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값 구설’로 가시밭길이 ‘보인다’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가 차기 검찰총장에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11월 13일 인사청문회를 실시한 국회 법사위가 ‘조건부 적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인사청문회에서 나경원 의원(한나라당)은 ‘보인다’는 식의 검찰 표현을 문제삼았다. 지난 8월 한나라당의 경선과정에서 검찰은 도곡동 땅 의혹에 대해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모호한 결론을 내렸다. 나 의원은 2002년 대선과정에서 검찰이 “(이회창 후보의 장남인) 정연씨가 체중을 고의로 감량한 증거는 없지만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는 표현으로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이날 나 의원은 검찰이 BBK사건에 대해서도 ‘보인다’는 식으로 발표할까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임 검찰총장 내정자는 차기 검찰총장에 임명될 것으로 ‘보이지만’,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임 내정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청문회를 바로 코앞에 두고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에서 임 내정자를 삼성 관련 ‘떡값 검사’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법무팀장)는 부산고 선배인 이우희 전 삼성 구조본 인사팀장이 임 내정자를 전담했다고 주장했다.
청문회에서 임 내정자는 떡값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또한 떡값을 건넨 것으로 김 변호사가 주장한 이우희 전 인사팀장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선배이고 사적인 모임에서 한두 번씩 봤지만 1년에 몇 번씩이나 만났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임 내정자는 또 이우희 전 인사팀장과의 골프에 대해서도 “가끔 선배들 때문에 어울리는 경우는 있지만 (이 전 인사팀장과 골프를 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사퇴 요구를 거부했다. 임기 2년의 검찰 총수에 오르는 임 내정자는 앞으로도 계속 가시밭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연루 의혹을 뿌리치고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 임무에다, 대선을 앞두고 BBK 주가조작 사건을 공정하게 수사하도록 지휘해야 하는 임무가 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은 서로 대선 정국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인사청문회 내내 임 내정자가 반복한 말은 “법과 원칙에 따라”였다. 어떤 상황을 가정한 질문에 대해서도 임 내정자는 “가정적 상황을 전제로 한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고 되풀이했다.
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총장에 임명되고, 법과 원칙에 따라 BBK 사건을 수사하면 모든 일이 쉽게 풀릴 것으로 ‘보이지만’ 누구를 위한 법과 원칙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서로 자신의 이익에 따라 잣대를 들이대고 ‘법과 원칙대로’를 부르짖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은 대통합민주신당대로, 한나라당은 한나라당대로 그의 법과 원칙을 기대하고 있다.
그의 진로는 여전히 ‘보인다’는 모호한 표현 속에 존재할 뿐이다. 그 때문에 차기 정부가 출범한 후에야 그의 잔여 임기도, 행로도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윤호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