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전 세월호 가족대책위 총무 “세월호 전과 후, 변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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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다리의 통증이 더 심해졌다. 내일은 더 아플 것이다.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이렇게 버거운 고통일 줄은 몰랐다. 파스를 붙이고 압박붕대를 감는 것도 이쯤 되니 아무 소용없다. 12월 3일, 오늘로 33일째다. 평균 하루에 30㎞, 10시간씩 걷는 중이다.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팽목항에서 다시 안산으로. 총 1200㎞. 세찬 겨울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걸을 때, 억지로 바지춤을 잡고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끌며 걸을 때 문득 생각한다. “내가 지금 이걸 왜 하고 있는 걸까, 다리가 너무 아픈데 포기할까.” 그러나 이내 떠오르는 얼굴은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동생 오천이다. “내가 지금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2014년 4월 16일에 오천이가 느꼈을 공포와 고통, 두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생각 하나면 다시 걸어야 할 길들이 보인다.

권오현씨(29)는 11월 2일부터 도보행진 중이다. 도보행진을 결심하게 된 건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어서였다.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들, 권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권씨의 페이스북 계정에는 날마다 인신공격 메시지들이 날아왔다. 비방 내용을 붉은 글씨로 써 집으로 보내기도 했다. 지난 8월 페이스북에서 누군가가 또 보상금 문제를 걸고 넘어졌었다. 이번에는 ‘유가족들이 추가로 보상금 40억을 더 받게 됐다’는 근거 없는 얘기였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걸 ‘로또’라고 표현하더군요. ‘남들은 로또 한 번 못 맞아서 안달인데 로또를 두세 번이나 맞은 셈이니 좀 묻고 살면 안 되나. 정부에서 얼마나 더 비싸게 시체를 사주어야 하나’라더군요.” 더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심한 게 도보행진이었다. 혼자 떠난 길이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도시마다 권씨를 응원하기 위해 나온 시민들이 있었다.

권오현 제공

권오현 제공

지난 1년 반, 권씨에게 한국 사회는 지옥이었다. 그 지옥도는 한국 정치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세월호 유가족’이 되기 전, 정치에 대해서는 정말 문외한이었습니다. 행사 및 이벤트에서 노래하는 일을 했는데, 그 일에만 관심을 갖고 살았죠.” 참사 이후 뼈저리게 깨달은 건, 한국 사회에는 정부의 손길이 안 닿는 곳이 없으며 모든 것이 정치적인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는 어느 순간 ‘종북좌빨’이라는 프레임 속에 가둬지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며 눈물을 흘리더니,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폐기해달라니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하더군요.” 야당도 다르지 않았다. “선거 전에는 직접 와서 같이 회의도 하더니 지방선거 끝나고 나니 아예 오지를 않더군요. 7월 재·보선 전에만 반짝 또 찾아오고.”

세월호 이전과 이후, 한국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권씨에게 한국 사회는 하나도 변한 게 없는 “사람의 목숨과 돈을 저울질하는 사회”다. 권씨는 자신이 그랬듯이 깨어나는 사람들이 하나씩 늘어간다면 그제야 변화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권씨는 오는 17일쯤 안산에 도착할 예정이다. 권씨는 “몸은 고되어도 정신적으로 더 단단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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