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발 경제위기 막으려 세제·금융완화책 쏟아내
특례보금자리론 부작용, 9·26 공급대책도 도마 위에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증가폭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을 연상케 한다.”
가계부채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아미르 수피 시카고대학 교수가 지난 8월 전미경제학회(NBER)에 기고한 ‘한국과 중국의 주택, 가계부채, 그리고 경기사이클’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주장한 말이다. 그는 “주택시장 붐이 시작된 2015~2021년 사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증가폭이 약 23%”라며 “중국과 함께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높고, 금융위기 발발 이전인 미국의 2001~2007년 가계부채 비율 증가 속도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수피 교수는 2014년 저서 <빚으로 지은 집>에서 가계부채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경고해 주목을 받았다. 가계부채가 늘수록 소비지출이 감소해 결국은 장기 불황을 가져온다는 게 책의 결론이다. 같은 이유로 ‘가계부채에 의존한 성장’ 역시 매우 위험하다고 그는 짚었다.
올해 한국에선 지금 그 책에서 경고했던 가계부채 문제가 현실화되고 있다. 수피 교수가 NBER에 특별히 한국과 중국을 집어 논문을 투고한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은 올 7월 발표한 가계부채 보고서에서 국제결제은행 자료를 인용해 작년 4분기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5.0%로 스위스(128.3%)와 호주(111.8%)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고 밝혔다.
이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에 바로 ‘부동산’이 있다. 한국은행 집계를 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국내 가계대출 대출자 수는 1977만명, 전체 대출 잔액은 1845조3000억원이다. 이중 절반이 넘는 1018조원(54.9%)이 주택담보대출이다. 수피 교수가 지적한 가계부채의 급증 시기는 국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가계부채로 쌓아올린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순간이 최악의 시나리오다. 정부가 최근 대출규제를 강화하며 관리에 나섰지만, 우려는 계속되는 중이다.
가계대출로 부동산 경기 부양했나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부동산 경기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풍향계와 같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아파트매매가격 동향 자료를 보면 서울 아파트값은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6월부터 2022년 1월 중순까지 86주간 내리 올랐다.
식을 줄 모르던 가격 상승은 미국의 금리 인상과 정부의 대출규제가 맞물리면서 꺾였다. 1월 하순부터 가격 하락이 시작됐다. 작년 4~5월 두 달간 가격변동이 없는 ‘보합’을 유지하긴 했지만, 대통령선거에 따른 반짝 효과였다. 월간 거래량이 수개월째 1000건에도 못 미치면서 서울 아파트값은 계속 하락했다. 하락폭도 점차 커져 지난해 말에는 한 주 동안 아파트값이 0.78%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는 같은해 6~8월 석 달간 기록한 하락폭(-0.74%)보다 높은 수치다. 부동산 업계에선 “1차 조정기가 왔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 업계 전문가는 “부동산 랠리가 2014년부터 2021년까지 7년간 기록적으로 이어졌다”며 “경기 사이클을 감안할 때 조정기가 온 게 확실했다”고 말했다.
급락하는 아파트값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은 주택 보유 유무에 따라 엇갈렸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부동산 경기 부양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21일 발표한 ‘2023년 경제정책 방향(경방)’에서 대출규제 완화 및 다주택자에 대한 세제·금융완화 대책을 대거 쏟아냈다. 다주택자들이 서울 등 규제지역에서 추가 주택 구매를 할 때 본래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받을 수 없었지만 이를 풀었다. 올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야당으로부터 “가계부채 급증의 원인”으로 지목된 총 40조원 규모의 ‘특례보금자리론’도 경방에서 나왔다. 취득세와 양도세도 인하했다. 종합하면, 국민이 빚(대출)을 더 내 집을 살 수 있도록 규제를 푼 셈이다.
부동산 업계에서 일명 ‘둔촌주공일병 구하기’로 불리는 중도금 대출 완화 대책도 지난 1월 나왔다.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아파트 중도금 대출 가능 분양가 기준을 종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려 실행했다. 하지만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 84㎡형의 경우 분양가가 모두 12억원을 넘어 중도금 대출이 막히자 저조한 청약경쟁률(1순위 평균 3.7 대 1)을 보였다. 업계에선 “실제 본계약에선 ‘미달’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왔다. 그러자 정부는 1월 들어 아파트 분양가와 관계없이 중도금 대출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손봤다. 미달 우려가 나오던 둔촌주공은 3월까지 일부 무순위 청약 등을 거쳐 결국 ‘완판’됐다.
정부는 잇따른 규제완화책을 놓고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를 바라보는 평가는 엇갈린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금리 인상과 함께 시장 흐름에 따라 나타난 부동산 가격 조정기를 정부가 대출규제 완화를 통해 계속 유동성을 공급해 떠받친 것”이라며 “결국은 국민이 집을 사야 해결이 되는 문제로, 집값 하락 문제를 사실상 가계에 떠넘긴 것과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대출 완화 등 부동산 정책 변화가 없었다면 올 상반기에 건설사 실적 악화 등으로 부동산발 경제위기가 올 수도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본다”며 “가계부채가 더 증가한 것은 맞지만 현재 주담대 연체율이 크게 높지 않아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출 완화 뒤 아파트값 ‘반등’, 이면엔 가계부채 ‘급증’ 정부가 대출규제 등을 풀자 부동산 시장엔 곧장 효과가 나타났다. 2022년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연속 ‘월 매매거래량 1000건 미만’을 기록했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올 1월 1411건으로 반등한 뒤 증가추세를 보였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40조원 규모의 특례보금자리론이 특히 거래량 활성화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특례보금자리론은 “금리 상승기 서민주택 실수요층이 이자 상승 불안 없이 다양한 용도의 저금리 자금을 이용하도록 지원하는 정책금융 상품”이다. 신규주택 구입, 기존대출 상환, 전세금 반환 등의 용도로 신청 가능하다. 평균 5%대인 시중은행의 주담대 대출금리에 비해 평균 4.15%의 저렴한 금리를 제공한다. 대상 주택가격 9억원 이하, 소득 제한 없이 최대 5억원까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및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TI) 한도 내에서 대출받을 수 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제공한 ‘특례보금자리론 집계 자료(8월 31일 기준)’를 보면 접수된 총 35조4107억원의 대출신청 금액 중 ‘신규주택 구입’이 목적인 금액이 21조6395억원으로 전체의 61.1%를 차지(최종 대출 결과는 변동 가능)했다. 구입하려는 주택의 가격대는 ‘3억~6억원’이 65.9%(14조2639억원)로 가장 많았다. 부동산 업계의 분석대로 특례보금자리론이 시장 매매거래 활성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거래량 증가로도 나타났다. 특례보금자리론이 올해 1월 30일부터 신청을 받아 심사기간(30일)을 거쳐 실질적인 대출이 이뤄지기 시작한 시점은 3월 초부터였다.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3월 2985건, 4월 3186건 등으로 늘어난 뒤 9월(3144건)까지는 계속 3000건대의 거래량을 유지하는 중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가량 거래량이 늘어난 수준이다. 아파트 가격 하락폭도 점차 줄더니 5월 중순부터는 결국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이후 지난 10월 둘째 주(10월 9일)까지 서울 아파트 가격은 21주 연속 올랐다.
이처럼 부동산 시장 활성화엔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특례보금자리론은 결국 가계부채를 늘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은행권에서는 정부의 대출규제 완화책을 신호로 받아들여 50년 만기 대출상품을 속속 선보이며 가계부채 증가를 부채질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최근 집계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내내 감소세가 지속되던 가계부채는 올 1분기에만 18조3000억원의 부채가 감소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살아나면서 2분기 중 가계부채는 6조5000억원 늘었고, 3분기 들어서는 7~8월에만 11조5000억원이 증가하는 등 증가폭을 키우는 중이다.
지난 10월 11일 열린 정무위 국감에서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보면 특례보금자리론이 가계대출 반등의 원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다”며 “올해 2월 이후 기준금리는 3.5%로 유지되는데 주담대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에 실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례보금자리론과 관련한 비판이 가중되자 금융위원회는 지난 9월 13일 ‘연소득 1억원·주택가격 6억원 초과’ 대상에 대한 ‘일반형’ 대출을 중단하고, 일시적 2주택자에 대한 특례보금자리론 신청도 금지하는 등 속도 조절에 나섰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경착륙 방지를 위한 대책은 필요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정책이 가져오는 부작용 등에 대한 고려 없이, 너무 빠르게 규제를 풀고 있어 문제”라며 “금리가 계속 높게 유지되기 때문에 결국 대출(가계부채)은 대출대로 심각해지고, 부동산 역시 하락 기조 흐름을 바꾸진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9·26 공급대책 놓고도 “PF 부실 우려”
‘서민 내 집 마련 대출’이라는 취지와 달리 고소득층에게 특례보금자리론 대출이 집중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용우 의원실의 최근 자료를 보면 모두 35조4107억원의 대출신청 금액 중 고소득층에 해당하는 ‘연소득 7000만원 초과’ 신청자가 차지한 대출신청금액이 총 14조4363억원으로 전체의 40.1%를 차지했다. 정부가 “서민 대출용”이라고 설명했던 특례보금자리론 중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 대출신청금액은 총액이 2조4987억원으로 애초부터 비중이 크게 낮았다. 이 의원은 “특례보금자리론과 같은 저금리 혜택이 고소득층에게 지나치게 치우쳐져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며 “국민의 세금을 이용해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이 흐려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국민이 안정적으로 주택을 소유하거나 임대할 수 있도록 주택을 공급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발표한 ‘9·26 공급대책’을 놓고도 실효성 및 부실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에서 3만 가구의 추가 주택 물량을 확보하고, 규제 완화 및 금융 지원을 통해 민간 물량 공급 확대를 추진한다는 내용 등을 뼈대로 하는 대책이다.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임기 내 270만 가구 공급’을 이행하기 위한 차원에서 나왔다. 공약이 실현되려면 민간 차원의 공급이 원활해야 한다. 올해 1~8월 전국 주택 통계에서 지난해 대비 인허가 물량은 39%, 착공 물량은 56% 각각 줄었을 정도로 선행지표가 나빠진 것이 이번 대책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주목받고 있는 대책 중 하나는 정부 차원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규모·한도 확대’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관 등을 통해 총 7조2000억원 이상 규모로 부동산 PF 및 건설사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가 보증과 대출을 더 해줄 테니 ‘빚을 내’서라도 주택을 더 지어달라는 당부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아직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당시의 PF 부실 우려 여파가 남아 있는데 주택 경기 전망도 밝지 않은 상황에서 PF를 확대해 공급을 늘리는 게 과연 맞는 판단인지 의문”이라며 “건설사들이 금리나 미분양 등의 리스크를 안고 정책에 호응해 공급에 나설지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는 민간 참여를 적극 지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공급량 확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대책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다만 PF대출 여력을 확대하는 만큼 금융 부실 규모가 커지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 감독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