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승합차, 어쩌다 탈레반 기사에 등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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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한 채 경계를 서고 있는 탈레반 병사. 그리고 버스 뒷좌석에 앉아 불안하게 뒤를 돌아보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지난 10월 말 캐나다 언론 글로벌 뉴스가 내보낸 수도 카불에 사는 칼리다(30)라는 여성 이야기다. 컴퓨터와 법학 박사 학위 경력에 국영기업에 다니던 그는 탈레반 점령 후 집 밖 외출을 금지당했다. 그런데 한국 누리꾼의 주목을 끈 것은 기사가 표제로 사용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global news 캡처

global news 캡처

노란색 소형승합차엔 한글로 태권도학원 이름과 전화번호가 선명히 적혀 있다. 탈레반이나 ISIS 관련 외신사진에서 한국산 물건을 만나는 경우는 꽤 된다. 11월 4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중동에 수출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한류’라는 제목의 사진들을 보면 군용 혹은 전투차량으로 개조된 현대·기아의 봉고트럭이다. 외산, 예컨대 도요타 픽업의 경우 과적이 심할 경우 차체가 내려앉고 적재 공간이 일체형이라 확장성이 없는 데 비해 한국산 소형트럭들은 처음부터 과적을 예상해 제작됐다. 적재함을 떼어내면 뭐든지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전투용 트럭으로 개조해 자주 이용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고차 시장에 대대적으로 나와 있고 일본산 트럭에 비해 싸기 때문에 널리 애용된다는 설명이다.

기사만 보면 딱한 사정인데 어쨌거나 난데없는 K트럭 사진 출현에 누리꾼의 드립력이 폭발했다. “태권도 배우러 왔는데 무슨 반이 있나요? -답: 유아반, 성인반, 탈레반”, “하나에 알라후!~ 둘에 아크바르!”

그나저나 저 태권도학원 차량은 어쩌다 멀디먼 이국땅까지 흘러 들어가게 됐을까. 태권도장 측에선 학원 차량 사진이 국제뉴스에 박제돼 나온 걸 알고 있을까. 해당 전화번호로 검색해보면 경기도 안산의 한 태권도장이 나온다.

“저도 몰랐는데, 어제 친구가 카톡을 보내 ‘너희 차인데 여기 있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봤습니다. 진짜 저희 차인 거예요. 선팅이나 번호도 똑같았고, 뒤에 태권도장 번호도 똑같으니….” 11월 3일 통화한 유일규 안산 경희대 석사 효자 태권도 관장(45)의 말이다. 유 관장이 차를 처분한 것은 2018년. “첫차였어요. 경기도 안산에서 태권도장을 한 것이 20년 가까이 됐는데, 처음에 중고차를 매입해 45만km 정도 탔습니다. 대부분 그 정도까지 안 타는데 관리를 잘했어요. 큰 고장 없이 잘 나갔는데 정부에서 오래된 디젤차를 못 타게 하니 어쩔 수 없이 폐차했습니다.” 중고차 시장에서 그 차를 매입했으니 막연히 폐차한 줄로만 알았는데 갑자기 뉴스에서 나와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첫차는 이스타나였고, 현재 운영하는 차는 현대 스타렉스다.

코로나19 시국인데 태권도장 운영은 좀 어떨까. 그는 “거의 2년 가까이 아이들을 못 받았고, 기존에 다니던 아이들도 나가는 상황이라 힘들다”며 “위드 코로나라고 하지만 태권도장에 다니는 아이들은 백신 접종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감염 위험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정부 지원책마저 없으니 여전히 어려운 상태”라고 덧붙였다. “제가 태권도장을 조금 일찍 시작한 셈입니다. 스물여섯인가 스물일곱 무렵에 시작했는데 당시 태권도장 관장들이 보통 삼십대 후반이었거든요. 시드니올림픽도 다녀오고, 시범에 자신 있어 태권도장을 열면 엄청 잘될 줄 알았어요. 가르쳤던 아이들 대학도 보내고, 국가대표 시범단도 많이 배출했죠. 10년 정도 되니까 잘됐어요. 그러다 경제가 어려워지니 2018~2019년도에 사정이 좋진 않았어요. 그 뒤에 코로나19가 닥쳤고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인권상황도, 태권도장 관장님의 사정도 앞으론 좀더 나아지기를.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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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역경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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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