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피해야 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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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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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 강의하러 가게 됐다. 그 기업 회장이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았는지, 회장비서실장이 내게 연락을 해왔다. 만나 얘기를 나눠보니 ‘머리가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잠깐 만났지만, 나에 대한 두 가지 사실을 눈치챈 듯했다. 내가 회장과 친한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과 대충 대해도 회장에게 그 사실을 얘기할 깜냥이 안 된다는 사실. 그러니까 자신의 이해에 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존재라는 낌새를 간파해낸 것이다. 깔아뭉개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예의를 갖춘 것도 아닌 무례와 무시 사이에서 나를 대했다. 교활하게 똑똑했다. 자기가 모시는 회장에게는 쓸개까지도 내놓는 시늉을 할 것이다.

관계는 말로 이루어진다. 또한 말이 곧 그 사람이다. 그러므로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과는 멀리하라, 그 첫 번째 경우가 바로 이 비서실장 같은 사람이다. 힘센 사람에게는 머리를 조아리고, 약자 앞에서는 거들먹거리는 사람. 이런 사람은 내 아내 같은 사람을 만나야 정신 차린다. 그런 꼴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아내 같은 임자를 못 만난 것이다. 아내는 강한 것은 누르고 약한 건 키워주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사람이다. 아내와 연애를 4년 가까이 했지만, 아내가 처음부터 내게 호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젠가 식당에서 실수한 종업원에게 하는 말을 들으면서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멀리해야 할 또 한 사람은 늘 남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사람이다. 마치 자신이 무슨 심판관이라도 된 양 만나면 노상 남을 평가한다. 그것도 추켜세우는 말이 아니라 깎아내리는 말을 한다. 이런 단점이 있고 저런 허물이 있다고 폭로하고 다닌다. 시기와 질투가 말에 배어 있다. 그런 사람에게 한 말은 비밀도 지켜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유명한 누구를 알고 있다.’, ‘내가 누구와 친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자기 말은 하지 않고 ‘누구’ 말만 하는 사람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누가 이렇게 말하더라.’, ‘누가 어떻게 됐다.’, ‘누구는 어떤 사람이다.’ 등. 남 얘기를 안 할 순 없지만, 남 얘기만 하는 건 문제다. 그리고 그런 말만 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순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경우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갈라치기에 능한 사람도 피해야 할 대상이다. 늘 내 편 네 편 편을 가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피아를 구분한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동지이고, 눈앞에 없는 사람은 적이 된다. 또한 이 사람에게 가서는 저 사람 욕을 하고, 저 사람에게는 이 사람 욕을 해서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다.

“내가 너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누가 너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던대?”, “네가 속상할까 봐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고민 고민하다 얘기하는 거야.”

이렇게 이간질하는 사람은 절대 가까이해선 안 된다. 부처님도 입으로 짓는 업(業)에는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가운데 양설이 바로 이간질하는 말이다. 양쪽에 다니면서 상대방에게 서로 다른 두 가지 말로 싸움을 붙이는 양설을 조심하라고 했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말만 입에 달고 사는 사람도 멀리하는 게 좋다. 만나면 늘 징징대고 투덜대는 사람, 자기는 운이 없고, 되는 일도 없고, 나만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사람, 모든 게 못마땅하고 일이 끝나면 꼭 뒷말하는 사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그게 안 될 줄 알았다.’, ‘이건 누구 탓이다.’ 말이 온통 후회와 남 탓뿐이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기가 빨리고 급격히 우울해진다.

말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어제 한 말 다르고 오늘 한 말 다르고, 이 사람에게 한 말 다르고 저 사람에게 한 말 다르다. 생각과 말과 행동도 다르다. 물론 생각과 말은 바뀔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 바뀌었다고 말하면 된다. 그렇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말을 바꾸고, 자신에게 불리하면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언제 그랬느냐고 따지고 달려든다. 그런 사람은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종잡을 수가 없고 예측이 안 된다. 한마디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렇게 진정성이 없는 사람도 피해야 할 대상이다.

다음은 염치없는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지만, 사람이기에 자신의 이기적 속성을 감추려고 한다. 그래서 있는 것이 체면이다. 사람은 체면을 차리려고 한다. 그런데 체면이 깎이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제멋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 그야말로 뻔뻔한 사람이 있다. 항상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이런 사람 입에서는 사과나 양보라는 게 나오지 않는다. 반성도 없다. 잘못하고도 잘했다고 우긴다. 아니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어르신이 서 계시면 아예 모른 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리를 양보하진 않더라도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도 있고, 양보하지 않는 걸 나무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내가 지켜본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런 사람이었다. 임기 초반 한 비서관의 뇌물 수수 사건이 터졌을 때도, 농민 시위에서 두 분 농민이 돌아가셨을 때도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했다. 나는 이것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양심이고 도덕성이지 않나 싶다.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사람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아무에게나 반말하는, 오만하고 불손한 사람이 있다. 자신에 대한 대접이 소홀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 늘 남을 가르치려 들고, 자기 말만 옳다고 주장한다. 상대를 존중하거나 배려하는 건 언감생심이고, 자신의 감정조차 절제하지 못한다. 자주 부아가 치밀고 폭언과 욕설을 남발한다. 감정의 기복이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주위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굳이 이런 사람과 가깝게 지낼 이유가 없다.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도 멀리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나눠가져야 한다. 그런데 그 기회를 독점하려고 하거나, 자기 말의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알아, 알아!” 하면서 남의 말을 끊거나, “너는 왜 그런 말을 해!” 하면서 입을 막는다. “아, 그 말 하니까 생각나는데” 하며 수시로 끼어든다. 모임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놓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말을 시키지 않으면 토라진다. 정작 자기가 말은 가장 많이 하면서 남에게 ‘말이 많다’고 타박한다. 가급적 이런 사람도 안 만나는 게 좋다. 나는 세 가지를 통해 직장생활을 잘할 수 있었다. 남의 말을 잘 듣고, 남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고, 이도저도 아니라면 침묵하는 것이다. 말하기를 좋아하셨던 고 김대중 대통령도 손목시계와 집 안의 벽에 ‘침묵’, ‘경청’이란 문구를 붙여놓고 수시로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끝으로,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말을 자기 마음대로 편집한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실을 과장·축소·왜곡하는 건 다반사이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사실과 자기 의견을 섞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귓속말을 자주 하고 밀실에서 끼리끼리 모여 말하는 걸 즐긴다. 말이 공개적이고 투명하지 않다.

지금까지 말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그 자의 문제를 지적하고 맞서 싸우기. 둘째, 만나긴 하지만 무시하기. 셋째, 만나지 않기. 나는 세 번째를 권한다. 피할 것인가, 타도할 것인가, 함께할 것인가.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

<강원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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