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농부가 된 불문학자 이원복 “자연과 하나 된 삶에서 행복 얻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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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학자 이원복을 그가 운영하는 전북 남원시의 작은 농장에서 만났다. 6평 컨테이너 안에 그는 거주한다. 이곳에서 거의 완벽한 유기농으로 토마토를 재배하고 흑염소를 키운다. 이원복은 이미 학계에서 은퇴한 사람이다. 불문학자라는 타이틀 앞에 ‘전(前)’이라는 단어를 붙여야 온당할지 모른다. 책과 펜을 완전히 버리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가 벌써 10년이 됐다.

사진/주미영 작가

사진/주미영 작가

투르니에 연구에 독보적 그는 원광대 불문학과, 외국어대 불어과 대학원을 거쳐 프랑스 프랑슈콩테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미셸 투르니에를 깊이 연구했다. ‘미셸 투르니에 ‘마왕’에 나타난 신화 연구’, ‘미셸 투르니에의 작품에 나타난 여행의 역할’ 등이 그의 대표 논문이다.

미셸 투르니에 연구에 관한 한 이원복은 독보적이다.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이원복은 투르니에를 두 번이나 만나 인터뷰했다. 그가 쓴 논문에는 이 거장의 문학적·철학적 육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귀국 후에는 투르니에의 대표작 <마왕>을 공들여 번역했다. 20세기 최고의 전쟁문학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원복은 이 작품의 원전을 100번 이상 읽었다고 한다. 이는 결코 허언이 아니다. 2004년 첫 번역서를 냈고, 2020년 민음사에서 개정판이 나왔다. 외국어대 석사 논문도 투르니에를 썼다. 번역할 때 그는 “매끄럽지 않아도 원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을 완전히 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무거운 주제의 작품은 원전을 최소 50번, 많으면 100번을 읽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대중소설은 6개월이면 충분할 수도 있지만 <마왕>처럼 철학적인 소설은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유학을 마치고 20권이 넘는 프랑스 문학 작품을 번역했다. 주요 번역서로는 <마왕> 외에도 <오페라의 유령>, <일곱 가지 이야기>, <좁은 문>, <환상여행>, <동방박사와 헤로데 대왕>, <샘과 덤불>, <로빈슨과 방드르디>, <렐리아>, <메테오르 1·2>, <지독한 사랑>, <바틀로 신부의 교육 사상>, <폴린 총장의 생애>, <비잔틴 살인사건> 등이 있다.

“아내가 사업을 하다 사기를 당해 수억원대의 빚을 지게 됐다. 이 빚을 갚기 위해 강의와 번역을 무리하게 병행했다. 밤을 꼬박 새우면서 담배를 4갑씩이나 피웠다. 체력이 소진됐고,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이렇게 살다가는 갑자기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또 교수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 사회 역시 온갖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했다. 대학의 공익은 종종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에 의해 무너졌다.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게 결단의 배경이 됐다. 빚은 최선을 다해 갚아나가되, 삶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2년부터 농사꾼 생활 2012년부터 그는 완벽한 농사꾼이 됐다. 전북 진안군 오천리 먹뱅이마을을 시작으로, 남원시 보절면 괴양리 양촌마을을 거쳐 다시 남원 식정동에 정착했다. 650평 작은 규모의 유기농 전문농원 ‘바드렝이’를 운영하게 된 히스토리다. 바드렝이는 지금은 수몰된 전북 장수군 이원복의 고향마을 이름에서 따왔다.

“진안에서 일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삽 한자루와 맨손으로 산을 개간했다. 3000평 정도의 땅을 개간해 오미자와 아로니아를 심었다. 무려 5년간이나 새벽 4시부터 밤 8시까지 하루 16시간을 일했다. 밤새 번역을 하듯 산을 개간해 농사를 지었으나 결국 실패했다. 타산이 맞지 않았다. 외지고 경사가 심한데다 도로가 없었다. 작물을 수확하면 혼자 등짐을 져서 날라야 했다. 생산비가 안 나오니까 결국 포기하고 남원에 오게 됐다. 어디서 농사를 짓든 유기농 원칙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맘에는 변함이 없다.”

이원복은 흑염소에게 인공사료를 일절 주지 않는다. 남원 들판과 산야에서 직접 벤 풀만 염소에게 먹인다. / 주미영 작가

이원복은 흑염소에게 인공사료를 일절 주지 않는다. 남원 들판과 산야에서 직접 벤 풀만 염소에게 먹인다. / 주미영 작가

바드렝이 농원에선 세 종류의 토마토를 재배한다. 흑토마토와 찰토마토, 대추방울토마토는 5월과 6월 두 달 동안만 생산해 판매한다. 무농약·무화학비료·무항생제 퇴비사용의 원칙을 지킨다. 흑염소는 70마리 정도 키운다. 방목은 못 하지만 곡물이 섞인 사료는 일절 먹이지 않는다. 대신 온갖 종류의 풀을 베어 먹이로 준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남원 지방 풀의 계보가 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버드렝이 농원의 흑염소는 다양한 풀의 성찬을 1년 내내 즐긴다.

“버드나무잎은 염소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다. 여름에는 칡넝쿨과 갈대, 가을에는 고구마대와 뽕잎을 준다. 이른 봄에는 이곳에서 ‘바래기’라고 부르는 부드러운 풀이 난다. 염소가 굉장히 좋아하는 먹이다. 염소가 먹는 풀은 보통 4월 10일 이후에 나온다. 5월 말부터 6월 말까지는 강변에서 자라는 갈대가 좋다. 강변 갈대는 산 갈대보다 수분이 많고 영양가가 높다. 버드나무 순은 4월 말에서 7월까지다. 그때는 칡넝쿨이 지천이다. 야생 뽕잎도 많다. 사람들이 뽕나무 농사를 짓다 포기한 것이 야생으로 자라게 된 것이다. 이 야생 뽕잎은 사람에게도 좋은 약재다. 쑥처럼 약성이 있는 풀도 염소에겐 아주 좋은 먹이다. 염소는 역시 나뭇잎을 제일 좋아한다. 땅에 떨어진 풀은 잘 먹지 않는다. 기린처럼 살아 있는 잎 따먹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먹이 경쟁이 치열하다. 아카시아잎이 참 좋은데 가시가 있어 잘 못 먹고, 대신 비슷한 종류인 소사시나무잎을 먹인다. 싸리나무잎도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다. 가을에는 인근 재배 농가에서 고구마순을 대여섯차례 실어온다. 일부는 말려서 하우스 2동에 산더미처럼 쌓아놓는다. 고구마줄기는 영양분이 많기 때문에 말린 것도 환장하고 먹는다. 겨울에는 생고구마와 고구마대 말린 것을 준다. 겨울엔 쌀겨도 먹는데, 조금씩만 줘야 한다. 겨울철의 보약은 역시 솔잎과 댓잎이다. 겨울에도 생물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솔잎과 댓잎이다.”

이원복은 흑염소를 방목할 수 있는 너른 땅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염소가 무엇을 먹고 자라느냐다. 설사 방목을 하더라도 사료를 주면 엄격한 의미의 유기농이 아니다. 토마토를 수확하는 시즌에는 4~5시간, 수확철이 지나면 하루의 대부분을 염소 풀을 확보하기 위해 보낸다. 겨울에 먹을 풀을 뜯어다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남원 전역을 돌아다니며 풀을 베러다닌다.

토마토와 염소는 경축순환의 구조다. 토마토에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흑염소에게는 단 한톨의 인공사료도 먹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염소 똥은 아주 건강한 토마토 퇴비의 원료가 된다. 염소가 먹다 남은 풀과 염소 똥을 섞어 한곳에 쌓아두면 그것이 숙성돼 토마토밭의 퇴비가 되는 구조다.

이원복이 키운 토마토는 농약과 비료를 뿌리지 않아 흙의 기운이 살아 있고, 맛을 보면 쫀득한 섬유질이 풍부하다. / 주미영 작가

이원복이 키운 토마토는 농약과 비료를 뿌리지 않아 흙의 기운이 살아 있고, 맛을 보면 쫀득한 섬유질이 풍부하다. / 주미영 작가

이원복의 손은 상처를 입어 거친 모습이다. 그의 고통스러운 삶의 여정과 그 여정을 통해 깨달은 초월과 각성의 자취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 주미영 작가

이원복의 손은 상처를 입어 거친 모습이다. 그의 고통스러운 삶의 여정과 그 여정을 통해 깨달은 초월과 각성의 자취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 주미영 작가

“시중에 나오는 토마토는 경매인, 중매인, 소매인을 거칠 때까지 유통과정이 3~4일 걸린다. 그래서 시퍼렇게 덜 익은 상태로 출하해야 한다. 우리 농장 토마토는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기 때문에 80% 정도 숙성된 상태로 보낸다. 밭에서 익은 것과 유통 중에 익은 것은 맛과 향에서 큰 차이가 난다. 토마토는 땅의 기운을 받고 커야 한다. 시장에 나오는 토마토가 화학비료로 재배되는 건 문제다. 땅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섬유질이 거의 없다. 며칠만 지나도 금방 물러진다. 토마토뿐 아니라 다른 과일도 비슷하게 키운다. 대부분 당도를 높이는 비료를 준다. 참외나 수박을 먹어보면 자연스러운 당도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정부 정책이 기업형 대형 농가를 집중 지원하는 체제로 바뀐 지 오래다. 작은 규모로 건강한 과일이나 채소 농사를 짓기란 참 어렵다. 자급자족하는 정도에 머문다. 정부는 시장에 농산물을 충분하게 공급하고, 농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초대형 유리 온실을 짓거나 자동화 시스템을 건설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수십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주체는 대기업뿐이다. 이런 큰 기업들은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는 운영할 수 없다. 어마어마한 양의 자연 퇴비를 누가 만들 수 있겠는가.

“우리 농장은 특별히 홍보나 광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토마토는 1년 중 두 달만 출하하기 때문에 물량이 부족하다. 주문을 하고 열흘에서 길게는 보름까지 택배를 기다리는 고객이 생긴다. 그들에게 송구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남원 사람들은 우리 농장이 흑염소를 어떻게 키우는지 잘 안다. 자연에서 자란 풀을 먹고 자라면 염소의 약성이 강해진다. 건강원 등에 유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토마토 출하를 5~6월에 한정하는 이유는 100% 유기농으로 키운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7월부터는 병충해가 심해지기 때문에 농약을 뿌리지 않으면 키우기 어렵다. 새벽 3~4시가 기상 시간이다. 1년 내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생을 하지만 1년 순수입은 고작 1200만~1500만원이다.

“농부의 삶으로 ‘영성’ 성장” 매출 중심으로만 생각하면 이렇게 경영할 수 없다. 유기농으로서의 자부심 때문만이 아니다. 이원복은 자연과 하나가 돼 노동하는 삶 안에서 구원을 받아 행복해졌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믿는 종교는 없지만, 그는 10년에 걸친 농부로서의 삶을 통해 자신의 ‘영성’이 성장했다고 믿는다.

이원복은 표정부터가 농부의 얼굴이다. 불문학자로서의 과거 자신의 정체성에 조금도 연연하지 않는다. 그것이 농사를 지으며 그가 획득한 삶의 새로운 지평이다. / 주미영 작가

이원복은 표정부터가 농부의 얼굴이다. 불문학자로서의 과거 자신의 정체성에 조금도 연연하지 않는다. 그것이 농사를 지으며 그가 획득한 삶의 새로운 지평이다. / 주미영 작가

“지난해 3월에는 가슴의 차크라가 활짝 열리는 진아(眞我) 체험을 했다. 가슴에 맺혔던 온갖 원한과 증오의 감정이 일순간에 다 사라졌다. 황홀감이 몰려왔다. 천국처럼 아름다운 그 느낌이 2주간이나 지속됐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을 오래 유지한 결과, 하늘이 내린 선물이 아닌가 해석한다.”

매년 2월 10일경 그는 토마토 모종을 심는다. 모종을 심기 전 두 달에 걸쳐 밭고랑을 만든다. 퇴비를 손수레로 옮겨서 뿌리고 삽으로 밭의 이랑과 고랑을 만든다. 기계를 쓰면 사나흘이면 족한 작업을 두 달이나 들여 손으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가 싫다. 그가 시골 생활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온갖 소음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으로 직접 밭을 일궈야 흙과 같이 호흡할 수 있다. 그 느낌과 감촉이 오래 유지돼야 토마토를 더 잘 키울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앞에서 그가 말한 진아 체험, 영성의 개발과도 관련이 있는 철학이자 가치관이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을 달고 살았다. 부친의 논과 밭이 홍수로 쑥대밭이 되면서 시작된 고통이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프랑스 유학 시기까지 구두닦이 빼고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연탄 배달은 외대 대학원 시절까지 이어졌다. 프랑스에서는 학교 구내식당에서 접시를 닦거나, 농장에서 포도 따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원복이 번역한 미셸 투르니에의 소설 <마왕> / 민음사

이원복이 번역한 미셸 투르니에의 소설 <마왕> / 민음사

가난이 가져다준 습관 “1992년 단돈 200만원을 들고 유학길에 올랐다. 프랑스 대학은 등록금이 없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난 때문에 ‘삶에 대한 허무감’으로 내내 시달렸다. 어린 시절부터 삶과 죽음의 문제라든가, 인간의 구원이라든가, 영적인 완성 등의 문제를 두고 골똘하게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학부 시절 장 자크 루소에 빠져들었고, 철학적 지향이 강한 미셸 투르니에한테 심취했던 이유도 그런 성향과 관련이 있다. 허무감을 극복하려면 정말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유학 중 한국인 유학생들이 자동차를 몰고 컴퓨터를 사용할 때, 나는 자전거를 타고 타자기로 글을 썼다. 이 타자기로 몇만페이지 분량의 리포트와 논문을 썼다.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배우고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4년 반이 걸렸다. 보통 10년은 족히 걸리는 과정이다. 그야말로 피와 땀으로 버텼던 세월이다.”

이원복은 프랑슈콩테대학이 있는 프랑스 동부 도시 브장송을 사랑했다. 너무도 고요하고 아름다운 도시다. 천혜의 녹지공간으로 프랑스 최초의 녹색 도시로 꼽힌다. 그는 그곳에서 대체로 행복했다. 거대한 규모의 셰루 숲을 즐겼고, 낙엽 식물로 뒤덮인 수많은 산책로를 걸었다. 지금도 그는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유통되는 프랑스 사회의 건강성을 높이 평가한다.

“프랑스 사회의 강점은 토론문화에 있다. 합리적·이성적 사고의 바탕 위에서 누구나 자유로운 토론에 참여한다.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니까 좋은 결론이 도출된다. 사고가 유연하고 개방적이다. 세계의 어떤 문화도 우수하면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파리가 세계 문화예술의 용광로가 됐다. 그만큼 깨어 있는 시민이 많다는 얘기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이원복은 항상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근원적인지를 찾는다. 그래서 ‘명상’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그가 참선이나 좌선에 몰두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에게 명상의 진실한 형식은 자연 안에서 노동을 할 때 나타난다. 그가 보기에 ‘탐진치’를 내려놓지 못하면 이 세계는 황량한 혹성에 불과하다.

이제 두 달간의 토마토 수확기가 끝났다. 지금은 흑염소를 위한 시간이다. 그들의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남원 전역을 돌아다니는 일과가 남았다. 남은 토마토로 즙을 만들고, 겨울에 염소들이 일용할 풀 양식을 건조해야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와 우주가 하나가 되면 엄청난 에너지와 사랑, 빛과 생명력이 밀려들어온다. 농사를 지으며 그 행복을 알게 됐다. 그것만 알면 삶은 지상낙원이다. 귀농 후 단 한 번도 문을 잠근 적이 없다. 좋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돈과 물질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한기홍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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