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잠깐이라도 우리가 먼저 멈춰보자’라는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고, 접경지역에서 북한을 상대로 한 심리전도 지속할 것임을 재확인했습니다.

대신 정부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소음 피해를 보상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습니다. 한 당산리 주민은 “정치하는 분들이 오셔서 보상 얘기하길래 저는 10억원 달라고 했어요. 제가 그 돈을 받고 싶어서 그러겠어요? 소리를 꺼달라는데 돈 얘기를 꺼내니까, 10억원 주면 저 소리 듣고 살겠다고 화나서 얘기한 거죠”라고 했다.

국민 국가의 주권은 내부의 질서를 수호하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는 권한일 것입니다. 정부가 남북 대결에 골몰해 주권 행사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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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역경루
오늘을 생각한다
용산의 역경루
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