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반등이냐, 기저효과 따른 착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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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증가세 전환…지표상 상저하고, 체감은 아직

통계청이 10월 소비자물가를 발표한 지난 11월 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통계청이 10월 소비자물가를 발표한 지난 11월 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수출이 1년여간의 부진을 털고 증가세로 전환했다. 지표만 보면 주요 품목인 반도체와 최대 무역국인 중국으로의 수출이 바닥을 찍는 분위기다. 정부는 수출이 경기 반등과 상저하고 흐름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기저효과 영향이 크다는 반론이 나온다. 물가는 기저효과 작용에도 불구하고 예상치를 뛰어넘는 상승세를 보인다. 11년 만에 등장한 이명박(MB) 정부의 물가 관리 방식을 두고선 실효성 논란도 제기된다.

경기 반등이라는 정부

본격적인 수출 부진은 지난해 4분기(10~12월)부터 시작됐다. 월별로는 지난해 10월(전년 동기 대비 -5.8%)부터 올해 9월(-4.4%)까지다. 수출이 증가세(5.1%)로 전환한 건 지난 10월(550억9000만달러)부터다. 수출 감소 13개월 만이다. 반도체와 대(對)중국 수출 감소 폭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 수출은 1년 전에 비해 감소폭이 크게 줄어들었다. 10월 반도체 수출액은 89억4000만달러, 전년 동월 대비 3.1% 감소했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공급망 차질과 수요 부족, 인플레이션 상승 등으로 같은 해 3분기(-3.9%)부터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를 찍기 시작해 올해 1분기엔 -40%까지 감소 폭을 키웠다.

반도체 수출이 늘면서 재고는 줄었다. 9월 기준 반도체(전월 대비 -6.7%)와 기계장비(-9.0%) 등 재고가 줄면서 제조업 재고율(재고/출하)은 전월보다 10.4%포인트 하락한 113.9%를 기록했다. 반도체 생산도 8월 13.5%(전월 대비) 증가한 데 이어 9월에 12.9% 늘었다.

최대 교역국인 대중국 수출도 개선되는 분위기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중 반도체 비중이 2012년 13.3%에서 2022년엔 33.4%까지 차지한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반도체 업황 부진, 중국 경제 둔화 등으로 한국의 중국 수출은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5월부터 무역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해 올 10월까지 18개월 연속 뒷걸음질 치는 중이다. 다만 수출 감소폭은 줄어들었다. 전년 동기 대비 감소율이 올 들어 지난 1분기 -29.7%, 2분기 -22.2%를 기록한 데 이어 이후 월별로 7월 -24.9%, 8월 -19.9%, 9월 -17.6%, 10월 -9.5% 등을 나타냈다.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1월 1일 ‘10월 수출입 동향’을 발표하면서 “세계 고금리, 미·중 경쟁과 공급망 재편,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고유가 등 어려운 대외 여건에도 무역 흑자를 유지하며 플러스 전환에 성공했다. 앞으로 수출이 경제 상저하고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1월 5일 서울 한 대형마트의 우유 진열대.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우유가 포함된 28개 주요 품목의 담당자를 지정해 물가를 전담 관리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지난 11월 5일 서울 한 대형마트의 우유 진열대.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우유가 포함된 28개 주요 품목의 담당자를 지정해 물가를 전담 관리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경기 반등이냐, 기저효과 따른 착시냐

사실 올해 4분기 ‘수출 플러스 전환’은 예상됐던 결과다. 지난해 4분기 수출 감소율은 10월 -5.8%, 11월 -14.2%, 12월 -9.7% 등으로 크게 쪼그라들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분기 ‘플러스 전환’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부총리는 지난 9월 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찬 바람이 불수록 3분기, 4분기로 갈수록 수출 성장 지표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또 9월 4일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9월에는 무역수지 흑자기조와 함께 수출 감소 폭이 추가로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4분기 중에는 수출이 플러스 전환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저효과 영향으로 올 4분기 수출이 증가세로 전환될 것이란 예측은 많았다. 다만 여기에 반도체 업황 개선 등 영향이 더해지면서 수출이 탄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두 요인이 다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11월 7일 발표한 경제동향에서 “자동차(10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19.8% 증가)의 견조한 증가세가 유지된 가운데 반도체(-3.1%)의 감소폭이 축소되면서 전체적인 수출 부진이 완화됐다”면서도 “10월 수출의 높은 증가세는 기저효과도 일부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경기반등은 시기상조 관측

반도체 업황 개선과 기저효과 영향 등으로 수출 수치는 플러스 전환됐지만, 경기 반등을 논하기엔 시기상조라는 관측이 나온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제조업 생산과 수출 부진이 완화되고, 기저효과 영향이 더해지면서 10월에 이어 11월에도 수출 증가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지표상으로만 보면 정부가 예고한 상저하고 전망과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중국 경기 부진과 더불어 자동차를 제외한 주요 수출 품목들이 여전히 위축돼 있고, 국내 소비심리마저 얼어붙어 있어 당장은 경기 반등이라고 얘기하긴 어려운 여건”이라고 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앞서 지난 9월 초 발표한 ‘상저하고 가능성 제고를 위한 경기회복 모멘텀 확보 절실’이란 보고서에서 하반기로 갈수록 U자형 회복(상저하고) 시나리오와 L자형 침체(상저하저) 시나리오 모두 가능성이 있다면서 “어느 시나리오를 따르더라도 지난해 하반기의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로 2023년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상반기보다 높아지는 ‘지표상 상저하고’가 예상되지만, 시장에서 가계와 기업이 체감하는 경기는 다른 모습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는 경기 관련 대표 지수인 동행지수순환변동치에서도 확인된다. 동행지수순환변동치는 현재의 경기가 어느 국면에 있는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이 지표가 100보다 낮으면 경기가 불황 상태라는 뜻이다. 지난 10월 31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동행지수순환변동치는 0.1포인트 떨어진 99.3으로 4개월 연속 하락했다. 9월 지수가 올 1월(99.4)보다도 낮은 것으로, 올 초와 비교해 경기 수준이 나아진 게 없다는 의미다.

넉 달째 개선세를 보인 무역지수는 ‘유가 기저효과’를 보고 있다. 한은이 10월 31일 발표한 ‘2023년 9월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을 보면, 9월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1년 전 대비 4.5% 오른 87.25를 기록했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수출상품 한 단위 가격과 수입 상품 한 단위 가격의 비율이다. 한 단위 수출로 얼마나 많은 양의 상품을 수입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지수가 낮아질수록 교역조건이 나빠진다는 뜻이다. 9월 지수는 지난해 국제유가가 크게 상승한 데 따른 기저효과 때문에 좋아졌다. 수입가격(-9.9%)이 수출가격(-5.8%)보다 더 크게 내린 영향을 받았다. 국제유가가 다시 반등하면 이런 기저효과 영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월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 회의에 참석해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통신비 부담 완화 방안에 대한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월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 회의에 참석해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통신비 부담 완화 방안에 대한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기저효과 영향 비켜난 물가

물가는 기저효과 영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10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8% 올랐다. 농축수산물이 1년 전보다 7.3% 올라 전월(3.7%)보다 상승폭을 키웠다. 그중에서도 농산물이 13.5%나 뛰었다.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는 4.6% 상승했다. 다만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3.6% 올라 9월(3.8%)보다 상승폭이 다소 줄었다.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7월 6.3%를 정점으로 올해 7월 2.3%까지 내려가며 안정세를 찾는 듯했으나 8월 3.4%, 9월 3.7%로 다시 오름세를 탔다. 정부는 그간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때마다 “10월이면 다시 물가가 둔화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지난 7월 추경호 부총리는 추석을 앞두고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물가는 서서히 3분기, 4분기에 안정될 것”이라며 “10월 정도 가면 밥상 물가, 장바구니 물가는 안정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했다. 지난 7월 기저효과 영향으로 2.3%까지 내려가며 안정세를 보인 것처럼, 올 4분기도 비교적 안정세를 찾으리라고 내다본 것이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지난해 물가는 7월 정점을 찍은 이후 하반기에도 (5%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런 이유에서 올 하반기는 기저효과 영향으로 비교적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특히 10월엔 더 낮아지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통상 농산물을 수확하는 10월엔 공급이 늘어나고 (폭우와 폭염 등) 계절적 요인에 따른 부정적 요인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올해는 그러나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다른 흐름을 보였다”고 말했다. 10월 전체 물가에서 석유류는 1년 전과 비교해 1.3% 하락했다. 전년 동월 대비 하락 폭이 7월 -25.9%, 8월 -11.0%, 9월 -4.9% 등으로 줄어들면서 물가 상승 폭을 키우는 요인이 된 셈이다.

물가 상방 압력은 한동안 이어지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은이 11월 7일 공개한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10월 19일 금통위)을 보면, 위원들은 고물가 상황을 감안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한 위원은 “물가의 경우 하방 요인보다 상방 리스크(위험)가 크다고 판단된다”고 했고, 또 다른 위원은 “물가는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고, 가계부채 증가세도 완화되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위원은 “최근의 물가 상방 리스크를 고려할 때, 이에 대응한 긴축기조가 기존 예상보다 강화돼야 할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지난 11월 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 전경 /연합뉴스

지난 11월 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 전경 /연합뉴스

“MB 정부 방식 물가 관리, 부작용 우려”

기저효과 영향에도 고물가가 이어지자 정부는 과거 이명박(MB) 정부 시절의 물가 관리 방식을 다시 꺼내 들었다. MB 정부는 19대 총선을 석 달 앞둔 2012년 1월 국무회의에서 물가안정 책임제 도입을 주문하고, 이후 52개 생활필수품을 대상으로 MB 물가지수를 만들었다. 효과는 없었다. 물가안정 책임제 시행 이후 약 3년 5개월간 관리 대상 품목의 평균 가격 상승률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13.21%)을 웃도는 20.42%에 달했다.

윤석열 정부의 물가 관리 대상은 최근 확정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서민들이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라면, 빵, 과자, 커피, 아이스크림, 설탕, 우유 등 28개 품목의 담당자를 지정해 물가를 전담 관리하기로 했다. 해양수산부는 명태, 고등어, 오징어, 갈치, 참조기, 마른 멸치 등 대중성 어종 6종과 천일염 등 7종을 물가 관리 대상으로 선정했다.

11년 만에 가격 통제 중심의 물가 관리 방안을 내놨지만, MB 정부와 마찬가지로 실효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집중 관리하기로 한 농식품부 7개 품목의 경우 전체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4%(스낵과자·비스킷 포함)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경제를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 정책 기조와도 크게 어긋난다. 정규철 실장은 “업계가 고물가 상황을 틈타 비정상적으로 가격을 책정하는 행태 등엔 정부가 적극 개입해 시장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면서도 “다만 물가를 잡기 위한 방편으로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가격 인상 수요가 있는데도 정부가 가격 인상을 누르면 (기업들이 상품 용량을 줄이거나, 나중에 큰 폭을 인상하는 식으로) 비효율을 불러오고,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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