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들이 갑질을 많이 한다며 이런 독과점 행태를 정부가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금융위원장도 금융권의 역대급 이자 수입 증대가 국민의 부담 증대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들어 3분기까지 국내 은행들의 이자수익이 44조원을 넘어 역대 최대를 기록한 반면 많은 자영업자는 이자 부담으로 고통이 커졌다. 금융권을 향한 비판이 거세지자 일부 정치인들은 손쉬운 이자 장사로 막대한 이윤을 번 은행들에 대해 횡재세를 부과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은행들은 최근 높은 금리를 내는 자영업자들에게 1억원 대출에 최대 150만원의 이자를 환급해 주겠다는 상생금융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대 경제에서 금융은 여유자금을 모아 자금이 필요한 이들에게 순환시키는 경제의 혈관 역할을 한다.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통해 투자와 성장을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여러 연구는 금융의 발전이 경제성장을 촉진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럼에도 최근 각국에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저소득층의 어려움이 커지면서 은행들의 높은 수익과 임금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22년 5대 은행 임직원의 평균 연봉이 1억1000만원을 넘었다. 이는 대략 근로소득 상위 4~5%에 달하는 수준이다.
경제학계도 이제 금융과 불평등 사이의 관계를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몇몇 이론적인 연구는 금융 부문이 발전하면 자본의 배분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고 과거에는 자금을 빌리기 어려웠던 가난한 이들이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돼 불평등이 개선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연구는 금융이 불평등에 미치는 효과가 금융발전의 수준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금융의 발전단계가 낮을 때는 소수의 부자만이 혜택을 누려 불평등이 악화될 수 있지만, 금융발전이 심화되면 가난한 이들도 금융의 혜택을 누려 불평등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득수준과 불평등 사이에 비선형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고한 쿠즈네츠 곡선과 유사한 주장이다.
다른 연구는 그러나 금융의 발전과 함께 이미 금융시장을 장악한 부자들이나 대기업들의 기득권이 강화되고 은행들도 이들과의 관계를 심화시켜 불평등이 악화될 수 있다고 보고한다. 특히 금융규제 완화는 금융발전을 촉진할 수 있지만, 금융산업의 위험을 높여 금융위기가 오면 신용경색과 투자 감소, 산출 하락 등과 더불어 노동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금융 부문이 과도하게 팽창하면 지대추구와 함께 금융업자들의 소득이 크게 증가해 상위소득 집중도와 불평등이 높아질 수 있다.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은 1980년대 이후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금융산업의 부가가치나 이윤이 차지하는 비중 등으로 측정되는 금융화가 진전되었다고 보고한다. 이를 배경으로 금융 부문 종사자의 소득이 높아진 반면 기업의 투자나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체됐다. 단기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금융자본가들의 이해와 권력의 강화가 성장의 정체와 소득분배의 악화를 낳았다는 것이다. 최근의 한 실증연구는 민간신용으로 측정되는 금융발전의 정도가 GDP의 약 100%를 넘을 정도로 과도하게 금융이 발전하면 경제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제시한다.
금융발전과 소득불평등 사이의 관계에 관한 실증연구도 급속히 발전되고 있다. 과거의 연구는 불평등에 미치는 여러 변수를 통제한 후에 금융발전이 소득불평등을 감소시킨다고 보고했지만, 최근 연구들은 금융발전과 소득불평등 사이에 비선형적 관계가 있다고 보고한다. 필자는 최근 국가 간 실증분석을 통해 금융발전 변수가 지니계수나 상위소득 집중도로 측정되는 소득불평등과 U자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발견했다. 즉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낮은 금융발전의 초기에는 소득불평등이 줄어들지만 이후에는 불평등이 커졌다. 특히 소득불평등이 개선되다가 악화되기 시작하는 변곡점의 금융발전 정도가 상당히 낮았다. 이는 현재 모든 선진국과 상당수의 개도국에서 금융이 발전할수록 소득불평등이 악화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OECD의 다른 연구도 금융발전이 고소득층의 신용 확대와 금융 부문 종사자의 임금프리미엄 확대 등을 통해 그 이득이 고소득층에 집중돼 불평등을 악화시킨다고 보고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금융발전의 지표인 민간신용이 가계부채와 관련이 큰데 그 상당 부분이 부동산 구입과 관련이 있다. 주로 고소득층이 이러한 부채의 규모가 더 크기 때문에 민간신용과 가계부채의 증가는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부자들의 자산가치와 소득을 더 증가시켜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최근 연구는 주택과 같은 비금융자산의 구입을 위한 신규 가계부채나 가계부채 잔액 증가가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한다.
필자는 또 다른 연구에서 금리와 비교한 은행의 자본수익률로 측정된 은행 부문의 초과이윤이 상위소득 집중도나 지니계수로 측정된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킨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는 금융화가 발전되고 지대추구가 심화돼 경제의 다른 부문에 비해 금융 부문의 수익이 높아질수록 경제 전체의 소득분배가 나빠짐을 뜻한다. 특히 은행 산업의 독과점 정도를 보여주는 산업집중도가 소득불평등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한편 가계부채는 민간신용의 중요한 부분으로 금융발전과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소득불평등 자체가 가계부채와 금융 부문의 문제를 심화시켰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됐다. 2000년대 초 미국에서는 저소득층이 소득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소비를 계속 확대하기 위해 부채를 늘려 소득불평등 심화가 가계부채의 증가를 낳았다고 한다. 특히 하위 90% 계층의 부채 확대는 소득이 크게 높아진 상위 1% 부자들의 과잉저축에 의해 조달됐지만, 금융 시스템을 취약하고 불안정하게 만들어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이러한 연구들은 금융발전과 소득불평등이 서로 복잡하게 상호작용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현재 가계부채 수준이 매우 높은 한국에서도 소득분배 악화와 부채 증가 그리고 금융발전 사이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세계은행의 세계금융발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GDP 대비 민간신용비율은 약 172%를 기록해 금융발전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이는 성장과 소득분배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불평등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일시적인 은행 때리기를 넘어 금융 부문을 적절히 관리하기 위한 노력이다. 주택담보대출 규제 등을 통해 과도한 금융발전과 부채증가를 억제하고 은행 부문의 경쟁을 촉진하며 금융 부문의 과도한 보상을 줄여야 한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