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은 왜 ‘지방대 할당’ 반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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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도시 공공기관 지역인재 의무채용… 공정한 취업기회 박탈 ‘역차별’ 주장

공공기관 지역인재 의무채용이 확대된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지역인재 채용 의무화 비율을 현행 30%(2022년 목표)에서 50%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전북 부안과 대구를 찾아 ‘지방대 50% 할당’ 방침을 거듭 밝혔다.

일자리 박람회에 참석한 구직자의 모습 / 이준헌 기자

일자리 박람회에 참석한 구직자의 모습 / 이준헌 기자

지역인재 의무채용은 왜 나왔나. 국토교통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제도라고 설명한다. 지역인재가 일할 지역 일자리가 생기면 인구 유출이 줄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시나리오다. 공공기관이 지역으로 이전한 취지와 다르지 않다. 지역인재 의무채용의 법적 근거도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있다.

‘제2의 인국공’

사회형평적 인력 활용과 균등한 기회보장은 지역인재 의무채용을 떠받치는 또 다른 축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있는 계층에게 취업기회를 부여한다는 취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방대 졸업자(지역인재)는 장애인·보훈대상자와 함께 사회형평적 채용 대상으로 분류된다. 정부는 지역인재 채용 성과에 따라 공공기관을 평가한다. 기획재정부 2019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편람에는 ‘사회형평적 인력 활용과 균등한 기회보장을 위한 노력과 성과’를 평가하도록 명시돼 있다. 공공기관이 비수도권 인재 채용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이유다.

지역인재 채용은 필요한가. 올해 수도권 인구는 전체인구의 50%를 돌파했다. 이대로라면 비수도권은 소멸한다. 균형발전 측면에서 지역인재 의무채용 제도는 당위성을 갖는다. 그런데 사회형평적 채용 측면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당장 ‘지역 소재 대학 졸업생을 사회형평적 채용 대상으로 봐야 하는가’를 놓고도 답이 갈린다. 지역 소재 대학 졸업장이 공공기관 취업에서 혜택을 받을 자격증이 될 수 있느냐는 주장이 나온다. 이 같은 반응은 청년층에서 두드러진다. 청년은 지역인재 의무채용을 ‘역차별’을 조장하는 ‘불공정’한 제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청년들은 왜 지역인재 의무채용을 불공정하고 생각할까. 지방대 할당은 불공정한가.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강원도 소재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박현수씨(가명·26)는 춘천과 원주에서 자란 강원도 토박이다. 박씨는 지난해 지역인재 전형을 통해 취업했는데 지역에서 가정을 꾸리고 뿌리 내릴 생각이다. 박씨는 “서울에서 오래 살다가 직장 때문에 온 사람들은 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한다”며 “반면 지역인재는 지역에 애정이 있다. 회사에서 기획 하나를 해도 지역 발전을 고민하고 주도적으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지역에 퍼져 있는 ‘박현수’는 인구 유출을 막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궁극적으로 지역균형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 여당에서 지역인재 의무채용 비율을 50%로 늘리기로 한 것도 더 많은 ‘박현수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균형발전이라는 당위

폐교 위기에 놓인 지방대 문제에도 지역인재 채용 의무화는 유효하다. 수도권 상위대학(20개 상위 종합대학)으로 매년 2만명의 비수도권 출신 학생이 옮겨간다. 10년 동안 20만명이 넘는 지역인재가 서울로 가는 셈이다. 이들의 90%가량이 수도권에 정착한다. 지방대 학생수 감소는 지방대 폐교로 이어지고 지역 소멸은 가속화된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지역에서 태어나면 지역에서 교육받고 지역에서 잘살 수 있는 길도 필요한데 지금은 그 통로가 막혀 있다”며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은 지방대 문제와 지역 공동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방 소멸로는 청년층을 설득하기 어렵다. 지난 2018년 정부가 법 개정을 통해 권고에 그쳤던 지역인재 채용을 ‘의무화’(2022년까지 30%)했을 때도 청년 여론은 ‘반대’가 우세했다. 지역인재 채용에 대한 당시 여론은 2017년 8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경사노위) 청년고용협의회가 주최한 간담회 회의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역인재 할당은 능력주의를 배제한 채 단지 지방 소재 대학 졸업자라는 획일적 기준을 사용하여 사실상 다른 사람들의 공공기관 취업기회를 박탈한다. 타인의 직업선택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에서 규정하는 평등 원칙에 위반될 수 있다.”(청년 측 대표 발언 발췌)

경사노위 간담회에 참석한 청년 10명은 공통적으로 현행 지역인재 요건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이 있는 지역의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지역인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거주기간 등 다양한 요건을 고려해 지역인재를 선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자리 박람회에 참석한 구직자의 모습 / 김창길 기자

일자리 박람회에 참석한 구직자의 모습 / 김창길 기자

이 같은 문제의식은 2020년 청년들에게도 나타난다. 대학 커뮤니티 게시판에 익명으로 글을 올린 한 대학생은 “이미 블라인드 채용으로 모두가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고 있다”며 “지방대 학생을 50% 채용하는 것은 수도권 대학생을 출발선에 설 수조차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역인재 전형으로 취업한 박현수씨 역시 이 같은 여론에 공감한다. 박씨는 “단순히 최종학력 소재지에 따라 지역인재 여부를 정하는 지금 시스템에서는 수도권 대학생들이 불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다고 본다”며 “대학생들 지적처럼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인재 의무채용의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제도의 불합리성에 대한 인식을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역차별 빌미 준 허술한 시스템

그렇다면 지방대 졸업자는 사회형평적 채용을 통해 일자리를 할당받아 마땅한 계층인가. 김세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공정 채용의 현실과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비수도권 대학 졸업자는 출신 가구의 소득 및 자산 등 경제적 여건에 있어 수도권 대학 졸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계층에 속할 가능성이 높고, 취업기회에 있어서도 불리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대졸자직업이동경로조사(GOMS)와 한국교육고용패널(KEEP) 조사 자료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에 따라 내린 결론이다.

그럼에도 김 연구위원은 현행 지역인재 의무채용 방식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현재 지역인재 의무채용에서 지원자의 경제적 취약성을 판단하는 유일한 근거는 출신 대학의 소재지다. 김 연구위원은 “경제적 취약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왜 ‘출신 대학 소재지가 수도권인지 아닌지에 주목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사회형평적 인력 활용과 균등한 기회보장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차상위 계층 등 경제적 취약성을 객관적으로 명확히 입증할 수 있는 기준을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채용을 ‘할당’하는 방식은 균등한 기회보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공기관이 15~34세의 청년 미취업자를 매년 정원의 3% 이상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한 ‘청년고용할당제’는 2014년 헌법재판소에서 ‘턱걸이 합헌’ 결정을 받았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위헌 의견은 5명으로 합헌 의견 4명보다 많았다. 하지만 의결정족수인 6명에 못 미쳐 위헌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당시 헌재는 “공공기관은 사기업과 달리 직원 채용에 있어서 균등한 취업기회를 보장하여야 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른바 역차별 논란을 피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지역인재 의무채용 방식을 당초 ‘채용할당제’에서 ‘채용목표제’로 수정했다. 채용목표제는 지역인재 채용 비율이 목표에 미달할 경우 그만큼을 정원 외로 추가로 채용하는 방식이다. 지역인재 채용 때문에 일반 응시생의 기회를 제한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하지만 채용목표제 역시 역차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채용 목표비율 달성을 위해 채용 계획보다 많은 인력을 정원 외로 초과 선발하면 향우 해당 기관의 신규채용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출신 대학의 소재지를 근거로 채용 혜택을 주는 ‘한국형 지역인재 정책’과 유사한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시가 자체 법령(City and County of San Francisco, 2010)을 통해 시에서 발주한 공사를 수주한 업체에 지역주민을 고용하도록 의무화했다. 샌프란시스코가 정한 채용요건은 출신학교 소재지가 아니라 실제 거주 여부다. 김영록 강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큰 틀에서 봤을 때 지역인재 의무채용 정책의 취지와 방향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만 정책 추진 과정에서 균형발전 당위성만 강조하다 보니 반발이 커지고 있는 것”이라며 “할당 목표치를 먼저 부풀려 내놓을 것이 아니라 여론을 설득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더 나은 정책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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