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초기 머리가 날아간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지난 7월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침수돼 소방당국이 실종자 구조를 위한 양수 작업을 하고 있다. / 조태형 기자

지난 7월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침수돼 소방당국이 실종자 구조를 위한 양수 작업을 하고 있다. / 조태형 기자

농담 같지만, 병사 시절 내 소원은 ‘제초기 업그레이드’였다. 한여름날의 풀은 왜 이렇게 쑥쑥 자라는지, 종일 베어도 사흘이면 똑같은 일을 또 해야 했다. 비행단 면적은 서울 여의도의 3.5배였다. 시시포스가 돌을 굴리듯 만날 풀을 깎으니 ‘이 짓을 왜 하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은 종적을 감췄다. 그저 일이 수월하고 안전하기를 바랐다. 각반 사달라(다치면 어쩌냐), 신형 제초기 제공하라(일 좀 빨리하자). 중대 부사관에게 요청한 사항이다.

어느 날 부사관이 ‘신무기’를 들고 왔다. 무려 쇠날 제초기. 직전엔 다이슨 청소기 같은 봉 끝 분리형 헤드에 플라스틱 줄을 달아 돌렸다. 헤드가 분리형인 건 구심력에 감겨든 풀을 작업 중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플라스틱이라 그런지 몇 줌 잡초만 잘라도 금세 줄이 닳았다. “이거라면!” 한참 감탄하다 병장과 이병의 볼멘소리를 들었다. “이게 날아가면 진짜 크게 다칩니다.” 부사관은 다음번엔 꼭 보호장구를 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일단 빨리 일 끝내는 게 너희들도 좋지 않냐. 나는 납득했다. ‘분리형’이 하필 그날 이름값 하기 전까진.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사망한 고 채수근 상병 소식을 들으며 어째서인지 그때 기억이 났다. 단돈 1만원짜리 구명조끼조차 입히지 않아 생긴 참사였다. 군 당국에 수난 구조작업 시 안전장비 규정이 있니 없니 논란이란 게 우스웠다. 규정이 없어도 위험한 일이라면 장비를 주는 게 상식 아닌가. 왜 그랬을까. 짐작이 가능하다. 효율과 안전 사이에서 전자를 택한 것이다. ‘병사니까’라는 안일한 인식과 함께.

온라인에서는 한때 '일본 케이블TV 회사 해고 썰'이 화제였다. 어느날 센터장이 '요 몇년 기록을 살펴본 결과 서버 트러블 같은 건 일어난 적이 없더라'며 서버관리팀 전원을 해고했다는 이야기다. 해당 센터장은 팀 해고 직후 '인건비 절감'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했지만, 정작 센터는 예비 서버까지 모두 터져 3개월이나 복구되지 않았다고 한다. 진위를 알 수 없는 '썰'인데도 공감하는 이가 많았다. 저마다 일터에서 비슷한 경험들을 했던 것이다.

기업이든 공직이든 리스크 관리 업무를 해본 사람은 안다. 리스크 관리자는 평시에 인정받기 어렵다. 최대 성과가 '아무 일 없음', 영업이나 투자 유치처럼 숫자로 표가 나는 업무와 달리 인센티브나 승진 경쟁 때 내세울 것이 없다. 외려 성공할수록 조직 내 위상이 위태롭기 쉽다. 별 일도 없는 마당에 '저 돈이면' 싶은 것이다. 잠깐만 검색해 봐도 ‘인력·예산이 없어 재난 예방·대응이 어려웠다’는 재난 담당 공무원의 한탄을 들을 수 있다. 이들의 가치는 늘 사고 이후에야 '재발견'된다. 예방의 역설이다.

다행히 제초기 머리가 날아간 곳은 사람 없는 풀밭이었다. “X될 뻔했다”며 웃고 지나갔지만, 방향이 약간만 틀어졌어도 결과는 달랐을 게다. 이후로도 모든 제초 인력이 안전장비를 찼다는 소문은 들어본 적이 없다. 보강 철근을 누락했다는 ‘순살 아파트’ 설계·시공·감리 관여자는, 청주 오송 지하차도 인근 임시제방 부실시공 관련자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여기저기서 제초기 머리가 날아간다.

<조문희 정치부 기자 moony@kyunghyang.com>

꼬다리바로가기

이미지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지난 6월 10일 경기 수원시청 앞에서 수원시 장안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집단 아동학대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비슷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해자들의 범죄행위에 치를 떨면서, 피해 아동 보호자들이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기자회견을 하게 만드는 망가진 시스템에 분노한다. 만 2세 반 어린이 13명에게 2명의 교사가 상습 폭력을 가했다. 경찰이 확보한 35일 치 CCTV에서 350건의 학대 행위가 발견됐고, 가해 교사 2명과 원장이 상습 아동학대와 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피해 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원장은 아무런 행정 처분 없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가해 교사 2명은 자진 사직했기에 자격정지 등 처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수원시는 할 수 있는 행정 조치는 다 했다며, 재판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 가족들은 수원시 행태가 마치 2차 가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동들은 여전히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 몇 번씩 잠에서 깨는 한 어린이는 “꿀향기반 선생님들이 자기를 데리러 올까봐 무섭다”고 했다. 다른 어린이는 작은 소리에도 몸을 움찔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지난 1월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 신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지만 5개월 동안 가족들의 삶은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만 2세 어린 아기들을 밀치고, 넘어뜨리고, 머리채를 끌어당기고, 냅다 던져버리는 영상을 보며 엄마·아빠들의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