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정보와 지식들이 유통되는 현장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할 때 우리는 이런 괴담들 속에서 진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은 사실(fact)을 찾아 알려야 하고, 전문가는 제대로 된 분석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즈음 글루텐 프리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글루텐이란 밀, 보리, 귀리 등에 들어 있는 글루테닌(glutenin)과 글리아딘(gliadin)이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일종의 불용성 단백질로 곡물을 가공하면 생성된다. 이 글루텐 덕분에 차진 밀가루 음식의 식감을 즐길 수 있고, 빵을 부풀게 할 수도 있다. 국수나 빵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여러 번 치대는 이유도 글루텐의 생성을 높여 더욱 쫄깃하고 차진 식감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고 있는 국수와 빵 등에 다량 함유되어 있는 글루텐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종합편성채널방송 프로그램들로 인해 이를 함유하지 않은 빵과 과자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 방송을 보면 가정의학 전문의와 한의사들이 출연하여 밀가루 중독증과 글루텐의 부작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밀가루 중독증이란 밀가루 내 글루텐이 분해되면서 엑소핀이라는 마약유사 물질을 만들어 내는데, 이 엑소핀으로 인해 밀가루를 먹으면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되고 자꾸 먹고 싶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글루텐으로 인해 여드름, 피부가려움, 설사, 변비, 비만, 습진, 탈모 등이 일어날 수 있고, 특히 분해된 글루텐이 장 점막에 붙어 점막을 파괴함으로써 과민성 장염 증후군과 만성 소화장애를 일으킨다는 주장도 한다.
밀가루 음식을 자주 섭취하는 미국인들을 보면 미국 인구의 20%가 과민성 장염 증후군과 만성 소화 장애를 앓고 있으며 미국 인구의 40%가 속쓰림과 습진, 우울증, 당뇨병 등으로 고생한다는 통계까지 제시하며 글루텐의 위해성을 주장하고 있다.
방송만 보면 마치 글루텐이 마약과 같고, 만병의 근원처럼 느껴진다. 밀가루 음식만 끊으면 살도 빠지고 머리도 좋아지며 가지고 있던 모든 병이 나을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러한 조류에 편승하여 글루텐을 넣지 않았다는 식품들이 앞다퉈 출시되고 있고 대체로 20% 이상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왜 이렇게 안 좋은 음식을 서양에서는 수천년간 주식으로 먹어왔을까? 왜 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와 식약처에서는 이런 위험 식품에 대한 조사와 하루 섭취량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실제를 확인해 보면 가능성은 있는 이야기지만 실제와는 다른 부분도 많다.
밀가루에 있는 글루텐, 만병의 근원?
먼저 중독증을 일으킨다는 엑소핀은 1970년대 발견되어 논란이 된 적이 있으나 실질적인 의미가 거의 없어 관심을 받지 못한 물질이다. 엑소핀은 밀가루뿐만 아니라 우유와 쌀, 시금치 등에서도 생성되는데, 마약과 비슷한 문제를 일으키려면 어느 정도의 농도가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밀가루 500g을 먹어야 7mg의 엑소핀이 생성된다. 이 또한 위장에서 대부분 소화되어 단 10%만 혈액 속으로 들어간다. 그 정도 양만으로도 중독 증상을 일으키는 물질이라면 강력한 마약 성분이므로 예전에 섭취를 제한했을 것이다. 그리고 글루텐이 일으킨다는 만성 소화 장애증도 글루텐 섭취와의 관계가 검증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확실한 통계나 연구결과가 없는 형편이어서 이를 글루텐과 연계시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부분 밀가루 섭취량이 많다 보니 각종 질병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셀리악병과 같은 글루텐 불내증이 있으나 이는 약 1% 정도의 발병률을 보이는 질병이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에게서는 거의 나타나지도 않는다.
결국 글루텐에 대한 불안증의 확산으로 식품업체들만 웃고 있다. 뒤늦게 방송시장에 뛰어든 종합편성채널들의 시청률을 끌어올리려는 욕구와 방송을 이용해 명성을 얻으려는 의사와 한의사 등 전문가들이 합작으로 만들어낸 글루텐 불안증 덕분에 국민들이 20% 이상 비싼 글루텐 프리 제품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방송과 언론기관이 소수일 때에는 엄청난 신뢰를 받아 왔었다. 친구들 사이의 논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논거는 “신문에 나왔어”, “방송에서 봤어”였다. 그러면 다른 이는 이를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언론매체가 다양해지고, 인터넷 같은 의사소통 수단들이 많아지면서 언론의 신뢰성은 바닥으로 떨어진 것으로 느껴진다. 이제는 신문에 나온 것도 검증을 해봐야 하고 방송에 나오는 화면들도 악마의 편집이 아닌지 앞뒤 정황을 따져봐야 하니 말이다. 아무리 시청률이 지상 최고의 과제라 하더라도 충격과 공포로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충격과 경악이라는 제목으로 도배된 인터넷 사이비 언론매체들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그리고 전문가 집단의 도덕성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방송에 나온 글루텐의 위험성들이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가 방송에 나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앞뒤 뚝 잘라서 문제점만 말할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반론과 의견도 소개해야 할 것이다. 글루텐이 그렇게 문제라면 식약처에 글루텐을 마약물질로 등록하라는 청원운동을 하든지, 아니면 하루 섭취량을 제한하자는 운동을 해야지 밀가루를 먹지 않았더니 살이 빠졌다는 것으로 넘어가면 길거리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들과 무엇이 다른가?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언론의 신뢰도
식약처 등의 정부기관도 국민의 식생활과 보건위생에 관계된 중요한 사안들은 직접 조사하고 실험하고 해명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밀가루에 대해 그렇게 불안해한다면 면밀한 실험과 조사로 국민건강을 위한 건강한 밀가루 섭취 권장안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담뱃세 인상으로 떨어진 담배 판매량을 지키기 위해 전자담배의 위해성을 과장하는 조사 발표 같은 것 말고 말이다.
새해에도 인터넷 세상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괴담들이 떠돌고 있다. 중국이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큰 시안의 피라미드를 숨기고 있다든지, 암스토롱이 실제로 달에 가지 않았다고 고백했다든지 하는 음모론부터 천안함과 세월호에 대한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 그리고 전자레인지를 쓰면 암에 걸린다는 이야기까지.
여러 정보와 지식들이 유통되는 현장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할 때 우리는 이런 괴담들 속에서 진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은 사실(fact)을 찾아 보도하고 알려야 하고, 전문가는 전문가답게 제대로 된 분석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기관도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이러한 괴담으로 혼란스러운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돼줘야 할 것이다.
<윤원철 KINX 경영지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