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우리 동네가요?…‘아동친화도시’ 살면서도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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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5일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한 가족이 우의를 입고 동물원으로 향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2023년 5월 5일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한 가족이 우의를 입고 동물원으로 향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국내 ‘아동친화도시’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자녀를 1~2명씩 두고 있는 40대 중반 아빠 8명에게 물었다. 거주하는 곳은 강원 원주, 경기 고양·용인, 서울 강동·동대문·마포·송파(2명) 등이다. 모두 “모른다”고 했다. 그냥 모르는 정도가 아니다. “아동친화도시를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이번엔 모 육아카페 회원인 엄마 8명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거주지는 모두 서울의 한 자치구로 동일하다. 마찬가지다. 아동친화도시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은 가지만, 국내에 그런 도시가 있느냐는 반응이다.

‘아동친화도시’는 유엔 산하기관인 국제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도시 또는 지역 거버넌스에 부여하는 ‘인증’이다. 아동친화도시로 인증을 받으려면 협약에서 제시하는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조례와 전담조직 등 10가지 구성요소를 갖춰야 한다. 인증을 받기 위해 갖춰야 할 요건도 많고, 지속적인 이행 여부 등에 따라 재인증도 받아야 하는 등 인증받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위 8명의 부모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강원 원주, 경기 고양을 제외하곤 이들이 살고 있는 도시(지자체)가 이미 아동친화도시로 인증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원주와 고양시도 조례 제정 등 인증을 추진 중이다. 국내에는 아동친화도시가 꽤 많다. 1월 31일 기준 전국 92개 지자체가 인증을 받았다. 전국 광역·기초 지자체(273개)의 33.3%가 아동친화도시라는 얘기다. 여기엔 대도시 대부분이 포함돼 있다. 33개 지자체는 인증을 추진 중이어서 향후 아동친화도시 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다시 해봐야 한다. 아동친화도시가 이렇게나 많은데 왜 ‘우리는 잘 알지도, 체감하지도 못할까’. 아동친화도시는 매년 늘고 있는데 왜 ‘우리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2013년 국내 첫 유니세프 인증 ‘아동친화도시’가 탄생한 지 10년이 지났다. 아동의 권리가 보장되는 ‘당연한’ 시대를 넘어 아동이 안전하고 행복한 공간·도시·사회로의 확장을 위해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아동참여, 친화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동권 신장에 기여한 ‘아동친화도시’

국내에서 ‘아동권’이 주목받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단적으로 1991년에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고도 30년 넘게 이를 명문화한 법률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회복지단체 관계자는 “심각한 아동 학대나 살해 등 범죄가 일어났을 때 파편화된 관련 법령들을 ‘덕지덕지’ 고치는 식”이라며 “아동복지법이 복지에 관한 사무 외에도 협약을 반영한 법인 양 개정을 거듭한 끝에 비대해진 이유”라고 말했다. 협약을 명문화하겠다며 여야가 지난해 발의한 ‘아동기본법안’은 기약 없이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부처별로 제각각이던 아동정책을 통합해 국가 차원에서 ‘아동기본정책기본계획’을 처음 마련한 것도 2015년(제1차 계획)으로 약 8년 전이다. 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실시한 ‘2013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선 대한민국 아동의 ‘삶의 만족도’ 및 ‘결핍지수’가 OECD 국가 중 ‘월등하게’ 꼴찌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1차 계획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권고하는 아동권 보장과 신장 측면에서 작성된 최초의 종합 계획이기도 하다.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위해 준수해야 할 유엔아동권리협약 4대 핵심 기본원칙 /유니세프 홈페이지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위해 준수해야 할 유엔아동권리협약 4대 핵심 기본원칙 /유니세프 홈페이지

정부가 아동과 아동권에 대한 주먹구구식 대응을 하는 동안 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여론을 환기시킨 건 유니세프, 세이브더칠드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 크고 작은 비정부기구(NGO)와 수많은 무명(無名) 활동가다.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의 경우 조례로나마 협약을 명문화하고, 지자체가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는 조직과 절차를 갖게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규격화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아동권 신장 노력을 사실상 유니세프가 대신 맡은 셈이다. 정부는 1차 기본계획에서 “아동친화도시 확산을 적극 지원하고, 아동친화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조례를 제정하도록 매년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2013년 서울 성북구를 시작으로 올 1월 서울 마포구까지 매년 평균 9.2개 지자체가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았다. 현재 인증을 받은 지자체 중 72곳은 현재 아동정책전담조직을 운영 중이다. 인증추진 지자체를 포함해 아동권리전담인력을 둔 지자체 수가 118곳, 아동이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기구를 둔 지자체 수가 103곳에 달한다. 인증 지자체에선 아동권리독립기구 운영을 통해 아동권리침해사례를 조기 발굴하고 구제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류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아동권리정책팀장은 “아동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던 지자체 행정체계에 아동 의견을 듣기 위한 전담부서가 신설됐고, 중앙정부에 ‘아동친화정책팀’이 생기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많이 일어났다”며 “인증 지자체 내 아동들이 느끼는 ‘인권존중정도’(아동인권이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정도)도 과거에 비해 2.45배가량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아동친화도시는 늘었는데 ‘아동친화공간’은 부족

아동친화도시 인증이 늘면서 아동권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관심도 높아졌지만 이를 일상에서 체감하는 건 쉽지 않다. 아동이나 부모 입장에선 막상 ‘노키즈존(No Kids Zone)’과 같은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아동친화도시가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노키즈존을 둘러싼 숱한 논쟁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 시정 권고 등에도 불구하고 국내 노키즈존은 약 500곳에 달하는 것으로 아동인권단체들은 추정 중이다. 국내의 경우 유니세프의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는다는 것이 곧 물리적 ‘공간’의 관점에서 도시가 아동친화적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아동을 동반한 국내 가족단위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제주도가 노키즈존이 가장 많다는 점과 현재 제주도가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 이유다.

아동들이 여가와 문화를 즐길 권리, 즉 ‘쉬고 놀 권리’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의 4대 기본 원칙 중 하나인 ‘발달권’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매번 실태조사 때마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대요’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온 어른들이 고민을 안 한 건 아니다. 도심에서 아동친화적인 공간을 찾고, 만들고, 바꾸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수원시 탑동에 조성된 1867㎡(약 567평) 규모의 ‘서낭재 어린이공원’. 어린이 참여를 통해 3개의 연속된 대형 슬라이드(미끄럼)로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수원시 제공

수원시 탑동에 조성된 1867㎡(약 567평) 규모의 ‘서낭재 어린이공원’. 어린이 참여를 통해 3개의 연속된 대형 슬라이드(미끄럼)로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수원시 제공

지자체 차원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아동친화형 놀이터(쉼터)나 어린이공원 조성 사업이 대표적이다. 서울 성북구는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계기로 아동·청소년을 위한 놀터·쉼터 등의 활동공간을 11곳 조성해 운영 중이다. 시설 계획 단계부터 운영까지 아동·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청소년들이 제안한 놀이터의 이름인 ‘ㅁㅁ(미음미음)’도 ‘없을 무(無)’라는 뜻과 비어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채울 수 있다’는 의미를 더해 만들었다. 각 청소년 놀이터는 10~20명으로 구성된 청소년운영위원회가 매달 회의를 연 뒤 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토대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예산이 필요한 사업 역시 아동과 청소년, 보호자의 투표를 통해 선정하는 공개적인 과정을 거쳐 집행된다.

서울시는 2015년부터 ‘창의어린이 놀이터’라는 놀이터 환경 개선사업을 벌이고 있다. 모래, 흙, 목재 등 자연재료로 공간을 조성해 아동의 정서발달과 창의력 발달에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다. 지역주민 공모 방식을 통해 사업대상을 선정한 뒤 기획단계에서부터 지역주민, 아동, 마을활동가들이 참여한다. 2019년까지 91개의 놀이터가 리모델링됐고, 18개의 놀이터가 신규 조성됐다. 경기 수원시 서낭재 어린이공원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인근 학교 학생들이 조별 수업과 과제수행을 통해 현장답사, 토론, 모의 공원 모형 제작 등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조성한 사례다.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자체별 아동친화형 놀이터·어린이공원 사업은 일정 부분 한계를 갖는다. 주로 리모델링하는 형태이다 보니 절대 면적에선 기존과 별 차이가 없고, 드문드문 조성돼 공간의 연결·연속성이 떨어진다. 서울시정연구원이 2020년 시내 ‘어린이 놀공간’을 파악해보니 아동인구 1인당 ‘놀공간 면적’은 3.06㎡였다. 채 1평(3.3㎡)이 안 된다. 이마저도 자치구별로 편차가 커서 광진구(1.83㎡)와 노원구(4.21㎡)는 갑절 이상 면적 차이가 났다. 놀이터가 주로 아파트단지 위주로 조성되다 보니 대단지 밀집지역에 반해 저층 주거지 밀집지역은 상대적으로 놀공간이 부족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이를 근거로 시정연은 “서울 어린이 놀공간의 상당수는 사유화됐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아동 고려·참여 필요”

독일 최초의 ‘놀이도시’를 표방한 그리스하임에서 아동들이 거리마다 조성된 아동친화형 구조물과 보행표시물 등을 이용해 놀이를 즐기고 있다. 국토연구원 제공

독일 최초의 ‘놀이도시’를 표방한 그리스하임에서 아동들이 거리마다 조성된 아동친화형 구조물과 보행표시물 등을 이용해 놀이를 즐기고 있다. 국토연구원 제공

어, 우리 동네가요?…‘아동친화도시’ 살면서도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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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으로 도시계획 단계부터 아동친화요소를 고려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아동을 배려한 주택 설계부터 시작해 동선의 편의와 안전성을 감안한 거리와 도로, 친화공간 조성 등 그야말로 ‘아동친화’도시를 짓자는 제안이다. 이 과정에서 아동의 요구와 수요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아동의 도시계획 참여는 필수적이다. 아동이 성장하는 공간을 포함한 주변 환경의 여러 가지 여건이 아동의 발달과 성장에 얼마나 중요하며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도 이미 입증됐다.

김도형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아동친화도시가 아동의 안전한 환경을 보장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공간을 의미하므로 조성 사업의 추진을 위해서는 아동친화적인 도시계획이 필요하다”며 “아동의 의견이 도시계획에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지자체와 전문가의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유니세프도 아동친화도시를 넘어 ‘아동친화사회’ 구축을 목표로 도시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지침서가 2020년 발간한 <아동친화적 공간 계획 및 조성 안내서>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2022년 건축공간연구원과 함께 소규모 공공임대주택을 아동친화주거공간으로 개발해 공급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아동친화·참여 도시계획이 국내에서 시도된 적은 아직 없다. 해외에선 사례가 있다. 국토연구원의 최근 연구보고서(‘아동이 참여하는 지역개발: 독일 사례를 중심으로’)를 보면 독일 연방주 중 한 곳인 라인란트 팔츠는 1999년부터 도시나 지자체에서 추진할 수 있는 아동 참여 도시계획 기법 개발해 적용 중이다. 독일의 도시 그리스하임은 ‘최초의 놀이도시’를 표방하며 도시 전체를 아이들의 놀이 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2015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등·하굣길과 다양한 놀이 장소에 대한 관점을 어른들이 아동과 함께 실제 현실로 구현해냈다. 베를린시는 아동의 참여를 통해 추후 놀이 및 여가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구도심을 지정해 아동친화지역으로 단계적인 구역 리모델링을 진행 중이다.

이우진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아동친화도시 사업을 추진하는 도시 및 지자체가 공간 계획적 차원에서 아동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지침서’를 개발해 제공하는 일이 우선 중요하다”며 “정부도 국토종합계획에 아동친화요소를 반영하고, 아동정책기본계획·아동정책조정위원회 등에 국토부가 참여하도록 하는 등 유관부서가 통합적인 정책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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