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 가는 쓰레기 처리장…노동환경도 지하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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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매립 금지 앞두고 지자체들 너도나도 지하 처리장 추진

악취·소음·분진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동자들은 ‘반대’

경기 하남시 유니온파크의 지상에는 공원이 조성돼 있고(위), 지하에는 폐기물 처리시설이 있다(아래). 이혜리 기자

경기 하남시 유니온파크의 지상에는 공원이 조성돼 있고(위), 지하에는 폐기물 처리시설이 있다(아래). 이혜리 기자

그저 도심 속 공원의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푸른 잔디가 깔려 있고 잘 관리된 나무가 곳곳에 있었다.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놀고 유아차를 끈 여성은 유유히 산책했다. 지난 7월 26일 오후 경기 하남시의 유니온파크에 처음 갔을 때 기자의 눈에 보인 풍경은 그랬다.

유니온파크 아래 지하로 내려가니 전혀 딴판의 장면이 펼쳐졌다. 이곳 지하엔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 재활용 선별장, 소각장, 하수처리장 등의 폐기물 처리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이 있는 지하 4층에 들어서자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1급 방진마스크를 썼지만 악취는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지하라 창문은 없다. 천장에 환기시설로 보이는 기구가 달려 있지만 온갖 음식물이 뒤섞이고 썩으면서 풍기는 냄새를 없애주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여름 햇빛이 강렬한 바깥과 달리 이곳 지하는 전반적으로 어두컴컴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파쇄하고 건조하는 기계가 쉴 새 없이 웅웅거렸다. 소음이 워낙 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10분가량 내부를 돌아보자 땀이 줄줄 흘렀다. 온도계의 바늘은 50도를 가리켰다. 설치된 선풍기에서는 더운 바람이 나왔다. 파리가 얼굴과 몸에 달라붙었다. 이곳은 폐기물 처리 노동자들의 일터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최근 몇 년 사이 너도나도 폐기물 처리시설의 지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아파트값 하락, 건강 피해 등을 이유로 폐기물 처리시설이 자신의 집 근처에 들어오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는 상황에서 지자체들이 궁여지책으로 땅속에 시설을 넣어 시민들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유니온파크는 그나마 지하 처리장의 모범사례로 꼽히지만, 직접 지하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입을 모아 “지하 건설은 반대”라고 말했다.

지하 처리장 건설에 불이 붙은 것은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생활폐기물을 땅에 묻는 ‘직매립’이 서울·수도권은 2026년부터, 그 외 지역은 2030년부터 금지되기 때문이다. 이 법은 또 관할 구역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해당 관할 구역의 시설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생활폐기물의 발생지 처리 원칙’이다. 그래서 각 지자체는 소각장 등 폐기물 처리시설을 추가로 지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경기 하남시 유니온파크 지하 2층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 내 저장조(호퍼)의 모습/ 이혜리 기자

경기 하남시 유니온파크 지하 2층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 내 저장조(호퍼)의 모습/ 이혜리 기자

“불났을 때 지하에서 어떻게 도망갈까 걱정”

지하 처리장 건설에 노동자 안전 등 노동환경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게 문제다. 화재나 폭발, 붕괴, 홍수 등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기 어렵다는 게 지하 처리장의 가장 큰 위험으로 지적된다. 높은 온도에서 가동하는 기계가 다수고 불이 붙을 수 있는 쓰레기가 많아 자칫 잘못하면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는데도 환기시설은 충분치 않은 사례가 빈번하다. 유니온파크에서 일하는 50대 노동자 A씨는 “화재 때 대피하는 게 제일 무섭다”며 “소방훈련을 하고 있지만 불이 나면 지하에서 도망을 가야 하는데 다 죽는 것이 아닐까 항상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바깥에선 여기 지하에 폐기물 처리시설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지만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각종 위험이 도사리는 최악의 조건”이라며 “어떤 것이 위험하다, 어떤 것이 안 위험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게 다 위험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 상태”라고 했다.

환기 문제도 크다. 각종 쓰레기가 모여 있기 때문에 악취와 먼지 발생이 심하고, 가스 유출의 가능성도 있지만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환기시설이 미흡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여러 조사자료에서 나타난다. 소각장의 다이옥신과 중금속 발생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2021년 산업안전보건공단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소각장 노동자의 혈중 다이옥신 농도가 인근 지역주민보다 약간 높았고, 우울 위험군 비율도 일반 인구와 비교해 높았다.

2020년 서울 마포구의 자원회수시설에서는 17년가량 일한 노동자가 소뇌위축증으로 인한 스트레스, 장기간 야간근무에 따른 수면장애와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전국환경노동조합이 파악한 서울시내 심각한 산업재해만 7건이다. 병명은 혈액암, 악성 뇌종양, 뇌경색 등이다. 큰 소음 속에서 노동자들은 두통과 어지러움, 이명을 느끼고, 햇빛을 보지 못해 비타민D 부족 증상을 겪고 있다. 유니온파크의 경우 회사가 비타민D 주사를 제공할 정도다. 그런데도 지자체와 주민협의체 간 지하 처리장 건설 논의에 노동자들은 빠져 있다.

지자체들이 혐오시설에 대한 오해를 적극적으로 해소하기보다 지하 처리장 건설로 시민들 반발을 무마하려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준호 환경노조 하남지부장은 “보기에 좋으니까 지하에 처리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상 내부는 아름답지가 않다”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생각을 해줘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이 지부장은 “소각장 관련해서는 정기적으로 다이옥신 검사가 이뤄지고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도 매연이 아니라 무연이라는 점 등 오해가 있는 부분도 있다”며 “지자체가 이런 오해를 풀고 폐기물 처리의 장점을 홍보, 설명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침묵하고 감추는 방식으로 지하 처리장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의 한 자원순환공원 재활용 선별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서울의 한 자원순환공원 재활용 선별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위탁업체 바뀔 때마다 ‘3년 프로젝트 계약직’

근본적으로 쓰레기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 자원을 어떻게 재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하 처리장 건설은 특정 지역의 희생으로 축소되기도 한다. 서울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2022년 마포구에 소각장을 추가로 짓겠다고 발표했는데 주민들이 백지화를 주장하며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은 마포·강남·양천·노원구 네 군데에 소각장(자원회수시설)이 있다. 은평구 등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자치구는 이 4개 시설을 공동으로 이용한다. 사실상 쓰레기 처리를 다른 자치구에 맡기는 것이지만 소각장 건설에 있어 나머지 자치구들은 ‘우리 지역만 아니면 된다’로 일관한다. 마포구 주민들에게도 ‘보상 없는 희생’으로만 여겨져 갈등 해소는 요원하다.

민간위탁 운영으로 인한 우려도 갈수록 커진다. 지하 처리장 건설의 결정은 지자체가 하고, 운영은 민간위탁 업체에 맡기는 구조에서 이에 따라 제기되는 안전, 고용 책임도 민간위탁 업체에 넘겨지기 때문이다. 폐기물 처리시설 노동자들은 민간위탁 업체와 이른바 ‘3년 프로젝트 계약직’으로 일한다. 민간위탁 업체가 위탁기간 종료로 바뀔 때마다 노동자는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연차, 퇴직금 등도 승계되지 않는다. 2019년 춘천시에서는 폐기물 처리시설 민간위탁 업체가 바뀌는 과정에서 4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노동자들은 지자체 직영을 요구한다.

박진덕 환경노조 위원장은 “지자체에 지역 주민은 시설 운영과 관련해 설득과 협의의 대상이지만 시설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그런 대상이 아니라고 여겨진다”며 “지자체는 (노동자의 안전 문제가) 자신들이 아니라 수탁사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 위원장은 “지하 노동환경의 문제가 노동자들에게 당장 발현되지 않더라도 점점 축적되면서 결국 건강에 이상이 생기게 된다”며 “일하다 아파도 수탁사가 바뀌면 다음 수탁사는 자기가 운영한 기간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며 책임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큰 문제”라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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