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파워 강고한 로펌서 유리천장 깨고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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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원’서 업무집행 대표로 선출된 이유정 변호사 인터뷰

법무법인 원의 업무집행 대표인 이유정 변호사가 지난 7월 23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법무법인 원의 업무집행 대표인 이유정 변호사가 지난 7월 23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대법관 구성이 다양해져야 한다고 말해온 이유는 여성으로서, 소수자로서, 상대적 약자로서 경험을 해본 사람이 보는 시각은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대법원을 다양하게 구성해야 하고 그렇게 대법원은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곳이어야 한다.”

291명 중 19명. 1994년 사법연수원 23기 수료생 중 여성의 수다. 비율로 따지면 6.5%에 불과하지만 10명 남짓이던 그전보다 크게 늘었다며 당시 언론은 “우먼파워의 물결이 밀려든다”고 표현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여성 법조인 수 자체는 대폭 늘었다. 올해 변호사시험 합격자 중 여성은 43.6%, 전체 변호사 3명 중 1명은 여성이다. 그러나 ‘위’로 올라갈수록 여전히 여성은 부족하다. 대형로펌 대표직을 해본 여성 변호사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임원에 해당하는 파트너 변호사도 여성은 10명 중 1명 수준이다.

그런 점에서 법무법인 원이 지난 6월 30일 이유정 변호사(56·사법연수원 23기)를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같은 업무집행 대표로 선출한 것은 의미가 있다. 법조계에선 국내 20대 로펌에서 여성 업무집행 대표가 나온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분석한다. 법무법인 원은 변호사 수가 70명인 중견 로펌이다.

이 변호사는 2009년 논문을 통해 여성 변호사가 받는 성차별 문제를 제기했다. 호주제 폐지 소송, 성매매 선불금 무효소송 등 젠더 소송을 주도한 여성 인권 전문가이면서 현재 한국젠더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7월 23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원 사무실에서 이 변호사를 만나 업무집행 대표의 역할과 법조계 성평등에 대해 들었다.

-법무법인 원의 업무집행 대표가 됐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나.

“2009년 법무법인 원을 설립했고, 그때부터 재무·인사·홍보 등에 관여했기 때문에 경영업무는 익숙한 편이다. 다만 업무집행 대표는 법인의 발전 방향, 조직 운영의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해야 하므로 책임이 더 크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대를 많이 받고 있어서 더욱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

-여성 법조인 수가 늘었지만 여전히 대형로펌에서 여성이 대표를 맡거나 파트너 변호사가 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로펌에서는 나이, 경력, 매출이 많은 변호사가 대표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남성들이 대부분 대표가 된다. 대형로펌에서 업무집행 대표는 다 남성이고, 여성 파트너 변호사가 있기는 하지만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가시적인 성과와 실적을 올리고 법인을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남성 파워가 강고한 로펌에서 유리천장을 깼다는 점이 사회적 의미라고 생각하고, 다른 여성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도 있어서 그런 면에서도 중요하고 해야 할 일이 많다.”

-로펌 운영에서 주안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있나.

“로펌 고객들이 절차와 결과에서 모두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변호사의 전통적인 업무인 송무, 자문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후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이라면, 저는 사전적인 컨설팅으로 업무 범위를 넓혀가려고 한다. 기업 대표이사나 임원이 형사처벌을 받으면 기업활동은 물론 주주들과 이해관계인들에게 큰 피해가 발생한다. 그 전에 경영 과정에서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확인, 점검하고 예방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 로펌은 사업 기획부터 조직 운영 등 기업 경영 전반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역할을 하려고 한다.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손해배상 사건, 삼성가 상속 사건 등에서 좋은 성과를 낸 경험이 풍부하다.”

-인공지능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같이 법조계에서 떠오르는 이슈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하나.

“사회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려고 한다. 2020년에 인공지능 대응팀을 만들었다. 정부 용역사업으로 스타트업 기업 대상으로 법률 컨설팅을 진행했고, 데이터 구축 사업과 보이스피싱 방지 기술을 만드는 용역에 법률자문으로 참여했다. 요즘엔 EU(유럽연합) 인공지능법에 한국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사전 컨설팅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 전후로 ESG가 화두로 등장하면서 ESG센터를 만들었다. 컨설팅 회사와 협력해 컨설팅과 교육을 하고 있다. 초고령사회가 되면서 본인의 자산을 잘 관리하고, 사후에는 자녀들의 분쟁이 없게 상속계획을 세우고, 의미 있는 일에 기부하는 것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런 수요에 대응하는 헤리티지 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한다.”

법무법인 원의 업무집행 대표인 이유정 변호사가 지난 7월 23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법무법인 원의 업무집행 대표인 이유정 변호사가 지난 7월 23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30여 년간 여성 법조인으로 살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당연히 있었다. 사법연수원에 갔을 때 여성 연수생이 19명이었는데 그게 당시까지 최대 인원이었다. 한 조가 18명이었는데 여성 연수생이 19명이니까 여성조를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여성이라는 그룹으로 묶으면 특별 대우해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받는 쪽에서는 차별이라고 느낄 수 있지 않나. 여성들이 싫다고 해서 각 조에 1명씩 여성이 나눠서 들어갔다. 그만큼 여성이 특별했다. 1994년 검사를 처음 했을 때는 역대 9번째 여성 검사였다. 20대 중반이다 보니 ‘아가씨, 이 방에 검사님 어디 계세요?’ 이런 말을 수시로 들었다. 변호사를 하면서는 우리 사회가 워낙 친족이나 동창회, 지역사회 같은 전통적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게 많다 보니 여성이 그런 네트워크에서 소외되고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힘들었다. 기업에서 의사결정권을 가진 분들이 주로 남성이다 보니 미치는 영향도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

“1996년 변호사 개업을 했는데 그때는 여성 변호사가 많지 않았다. 여성단체들이 여성 인권 관련 소송을 같이하자고 요청했다. 호주제 폐지 소송에 공동변호인단으로 참여했고, 강금실 법무부 장관 때는 호주제 폐지를 위한 가족법 개정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때 개인별 신분등록제를 기반으로 한 호주제 폐지 법안을 만들었다. 성매매 선불금이 무효라는 판결을 받아낸 것도 기억에 남는다. 예전에는 포주한테 성매매 선불금을 받은 여성이 도망을 가거나 하면 사기죄로 처벌을 받았다. 그 돈 때문에 다시 잡혀가고 도망도 못 갔다. 대법원에서 무효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성매매 여성들이 포주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보람 있던 일이었다.”

-그동안 법조계는 얼마나 성평등해졌다고 생각하나.

“여성 비율이 높아졌고 여성 법원장, 검사장, 대법관, 헌법재판관 같은 고위직 숫자가 늘어나기는 했다. 육아휴직도 상당히 보편화했다. 그런 면에서는 내가 처음 법조계 입문했을 때보단 평등해진 것 같다. 그렇지만 여성의 임신·출산에서 비롯되는 차별이 없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고 재정적으로 가능한 로펌이나 공공기관에서는 육아휴직과 출산휴가가 보장되지만 개인사업자로 등록한 변호사이거나 소규모의 법률사무소에서는 마음 놓고 쓰기 어렵다.”

-대법관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 김영란 대법관이 한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취임하고 20년 됐지만, 현재 대법원장과 대법관 총 14명 중 여성은 3명뿐이다. 곧 교체되는 대법관 후보자 3명 중 여성은 어김없이 1명이다. 대법관 다양화는 왜 필요하다고 보나.

“법조계에서 여성 진출의 역사가 아주 짧다. 초반엔 한두 명, 아주 소수의 여성만이 법조인이었기 때문에 이분들이 법원 내에서 성장해서 대법관이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여성 대법관 1명에서 2명으로 가는 것도 굉장히 어려웠다. 내가 대법관 구성이 다양해져야 한다고 말해온 이유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입장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소수자로서, 상대적 약자로서 경험을 해본 사람이 보는 시각은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과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경험하지 않더라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 하지만 자기가 겪지 않으면 모른다. 그런 면에서 대법원을 다양하게 구성해야 하고 그렇게 대법원은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곳이어야 한다. 다양성은 올바른 결정을 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다. 여성 비율이 몇 퍼센트여야 평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직 부족하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6월 언론 인터뷰에서 대법관 제청 기준에 대해 ‘다양성보다는 실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조 대법원장이 다양성의 중요성을 간과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다이버시티 파워>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CIA(미국 중앙정보국)가 정치적 올바름이 아니라 실력이 우선이라는 명분으로 백인 남성을 위주로 직원을 뽑았더니 이슬람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9·11 테러의 조짐이 이미 나타났는데도 테러를 방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실력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가. 실력을 가르는 잣대가 성적인가? 달리기 시합이라면 빠르게 달리는 사람이 최고지만 복잡한 문제를 결정하는 데는 다양성이 필수적이다. 다양한 관점과 서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공유해야만 좋은 결론을 낼 수 있다고 본다.”

-최근 관심 갖는 젠더 이슈는 어떤 게 있나.

“인공지능 윤리와 여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인공지능 학습을 위해 기존 데이터(정보)를 활용하는데 성차별적인 데이터가 많다. 디지털 성폭력 등 인공지능 기술의 피해를 여성이 입기도 한다.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되고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도 범죄피해자는 왜 항상 여성인가, 기술 발전에 왜 여성의 안전은 반영되지 않는가에 대해 조금 더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가족 문제다. 전통적인 가족이 해체되면서 여성이 자유로워졌느냐고 하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돌봄의 의무는 여성에게 더 많이 전가되고 비정규직과 플랫폼 등 불안정한 노동이 여성의 몫이 된다. 이주여성의 차별 문제도 심각하다.”

-요즘 대형로펌들이 재단을 통해 공익소송 지원 등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업무로 여겨진다. 법무법인 원은 2013년 사단법인 선이라는 공익법인을 만들고 생태·환경, 여성, 아동·청소년, 난민 등 영역에서 왕성히 활동한다.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로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진정성 있게 계속해나가고 있다. 지구법 강좌의 경우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작해 9년째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그런 활동이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고, 로펌이 사회적 의제를 이끄는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로펌의 영향력은 매출액이나 변호사 숫자로만 판가름 나지 않는다.”

-꿈꾸는 세상이 있나.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은 가장 중요한 헌법적 가치다. 이를 위해서는 존중이 필요하다. 모두가 존엄성을 갖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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