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마켓컬리 고발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블랙리스트가 무슨 문제야? 별사람 다 오는데 당연히 걸러내야지.” 일용직 노동자 블랙리스트를 운용한 마켓컬리 고발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누군가는 마켓컬리의 행위에 경악했지만 어떤 이는 ‘블랙’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마켓컬리가 법을 어긴 것도 아니지 않으냐”고 되묻는 이들도 있었다.
노동문제연구소 해방은 마켓컬리의 행위를 중대 범죄라고 본다. 지난 3월 8일에는 주식회사 컬리와 김슬아 대표를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여차하면 헌법소원도 불사할 참이다. 이들은 왜 마켓컬리와 싸우기로 마음먹었나. 마켓컬리 블랙리스트는 왜 불법인가. 권오성 소장(성신여대 교수·변호사)과 오민규 연구실장, 이영주 연구위원에게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 3월 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마켓컬리를 왜 고발했나.
권오성(이하 권) 범죄를 저질러 고발한 것이다. 컬리는 5개 넘는 채용 대행업체로부터 일용직 노동자 정보를 취합해 명단을 작성했다. 그리고 다시 대행업체와 명단을 공유하고 리스트에 있는 사람은 채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컬리는 이 리스트를 왜 만들었나. 그들 해명처럼 단순히 근무 평가를 하기 위해서? 아니다. 특정 노동자를 업무에서 배제하려고 만들었다. 일터에서 밀어내려고, 해고하려고. 그런 짓을 ‘취업 방해’라고 한다. 컬리는 노동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운용했다. 근기법 위반이고, 헌법에서 보장하는 근로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블랙리스트 기사를 보는데 정말 화가 나더라. 특히 컬리가 ‘법 위반은 아니다’라고 해명하는 데 분노했다. 노동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로서, 또 변호사로서 두고 볼 수 없었다.
*근로기준법 제40조·제107조는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명부를 작성하거나 통신하여서는 안 된다. 취업 방해 금지의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민규(이하 오) 사실 블랙리스트 사건은 흔치 않아 근기법 제40조 위반 사례가 별로 없다. 현실에서 사문화 되다시피한 조문이다. 그래서 불법이라는 인식을 못한다. 일용직 노동자와 관련해서는 그런 인식이 더 강하다. 아예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용직은 일용직이니까 블랙리스트는 그냥 만들어 돌릴 수 있다는 인식이 상식처럼 자리 잡았다. 우리가 컬리를 고발하니까 ‘뭐가 문제인데’라는 반응이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그 상식이 틀렸다. 정확히 말하면 상식으로 오분류된 악습이다. 이번 마켓컬리 블랙리스트는 범죄다. 노동자 보호를 위해 정한 최소의 기준이자 최저의 기준, 근기법을 어긴 파렴치한 범죄다. 처벌도 처벌이지만 이번에 우리 사회에 잘못 퍼진 상식을, 뒤집힌 상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이영주(이하 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분 중에는 영문도 모른 채 일을 못 하게 된 분들도 있다. 별안간 해고된 건데, 노동법상 절차적 보호를 전혀 받지 못했다. 모든 노동자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가 ‘마켓컬리는 법을 위반했다’고 하니까 ‘상식적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이 어디 있냐’고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 게 그들에게는 ‘당신의 상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알려줘야 한다.
오 고발뿐만 아니라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마켓컬리 블랙리스트 문제를 더 알릴 생각이다. 플랫폼 자본의 혁신에 가려진 민낯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컬리와 같은 기업은 수많은 일용직 노동자들로 돌아가는 구조인데 그 안에 있던 노동자들이 ‘아, 이게 문제였구나’ 인식하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곪았던 부분은 금세 드러날 것이다. 모래 위에 쌓은 탑은 무너지는 게 맞다. 벌써 많은 분이 일용직 노동자들이 제보를 해오고 있다. 고맙다고 메시지를 보내는 분들도 많고.
-비난은 받을 수 있어도 법적으로는 문제없다는 게 컬리 입장인데.
권 현행법은 ‘누구든지’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명단을 만들면 처벌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취업 방해 행위는 목적범이다. 취업 방해라는 목적을 갖고 행하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아도 범죄가 성립된다. 1989년 근기법을 개정하면서 이런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용자’에서 ‘누구든지’로 확대했고, 죄 성립범위가 넓어졌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업 방해 행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법을 만든 덕분이다. 노 전 대통령은 왜 법을 강화했을까. 블랙리스트가 노동이 설 자리를 없애는 중대 범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는 보통 노조 조합원을 솎아낼 목적으로 쓰인다. 컬리는 근무 평가를 위한 명단이라고 하지만 향후 노조가 생기면 노조 탄압에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 플랫폼 업계에 이런 블랙리스트가 자리 잡으면 이쪽 업계 노조는 아예 싹이 잘릴 수 있다. 노동자의 정보를 모아 공유하는 행위 자체가 위험한 일이다.
-컬리 측이 일용직 노동자의 ‘근무태도 불량’을 내세워서 블랙리스트 비판 여론에 대응하고 있는데.
이 노동자의 근무태도는 쟁점이 아니다. 이번 문제의 핵심은 컬리가 일용직 노동자의 개인정보가 담긴 리스트를 작성해 대행업체와 공유했고 취업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특히 블랙리스트 고발 기사(‘마켓컬리 블랙리스트 진짜였다’ 주간경향 1418호 참고)에서 언급한 노동자는 이번 고발과 무관하다. 설사 노동자의 근태가 불량했다고 해도 컬리의 불법행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우리는 개별 노동자의 권리 구제를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다. 블랙리스트가 공공연히 운용되는 물류센터 일용직의 노동 환경에 문제의식을 느껴 고발한 것이다. 공익 고발이다.
권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인권감수성을 지닌 기업이기 때문에 기사에 나온 한명의 사례, 그 노동자의 근태를 들먹이며 이번 사태를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블랙이라고 이름 붙이고 제3자와 공유해 취업을 못 하게 해놓고 ‘이건 사용자로서 권한이고 저 사람은 근태가 안 좋으니 우리 조치는 정당하다’라고 항변하는 기업이 있다면 그런 기업은 우리 사회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개인정보도 인권이다. 개인정보에 대한 인권감수성이 없는 기업이 고객 개인정보는 어떻게 다룰지 우려스럽다. 개인정보 관리 실태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사업장에 매일 별사람이 다 오기 때문에 솎아낼 필요가 있다고도 한다.
권 그렇게 일용직 리스크가 크다면 정규직을 쓰는 게 맞지 않나. 컬리처럼 매일 상시 인력이 필요한 기업에서 왜 일용직을 쓸까. 일용직을 써서 얻는 게 더 많기 때문이다. 일용직을 쓰면 고정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해고도 용이하다. 일용직 덕분에 컬리는 조직을 슬림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득을 계속 누리고 싶다면 일용직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컬리는 리스크는 피하고 이윤은 챙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블랙리스트다. 사람에게 ‘블랙’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혐오와 배제, 차별 행위다. 혐오로 성장하는 기업이 컬리다.
-코로나19로 일자리 없는데 그나마 컬리같은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않느냐. 비판하지 말라는 여론도 있다.
권 일자리의 양만큼 질도 중요하다. 목마르다고 소금물을 계속 먹으면 죽는다.
이 예컨대 컬리가 더 나쁜 노동환경을 만들어 다른 경쟁업체보다 앞서가고 해당 경쟁업체가 도태됐다고 치자. 그러면 시장 점유율이 높아진 컬리는 그 덕에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일자리를 전보다 많이 만들어줬으니 노동환경 악화는 또 눈감아줘야 하나. 그렇게 눈감을수록 더 나쁜 일자리가 양산된다. 악순환이다.
오 나쁜 일자리가 늘어나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지금 보고 있지 않나. 산재가 증가하고 사망자도 늘어난다. 요즘도 물류센터에서 배송현장에서 사람이 죽고 있다. 그 책임은 누가 지게 될까. 사망한 노동자와 유족이 나눠 진다. 불상사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사회가 지불한다. 애초에 나쁜 일자리를 만든 기업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않는다. 책임은커녕 그에 따른 모든 비용을 사회에 전가하는 구조다.
-블랙리스트가 공공연히 운용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권 집단적 의사표현, 흔히 콜렉티브 보이스라고 한다. 이런 의사표현을 할 통로가 닫히게 된다. 아니 컬리는 이미 닫혔다. 노동자가 불만이 있을 때 택할 수 있는 옵션은 두개다. 떠나거나 고치거나. 고치려는 목소리가 콜렉티브 보이스인데 블랙리스트는 그 목소리를 아예 지워버린다. 목소리 내면 블랙처리 된다. 남는 방법은 떠나는 것뿐이다. ‘불만 있으면 떠나라’는 건데 이건 사람을 일회용품 취급하겠다는 뜻과 같다. 일반 기업은 상용직을 통해 숙련노동 비율을 높이고 기업가치를 높인다. 일용직은 불안해 안 쓴다. 컬리 말처럼 일용직은 누가 올지 모르니까. 자칫 손해볼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용직을 쓴다는 건 ‘우리는 숙련이라는 기업가치가 필요 없는 기업이다’라는 의미다. 숙련노동 대신 일일 알바에게 최저임금을 주고 굴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마음에 안 들면 블랙 만들어 솎아 버리고. 컬리 블랙리스트에 한국사회의 취약한 노동현실이 다 녹아 있다. 그래서 싸우려고 한다. 이번 고발건이 불기소되면 항고할 것이고, 그래도 안 되면 재항고, 재정신청, 헌법소원까지 다 할 생각이다. 근로기준법이 규범력을 회복할 때까지 싸울 것이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