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출산제를 둘러싼 우려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영아 유기·살해 예방 실효성과 아동 알권리 등 싸고 티격태격

지난해 7월 6일 서울 시내 한 구청에 마련된 출생신고서 / 연합뉴스

지난해 7월 6일 서울 시내 한 구청에 마련된 출생신고서 / 연합뉴스

지난 5월 30일 광주의 한 아파트 상가 화장실에서 출산 후 신생아를 변기에 유기해 사망에 이르게 한 20대 여성이 구속됐다. 지난 6월 7일 경기 수원에서 출산 후 아이를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 30대 여성이 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됐다. 충북 충주에선 임신 사실을 숨겨오다 지난 6월 5일 자택에서 출산한 아이를 숨지게 한 20대 여성이 경찰에 입건됐다. 5월 22일부터 6월 10일까지 20일간 언론에 보도된 3건의 영아 유기(사망) 발생 사건(빅카인즈 검색 기준, 판결 기사 제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여성들은 경찰 조사에서 “아이를 혼자 키우기 힘들 것 같아서” 혹은 “출산 사실을 들킬까봐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21대 국회와 정부는 이 같은 영아 유기·살해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위기임산부와 그 자녀 아동의 안전을 위해 가명처리 후 출산이 가능한 ‘보호출산제’가 필요한 정책이라고 판단했다. 같은 취지로 도입되는 ‘출생통보제’가 대체로 지지를 얻어 지난해 7월 곧바로 국회에서 통과한 반면, 보호출산제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아서 한발 늦게 지난해 10월 국회 문턱을 넘었다. 오는 7월 19일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보호출산제를 둘러싼 우려는 걷히지 않고 있다.

■영아 유기·살해 예방 효과를 둘러싼 논쟁과 우려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해 11월 발행한 ‘영아 학대 예방 및 사후관리 개선 방안: 영아 유기를 중심으로’ 연구보고서는 “의료기관과 보건소를 전혀 경유하지 않는 위기임신에 있는 산모는 현행 모자보건법 제8조로 보호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별도의 익명 출산제도의 도입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 연구에서 전문가(아동보호 학계 및 경찰·소방·의학·법학 계열 전문가, 현장 실무자 등) 9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보호출산제가 도입될 경우 영아 유기 예방에 대한 기여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은 69.2%로 나타났다.

위기임신 지원 및 보호출산제가 시행되면 경제적·신체적·심리적 사유 등으로 위기를 겪는 임산부는 정부 지정 지역상담기관에서 보호출산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면 비식별화된 가명으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임신·출산 과정에서 임산부의 안전, 태어난 아동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반면 보호출산제가 영아 유기 사건을 막는 효과는 미비하며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지난해 출생 미신고 아동의 존재를 찾아내는 방법을 감사원에 제보한 프로젝트팀 ‘사회적 부모’의 이다정 간호사는 지난 6월 4일 기자와 통화에서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의 엄마는 결혼하고 출산해 키우는 자녀가 있었기에 ‘익명 출산’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며 “그 사건이 시사하는 것은 그간 정부가 출생신고 관리를 하지 않아서 두 번이나 영아 살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출생통보제가 앞서 시행됐다면 수원 사건은 절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보호출산제는 아동 양육을 거부하는 부모들이 보호라는 이름으로 국가에 아동을 유기하는 어른들의 ‘복지 권리’로 작동될 것이고, 기존 베이비박스를 넘어선 장애아동, 미숙아, 이혼을 결정하고 출산하는 부부의 아이 등 아동 유기를 늘릴 것”이라고 했다.

전민경 사단법인 온율 변호사는 지난 6월 13일 통화에서 “영아 ‘유기’와 ‘살해’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베이비박스 등에 아동을 유기하는 위기임산부는 충분한 상담과 주거지원, 비용지원, 돌봄지원 등 포괄적 지원 제공으로 양육이 보다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의미가 있으나, 영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우는 임신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사례가 많아 임신 중에 위 상담·지원체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겠는가 묻게 된다”고 했다. 전 변호사는 “제도 취지와 맞지 않는 부작용, 그러니까 현 체제 안에서 (입양 등) 다른 선택을 할 만한 부모들이 익명 출산을 이용할 여지가 생긴다”고 했다.

지난 2월 1일 서울 용산구 비앤디파트너스에서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위기임신 지원 및 보호출산’ 시행 준비 시·도 회의가 열리고 있다. 복지부 제공

지난 2월 1일 서울 용산구 비앤디파트너스에서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위기임신 지원 및 보호출산’ 시행 준비 시·도 회의가 열리고 있다. 복지부 제공

익명 출산을 도입한 해외 사례로는 독일이 가장 많이 언급된다. 독일은 2013년 ‘임신여성의 지원확대 및 신뢰출산에 관한 법률’을 도입해 전국에 1300곳 넘는 임신갈등상담소를 설치했다. 상담소에서는 성교육부터 임신, 임신중단, 출산, 양육 등까지 포괄적으로 상담이 이뤄진다. 상담 마지막 단계에서 익명을 전제로 한 이른바 ‘신뢰출산’을 상담한다. 한국은 독일과 달리 물리적인 상담공간이나, 상담 내용적인 측면에서 “임신, 출산, 양육에 대한 포괄적 상담 및 지원체계를 구축하지 않은 채 ‘최후의 수단’인 보호출산제를 열어둔 것”(전민경 변호사)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보호출산제 근거 법률인 ‘위기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의 2개 조항을 두고 논쟁이 있다. 우선 제9조 제2항은 위기임부가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충분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보호자가 보호출산을 신청할 수 있다고 정한다. 미성년자와 지적장애인 등이 해당할 수 있다. 전 변호사는 “이 조항은 보호자가 조력 역할을 하는 수준이 아니라 결정권자가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했다.

제14조는 보호출산을 신청하지 않은 위기임부가 출산 후 1개월 이내에 아동보호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 영아 유기는 생후 한 달 이내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보고가 있다.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진이 2010년부터 2023년 초반까지 나온 보도자료를 통해 영아 유기 사건을 분석한 결과, 총 296건 중 출산 직후(154건)가 가장 많고 출생 이후 1개월 미만 신생아 시기(60건)가 뒤를 이었다. 이 조항을 두고 장애아동 부모단체 등은 “장애아동 유기를 늘릴 수 있다”며 우려한다. 전 변호사는 “지자체·정부가 아동의 출생신고를 1개월 이내 확인해 아동의 출생정보를 공적으로 등록, 아동의 안전을 보장하도록 한 출생통보제의 취지에 반하는 조항”이라고 했다.

변수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베이비박스에 아동을 놓는 것과 비교하면 보호출산제는 상담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오히려 상담을 통해 양육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며 “(보호출산·양육 둘 중 원래 생각대로 선택할지, 다른 선택을 할지) 현재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된다”고 했다.

■보호출산, 아동권익은 어떻게 보장

보호출산제를 둘러싼 가장 큰 논쟁적 쟁점은 아동의 친생부모를 알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가이다. 보호출산제는 출생 당시의 정보, 생모·생부의 정보 등을 담은 ‘출생증서’를 남긴다. 아동권리보장원이 이 출생증서를 보관하며 보호출산을 통해 태어난 사람(미성년자는 법정대리인 동의 필요)은 자신의 출생증서 공개를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생모·생부의 동의 여부가 확인되지 않거나, 동의하지 않으면 생모·생부의 인적사항은 제외하고 공개한다.

‘고아호적’(단독호적)으로 살아온 조민호 아동권리연대 대표는 보호출산제 폐지를 주장한다. 그는 지난 6월 3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부모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자기 정체성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부모가 아동을 입양하더라도 출생신고를 반드시 하도록 했다. 보호출산제는 이를 무력할 수 있고, 아동의 ‘부모에 의해 양육될 권리’를 보장하도록 하는 국제사회 아동인권 개선 흐름에도 역행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아동이 시설에서 자라면서 겪을 어려움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보호대상 아동은 가정위탁·입양되거나 아동보호시설 등에서 자라게 된다. 시설보호의 부정적 영향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2022년 보호조치 시 입양과 가정위탁을 우선으로 고려한다는 지침을 마련했다. 그럼에도 2022년 기준 가정 외 보호아동의 57.3%가 여전히 시설에서 보호되고 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건복지포럼 2024년 5월호).

독일의 신뢰출산에선 아동이 만 16세가 됐을 때 혈통증명서 열람을 청구할 수 있는데, 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법원에서 ‘부모의 익명을 지킬 권리’와 ‘아동이 부모를 알권리’ 사이에 누구의 이익이 더 큰 것인가를 판단한다. 이 부분에서 한국과 차이가 있다. 변수정 연구위원은 “몇 년 후면 독일이 신뢰출산제를 시행한 지 16년이 돼 이 제도를 통해 태어난 아동이 혈통증명서 열람을 요청할 수 있는 시기가 오는데, 그때 이와 관련된 실제 사례와 쟁점이 독일에서 현실로 드러날 것”이라며 “한국은 독일의 사례를 주시하면서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아동에 대한 보호와 권리에 대한 검토를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입법 논의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제정된 법은 보호출산보다는 위기임산부를 어떻게 상담하고 지원할 것인가에 방점을 뒀고, 정책도 그에 맞춰 여성가족부 등 관계부처별로 필요한 준비를 해왔다. 도입 취지에 맞게끔 제도가 운영되도록 계속 보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이미지
대한민국 최정예 겁쟁이들
오늘을 생각한다
대한민국 최정예 겁쟁이들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의 아들 노다 마사아키가 쓴 <전쟁과 죄책>에는 포로의 목을 베라는 상관의 명령을 거부한 병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관동군 중대장으로 근무했던 도미나가 쇼조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 후베이성에서 포로를 베는 ‘담력’ 교육 도중 한 초년 병사가 “불교도로서 할 수 없습니다”라며 명령을 거부했다. 불교도로서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키려 했던 이 병사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홀로코스트 연구자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이 쓴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학살 임무를 거부하고 총기를 반납한 나치 대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 101예비경찰대대 빌헬름 프라프 대대장은 유대인 학살 임무에 투입되기 직전 병사들에게 “임무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앞으로 나오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10명 남짓 병사가 앞으로 나왔고, 그들은 소총을 반납하고 대기했다. 그 병사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각 부대에서 학살 임무를 거부한 병사와 장교들이 속출했지만, 나치 독일의 가혹했던 군형법은 이들에게 명령불복종죄를 비롯한 어떠한 형사처벌이나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