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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유죄 판결을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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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다. 사법농단 정점에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수사가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주말까지 나와 기록을 보고, 판결문을 작성했던 것은 그래도 판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보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명감과 보람이 사라진 지금 내가 법원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는 더 이상 없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월 11일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월 11일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최근 법원장에게 사표를 제출한 한 부장판사는 “더 이상 재판에 미련이 없다”고 했다. 주말도 반납하고 재판업무에 매달리기 일쑤였고, 실제 사건처리율도 여타 재판부보다 높았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매년 오르는 전세자금 대출이 고민이지만 나는 이 일이 제일 좋다”던 판사였다. 일련의 사법농단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다만 ‘나도 1년만 더 해당업무를 맡았더라면 사법농단의 핵심 연루자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고, 별다른 저항 없이 지시를 이행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假定)에 괴로워했다. 그는 한 차례 남은 마지막 선고를 내리고 법복을 벗는다.

지난 1~2주 사이에 법원에 사표를 제출한 판사는 20여명 정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월 정기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낸 판사(41명)의 절반 정도이다. 추가로 사표를 내는 판사들이 나올 것으로 보이지만 30명을 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법원 핵심 관계자의 전망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표를 내는 인사들 가운데 사법농단과 무관한 판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정작 탄핵 여부와 관계 없이 사법농단과 관련이 있는 판사들은 사표를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부장판사)의 경우, 재임용신청을 했지만 탈락해 내달 임기가 끝나 법복을 벗는다. 전직 판사는 탄핵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 1월 1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전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일로 법관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사기관의 조사까지 받은 데 대해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로 인한 것이니 그에 대한 책임은 모두 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여러분께 우리 법관들을 믿어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싶습니다. 절대다수의 법관들은 언제나 국민 여러분에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법관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성실히 봉직하고 있음을 굽어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법관들도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면서 법률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있고, 저는 이를 믿습니다. 그분들의 잘못이 나중에라도 밝혀진다면 그 역시 제 책임이므로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많은 판사들이 실망한 대법원 앞 회견

많은 판사들은 그의 짧은 발언 속에서 많은 생각을 읽어냈다. 결국 자신은 법에 위반되는 지시를 내린 적이 없고, 설령 검찰이 법 위반 사실을 발견하더라도 그것은 실무진이 저지른 잘못이라는 말을 늘어놓았을 뿐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절대다수의 법관들이 헌신하는 마음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왔다”면서 “그런데 그들에게서 사명감을 빼앗고, 판사라는 직분을 부끄럽게 만든 게 양승태 코트인데 어떻게 끝까지 자신만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수도권 지역 법원의 부장판사는 “부적절했지만 불법은 아니라는 논리가 실제로 먹혀들어갈 가능성은 높다. 검찰이 임종헌 전 차장,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과 양 전 원장 사이의 관련성을 얼마나 단단한 증거로 엮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유죄판결을 받는 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판결과는 별개로 양 전 원장이 대법원 앞에 서서 아직도 자신이 대법원장인 양 발언하고, 불법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한때 사법부 수장이었던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한 판사는 “양 전 원장을 그 자리(검찰청사)까지 불러온 것은 2017년 3월 8일 수많은 판사들이 올린 댓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며 “그는 대법원 청사 앞에 서서 기자회견을 하고 일선 판사들에게 모욕감을 줄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사법농단 사태는 이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계기로 정점에 올라섰다. 핵심 실무자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이미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기각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역시 발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검찰은 1월 22일을 전후로 양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다.

사법농단이 실체를 드러낸 이후 지난 2년간 법원 안팎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나. 사태는 2017년 3월 7일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이 “이탄희 판사(당시 기획 제2심의관)의 겸임발령 해제는 개인사정에 따른 조치”라고 해명한 일이 단초가 됐다.

앞서 이탄희 판사는 2017년 2월 9일 지방부장 이하 전보·인사발령을 통해 법원행정처 제2심의관 겸직발령을 받았다. 그로부터 닷새 뒤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이 판사에게 ‘판사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언급하며 특정 학회를 와해시킬 방안을 마련하고, 판사들에 대한 뒷조사를 하라고 지시했다.

수도권 지역의 ㄱ부장판사는 “이 판사가 이규진 부장으로부터 그 같은 지시를 받고 많이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부당한 지시에 대한 고민을 주변의 판사들과 논의했고, 이 과정에서 부당함을 외부로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몇몇 판사가 법관 온라인 커뮤니티인 ‘이판사판 야단법석’에 관련 글을 게시하면서 법원 내부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ㄱ부장판사의 설명이다. ㄱ부장판사는 “이탄희 판사는 어쩌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본인만 사표를 내고 끝내면 될 일이라 여겼을 수도 있다. 그 자체로 어려운 용기를 낸 것”이라고 했다.

이탄희 판사가 넘긴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200여명의 일선 판사들이었다. 고영한 당시 법원행정처장은 이탄희 판사가 부당한 지시에 항의하고 사표를 내자 행정처 심의관 겸직 해제발령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보도는 사실이 아니고, 해당 판사의 겸직해제는 개인적인 부분이므로 알려줄 수 없으니 일선 판사들은 동요하지 말고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하라”는 내용의 글을 코트넷(법원 내부 게시판)에 게시했다. 일선 판사들은 그러나 행정처장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코트넷에 ‘대법원장님에게 드리는 청원문’

양승태 대법원장이 2017년 9월 22일 퇴임식을 마친 후 판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대법원 제공

양승태 대법원장이 2017년 9월 22일 퇴임식을 마친 후 판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대법원 제공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였던 김형연 부장판사(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는 3월 8일 ‘대법원장님에게 드리는 청원문’을 코트넷에 올렸다.

“법원행정처장님은 어제 위 내용(언론 보도)이 사실이 아니며 해당 판사의 개인적인 부분은 알려줄 수 없다는 취지의 글을 게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법원 안팎의 의혹은 사그라지지 않고 피땀 흘려 이룩한 법원의 신뢰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땅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대법원장님께 법원을 사랑하는 충정으로 청원합니다. 더는 법원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게 대법원 차원에서 공정한 조사기구를 만들어 의혹의 시선들이 법원을 바라보지 않게 진상을 조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글이 올라온 지 불과 이틀 만에 2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판사들은 자신의 실명을 걸고 대법원장에게 진상규명을 요청했다.

ㄴ부장판사는 “법관들이 자신의 생각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것이 자유로웠던 이전 대법원장 시절에도 코트넷 게시글 밑에 댓글은 많아야 20~30여개 정도 달리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양승태 코트에서는 법관이 사법부의 방향과 다른 생각을 드러내고 글을 작성하는 것이 사실상 금기처럼 여겨졌음에도 200명에 가까운 법관들이 용기를 내서 그 글에 댓글을 달았던 것은 코트넷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판사들은 단순히 ‘동의한다’는 댓글만 남기지 않았다. ㄷ부장판사는 “저는 그다지 유능하지도 못하고 힘도 없는 평범한 한 명의 법관이지만 법원이 해야 할 사회적 역할과 그 속에서 법관 한 사람이 차지하는 소중함을 압니다. 누구보다도 우리 법원을 사랑하시리라 믿고 있는 대법원장님께서 김형연 부장의 청원을 받아주시길 간곡히 고언드립니다”라고 적었다.

ㄹ부장판사는 “지금의 진실게임은 공정하지 못합니다. 사법행정의 최고책임자인 행정처가 그 대상인 법관을 상대로 한 행위에 대해 스스로 진상조사를 한다는 것은 불공정합니다. 행정처가 개입하는 사실확인이나 진상조사라는 것은 동어반복에 불과합니다”라며 “진상조사가 아니라 고백과 사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라고 남겼다. ㅁ부장판사 역시 “처장님께서 해명글을 올리셨지만 그것이 법관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승인되지 않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법관들과 행정처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불신과 상처만을 남길 뿐입니다”라고 했다.

이틀만에 달린 200여개 댓글의 힘

대법원은 3월 13일 첫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사법연수원 석좌교수·전 대법관)를 꾸려 조사를 벌였지만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결론만 내린 채 마무리했다. 이후 2차·3차로 이어진 추가 조사위원회가 내린 결론도 동일했다. 문제가 될 만한 문건은 다수 발견했으나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결론만 있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대국민사과를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8년 6월 5일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7개월 사이 최소 90명 이상의 전·현직 판사 및 관련자들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이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를 압수수색하고, 전직 대법관을 비롯한 고위법관을 상대로 대규모 강제수사를 벌인 것 역시 사법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2019년 1월 3일 돌연 사퇴하고 대법관 업무에 복귀했다. 행정처장 취임 1년 만에 돌연 사의를 표명한 것을 두고 법원 안팎에서는 수사기관에 사법부의 빗장을 풀어준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견해 차이로 사퇴를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안 처장은 검찰 수사를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검찰은 그러나 양승태 코트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정권의 입맛에 맞는 각종 계획을 세우고, 실제 실행에 옮겼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상고법원 추진안을 밀어붙이기 위해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로비를 벌이고, 박근혜 정권과 영합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켰다.

법원행정처 근무경력이 없는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적어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부 구성원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인물이었다면, 진심으로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한다면 대법원 땅은 밟지 않고 조용히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갔어야 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사법농단의 정점에 서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어떻게 법정 안으로 불러와 유죄를 이끌어낼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지난 2년간의 사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묵묵히 재판을 이어온 판사들에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이미 ‘유죄’다.

검찰은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공소장에 44차례 등장한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자신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일제 강제징용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처분사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사건 등에 개입한 것으로 파악했다. 임종헌 전 차장에게 실무를 맡기고 자신은 보고를 받는 형식으로 각종 불법행위에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2017년 1월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대법원장 권한 분산을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열려고 하자 양 전 대법원장이 임 전 차장을 통해 저지방안을 강구할 것을 지시한 정황도 포착됐다. 임 전 차장은 ‘대응방안 검토’ 문건을 만들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직보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임 전 차장에 대한 공소장을 통해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유죄를 충분히 이끌어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하다. 임 전 차장이 검찰 조사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임 전 차장의 진술은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에 이어 양 전 대법원장의 유죄를 이끌어낼 수 있는 핵심 증거다. 임 전 차장은 그러나 구속기소된 이후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검찰이 어떤 회유를 해도 입을 열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임 전 차장과 박병대·고영한 처장의 공모관계를 입증할 만한 물적 증거를 확보하는 것 역시 양 전 대법원장의 유죄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검찰이 보강해야 할 숙제다.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박병대 전 처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범죄혐의 중 상당 부분에 관해 피의자의 관여범위 및 그 정도 등 공모관계 성립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 역시 같은 날 고영한 전 처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피의자의 관여 정도 및 행태, 일부 범죄사실에 있어서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 현재까지의 수사 진행 경과 등에 비춰 구속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단순히 대법원장은 모든 결정의 최종 책임자이므로 유죄라는 주장만으로는 유죄판결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얘기다. 임 전 차장이 독단적으로 전·현직 행정처 심의관들을 통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임 전 차장의 자백을 기대할 수 없다면 유죄를 입증할 만한 물적 증거를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1일 11시간에 걸쳐 이뤄진 검찰 조사에서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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