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위에서의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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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마존은 지금 정치인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아마존 앨라배마 물류센터에서 노동조합 설립 여부를 두고 투표가 진행되던 중차대한 시기. 사측이 조직적으로 노조설립을 방해한다는 풍문이 들릴 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응원 연설을 하러 갔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공평한 몫을 안 내려 세법을 조작했다”며 압박하던 차이기도 하다. 같은 시기 배송기사가 격무에 시달린 나머지 페트병에 소변을 본다는 뉴스마저 흘러나왔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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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마존 공식 계정은 샌더스에게 우리는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올렸는데 지역구 상황은 어떤지 거기나 살피라는 트윗을 하고, 워런에게는 우리는 법에 따라 세금을 내고 있을 뿐이라며 우리가 일터를 개선하는 동안 얼마나 입법했는지 되물었다. 워런은 “건방진 트윗으로 상원의원에게 야유할 정도로 권세를 부리지 못하게 빅 테크를 해체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다들 키보드 워리어가 돼 일선을 넘고 있다. 진보의 아이콘 AOC(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배송차 안에서 봉투에 대변을 보지 말라는 아마존 내부 메모를 트윗해버렸다. 아마존이 페트병 소변을 정말 믿느냐고 트윗한 직후였다. 기업이 정치권과 각을 세우는 일은 전통적으로 홍보 업무의 절대 금기 중 하나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관련 협회 등 이익단체를 통하거나 로비스트를 이용해 우회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다툼이 언론을 통해 중계되면 기업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고, 그보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규제로 불똥이 튀어 영속기업의 미래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어서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째 분위기가 다르다. 아마존 최고위층에서 적극적으로 반격하라는 사실상 지령이 떨어지지 않고는 취할 수 없는 태도다. 그들은 무엇을 믿고 그리할까.

플랫폼 기업의 믿는 구석은 바로 소비자다. 아마존의 브랜드 이미지는 91%의 선호도를 보이는데, 이는 구글보다 높은 수치다. 더 저렴하게 더 편하게 더 빠르게 더 쉽게 손끝 하나로 세상을 부릴 수 있는 요즘, 재래식 비즈니스보다 더 효율적인 플랫폼이 미래로 보인다. 코로나19는 이를 강화한다. 아마존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 완성되고 있다면, 그 수혜자인 소비자는 아마존의 편일 터다. 배달에서 클라우드까지 여러분이 하는 일 모두 이 플랫폼 속에서 진행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끊임없이 증명하려 든다. 그리고 놀라운 건 그 주장은 어느덧 사실이 된다. “쿠팡 없이 어찌 살았을까”가 쿠팡의 미션이라고 하는데 과연 한국의 아마존을 표방한 기업답다. 믿는 구석은 노동자들일 수도 있다. 플랫폼은 비숙련을 기술로 보조한다. 경험이 없어도 어차피 앱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그 덕에 코로나19로 천직(天職)을 잃어도 플랫폼은 앱을 통해 일을 건넨다. 더 높은 최저임금에 의료혜택까지 따라온다. 비숙련 상태 그대로 고용관계의 예속 없이도 사인(私人) 간의, 심지어 사업자 간의 동등한 계약으로 일을 타간다. 노조가 꼭 필요한가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쌍방은 정말 동등한 사업관계일까? 어느 한쪽이 더 절실하다면 그렇지 않다. 달라진 세상에서 대안이 많지 않은 미숙련 노동직을 대자본이 고용한 초고도 숙련 엔지니어가 짠 소프트웨어가 다루는 사업 모델에서 그 답은 사실 이미 정해져 있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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