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기초과학의 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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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월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과학기술 영 리더와의 대화’에서 참석자와 악수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월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과학기술 영 리더와의 대화’에서 참석자와 악수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초등학생 시절, 막 대중화된 컬러텔레비전에는 그다지 많은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컬러텔레비전의 등장과 함께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 중 하나가 <동물의 세계>라는 자연 다큐멘터리였다. 주로 아프리카 사바나지역의 동물들을 보여주던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생물학자의 꿈을 키웠다. 생물학자가 되고 싶은것인지, 다큐멘터리 피디(PD)가 되고 싶은지도 모르던 그 시기를 지나 생물학과에 진학하고 나서야, 한국에서 자연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동물을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은 생물학자가 됐고, 천직으로 삼아 살고 있지만, 더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는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의 이상과 생물학의 현실

자연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생명의 다양성과 위대함이 생물학의 본질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생물학의 한 축은 분명 찰스 다윈이 정교하게 이론화한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진화생태학과 동물행동학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생물학의 한 축인 자연사 분야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사랑하고 자연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기록하려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전통을 형성해왔다. 한국에선 그런 학자를 이제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한국에 번역된 수많은 진화생물학 관련 번역서는 서양과 일본에서 번성했던 진화생물학자들의 일대기로 가득하다.

한국의 생물학 역사는 짧다. 해방 이전의 한국엔 생물학이라 부를 만한 전통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나비 박사 석주명이 박물학자로 다윈의 전통에서 연구를 수행했지만, 그 이후 한국에서 자연사 분야의 연구는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거의 멸종상태에 접어들었다. 전쟁 이후 국가재건사업의 일환으로 과학기술이 중심 분야로 떠올랐지만, 그 중심엔 물리학과 화학 그리고 공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생물학 또한 농학이나 의학 등의 응용 분야를 중심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출연연구소를 중심으로 과학기술이 발전하던 한국적 맥락에서 국가 지도자의 장기적인 안목 없이 서양이나 일본처럼 자연사 분야의 생물학이 자리 잡을 여지는 없었다.

대학에 막 입학했던 1990년대 초만 해도, 대부분의 대학 생물학과에서 박물학 전통의 노교수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해방 이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교수가 된 이들이 다루던 생물학은 분류학이나 생태학 등의 자연사에 치우쳐 있었고, 해방 직후 일본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새로운 세대의 생물학자들이 돌아오면서부터 한국 생물학계에도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의 전통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00년대가 시작되기 전에 한국 생물학계에서 자연사 전통의 학자들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한국적 연구지원시스템의 영향으로 한국의 생물학은 인간 질병 연구를 주축으로 하는 의생명과학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됐다. 그런 이유로, 한국의 생물학자 대부분은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의 연구는 아프리카가 아니라 병원의 환자들 속에서 의미를 찾기 때문이다.

한국 기초과학의 딜레마

응용과학이 기초과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생물학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대학이 과학연구의 주도권을 갖게 된 1980년대 이후부터 대학교수들은 정부를 향해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을 끊임없이 요구해왔고, 이런 대학의 주도권은 결국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계획을 거쳐 기초과학연구원 IBS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한국적 맥락의 기초과학에 대한 왜곡 덕분에 기초과학연구원의 생물학 연구자 중에는 정말 보호받아야 할 자연사 분야의 학자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한 국가가 기초과학을 진흥한다고 할 때, 그 핵심적인 철학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어야 하는데, 한국의 생물학 전통엔 이제 보호해야 할 다양성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1980년대 이전에 거의 멸종해버린 자연사 분야의 생물학 전통은 기초과학연구원이 설립되던 21세기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화석이 돼버린 셈이다.

IBS의 생물학 연구 분야를 자세히 살펴보면, 리더로 선정된 과학자들의 연구 분야가 선진국에선 기초과학으로 분류되지 않는 응용연구 분야라는 걸 알 수 있다. 줄기세포 연구나 암생물학 연구를 굳이 IBS에서 기초과학이라는 이유로 지원해야 하는 기저에는, IBS의 설립이 처음부터 끝까지 노벨상 수상이라는 허망한 목표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충분히 설명될 것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철학이 없던 정치지도자와 기초과학의 발전이 아니라 정부의 눈치만 보던 공무원과 정치과학자들이 정초한 IBS의 철학 속엔, 기초과학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빌려 노벨상을 받을 만한 과학자를 키우겠다는 한국적 과학기술정책의 진정한 목표가 숨어 있던 셈이다.

국민의 세금을 받아 연구하는 과학자는 당연히 연구의 목표 속에서 인류에 대한 기여를 고려해야만 한다. 하지만 기초과학이라 불리는 분야들은 이런 패러다임 속에선 멸종할 수밖에 없는 연구를 포함한다. 우리는 아인슈타인과 다윈의 순수한 호기심에 경외심을 표현하면서도, 실제로 그런 종류의 과학을 지원하는 데는 주저하는 패러다임 속에서 과학을 사고한다. 이런 패러다임의 극단에선, 심지어 겉으로는 그런 기초과학을 중흥해야 한다는 이유로 설립된 연구소조차, 결국은 인간 질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생물학 연구는 아예 기초과학으로 선정조차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한국의 기초과학은 윤석열 대통령이 연구개발비를 삭감하기 이전부터 이미 잘못된 철학과 방향 속에 표류하고 있었다. 노벨상을 원하지만, 노벨상을 탈 수 없는 정책만 남발하는 딜레마 속에 한국의 기초과학은 이미 죽어 있다.

문제는 과학자들에게 있다

한국에서 기초과학을 되살리겠다는 꿈을 꾸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기초과학에 대한 정치지도자의 무지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때문이 아니다. 그건 한국의 과학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암묵적인 선입견 때문이다. 한국의 과학자들은 기초과학을 존중하지 않는다. 정치인과 공무원을 상대로는 기초과학을 진흥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그들이, 실제로는 기초과학을 지원해야 하는 때가 오면 유행하는 연구 분야만 지원하는 코미디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행만 따라가는 분위기 속에선 기초과학이 결코 발전할 수 없다. 한국 과학자 사회의 기초과학에 대한 저열한 철학 속에 기초과학은 서서히 멸종했다고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기초과학연구원에는 초파리가 한 마리도 없다. 생물학의 최첨단 연구로 10년도 안 돼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 내 자넬리아연구소의 첫 리더는 초파리 유전학자였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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