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인 2014년, 나는 기자로 일할 거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방송 뉴스나 신문은 거의 보지 않았다. 당연히 미디어를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해 4월 16일, 가라앉는 배에 탄 승객이 모두 구조됐다는 속보를 덜컥 믿어버린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많은 방송사가 한꺼번에 실수할 수도 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승객이 모두 안전하다는 이야기에 마음을 놓고 친구를 만나 놀았다. 그날따라 술집에 사람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뉴스를 보고서야 온몸이 아찔해졌다. 오래 남을 죄책감을 얻은 채 손에 잡히는 대로 기사를 읽었다. 필사적으로 사실을 파헤치는 보도들 틈에 사망자들의 ‘사망보험금’을 계산한 기사가 껴 있었다. 이진숙 보도본부장의 MBC였다. 그때의 MBC는 그 외에도 모두의 상처를 헤집는 보도를 여럿 내보냈다.
10년이 더 지난 2024년 7월 이진숙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돌아왔다. 그가 ‘MBC 세월호 보도 참사’의 주요 책임자였다는 걸 알게 되자 문득 궁금해졌다. 그는 그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세월호 참사는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공직자 검증 취재 과정에서 그의 생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22년 9월 그는 페이스북에 세월호 추모 물결을 두고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세력들이 노란 리본으로 온 나라를 뒤덮었다”며 “나라 앞날이 노랗다”라고 썼다. 이를 지적하는 질문에는 “공직자 임명 전 자연인으로서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한 것”이라고만 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폄훼하는 데 앞장섰던 극우 단체 ‘뉴라이트’ 관련 인사로부터 정치 후원금을 받기도 했다. 청문회에 나온 세월호 유가족은 “보도 참사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그의 사과를 받지 않았다. 청문회를 지켜본 많은 이들도 유가족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진숙의 불성실한 답변 자체가 놀랄 일은 아니다. 그가 ‘공영방송 이사 교체’라는 특수임무만 처리하고 떠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보다는 세월호 추모를 헐뜯고, 보도 참사를 깊이 반성한 적도 없어 보이는 이가 방통위원장으로 임명된 현실이야말로 가장 큰 참담이다.
한국사회는 세월호 참사에 ‘사회적 참사’라는 이름을 붙이고 우리 모두의 문제로 떠안자고 합의했다. 이진숙 임명은 그 공동체적 합의가 훼손되고 있다는 징후로 읽힌다. 징후는 이진숙뿐만이 아니었다. 인사청문이 한창 진행되던 지난 7월 25일, KBS는 생방송 뉴스를 진행하는 기자의 노트북에 붙어 있던 노란 리본 스티커를 편집했다. 석 달 전에는 KBS PD들이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준비한 다큐멘터리가 무기한 제작 중단됐다.
‘하인리히의 법칙’은 큰 사고가 나기 전 수십 번의 징후가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우리는 공동체적 비극을 바라보는 관점의 붕괴를 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난 10년 동안 ‘지겹다’, ‘그만하라’고 말해 온 이들에게 묻고 싶다. 이런데 어떻게 세월호를 지우냐고.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