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하나님, 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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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은 결코 비합리적이지 않다. 오히려 합리성의 과잉이며, 이론 내부에 논리적 오류를 허용하지 않는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작가 목수정은 본인의 페이스북과 매체를 통해 성실하게 백신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 며칠 전 그는 “‘코로나 백신은 나치 인체실험’ 이스라엘 정부 국제법정에 피소”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글을 썼다. 이 글은 이스라엘의 한 시민단체가 자국 정부를 뉘른베르크 강령 위반으로 국제형사재판소에 고소했다는 내용이다. 뉘른베르크 강령이란 나치 인체실험에 관여한 의사들을 심판하며 제안된 의료연구윤리선언이다. 목 작가의 글은 ‘진실의 민중’이라는 시민단체의 고발장을 수많은 따옴표로 나열하고, 이스라엘이 나치와 같은 반인륜적 실험을 진행한 것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목 작가가 언급한 이 뉴스는 이스라엘 언론조차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 해프닝에 불과하다. ‘진실의 민중’은 백신 반대 운동 그룹이다. 즉 미국의 큐어넌 같은 음모론자들이라는 뜻이다. 목 작가는 그의 글 어디에서도 이 시민단체가 안티백서(Anti Vaxxer·백신 음모론자) 집단이며, 고발장에 적힌 사실 대부분이 허위임을 밝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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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 배후에는 정치적 반대

며칠 전 백신 반대론자들의 트위터를 분석한 논문이 출판됐다. 백신 반대론자들은 일반인 및 백신 찬성론자보다 더 활발하게 트위터 활동을 하고, 음모론에 잘 빠져들며, 정치와 백신을 결부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목 작가의 백신 음모론 배후에도 프랑스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정치적 반대가 놓여 있다. 목 작가의 백신 음모론은 2019년 그의 딸에게 자궁경부암 백신을 맞으라는 의사의 권고로 시작됐고, 그는 인터넷을 통해 ‘오로지’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백신 음모론자를 만난다. 바로 이 시점부터 그는 백신이 다국적 거대제약회사의 음모라는 신념을 갖게 된다.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증오는 오로지 백신 음모론과 만나 확고한 정치적 신념이 됐다. 생활좌파로 한국 진보운동에 활력을 불어넣던 프랑스 작가는 이제 완벽한 백신 음모론자로 변신했다.

백신을 접종하는 국가를 ‘나치’로 비유하는 글에서 목 작가는 독일의 슈샤리 박티 박사 주도로 유럽의약국에 전달된 공개서한을 언급한다. 그는 “세상에는 위험을 앞서 살피고, 그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려는 의사”가 있다며 박티 박사를 소개한다. 물론 목 작가는 박티 박사가 어떤 인물인지 독자에게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독일의 은퇴한 의사 박티 박사는 코로나19를 음모론으로 해석하는 책을 쓴 유명한 백신 반대론자다. 그의 책에 기술된 허황된 내용 덕분에 박티 박사는 지난해에 독일의 유사과학조사단체로부터 ‘황금 멍청이상’을 받았다. 박티 박사의 모교는 그와 대학이 아무런 상관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포린폴리시는 박티 박사를 독일에서 기승을 부리는 큐어넌 숭배집단과 함께 다루었다. 박티의 유튜브 채널은 최근 구글에 의해 삭제됐다. 목 작가가 엄청난 권위자처럼 포장하는 슈사리 박티는 독일의 천박한 음모론자일 뿐이다.

박티의 사례처럼 음모론자가 되는 데는 작가와 의사 구분이 없고, 그 법칙은 한국에도 적용된다. 서울대 의대에서 면역학을 전공하고 대한면역학회 학회장까지 거친 이왕재 박사는 최근 유튜브와 여러 매체를 통해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한 음모론적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백신의 실용화가 99% 불가능하다면서 그 근거로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과 공생하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이 “새로운 유전자를 인체에 주입하는 것이기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면서 마치 이 두 백신이 엄격한 임상시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처럼 호도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집단면역은 불가능하다면서 백신으로 코로나19를 예방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서울대 의대 교수와 면역학회 학회장 출신이라는 그의 권위는 일부 의료인과 함께 발표한 백신 의무접종 반대 성명서를 통해 시민사회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상당수의 의료인이 백신 접종 의무화를 반대하는 것처럼 호도하지만, 이 성명서에 서명한 사람은 19명이고 이들 중 의사는 7명뿐이다.

시민사회 혼란 초래

이 박사는 교회와 극우 유튜버 채널에서 활동한다. 최근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세계적 면역학자의 백신에 대한 경고’라는 동영상은 딥스테이트가 세상을 조종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유명한 극우 유튜버가 운영하는 채널이다. 이 유튜버는 지난 4·15 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이 박사는 황우석 사태에서 서울대 의대 연구부학장으로 배아줄기세포가 없다고 폭로했던 학자다. 하지만 그는 황우석 사태 이후의 인터뷰에서 체세포복제가 “하나님의 창조원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비타민C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는 방송에서 비타민C가 고혈압, 중풍, 심장병 등에 치료효과가 있다고 발언해 의학계의 공분을 샀다. 흥미롭게도 이 박사가 인터뷰를 통해 백신 음모론을 퍼뜨리는 매체는 목 작가가 글을 쓰는 바로 그 매체다.

뉴스톱 대표 김준일 기자는 백신 반대론자들의 트위터 분석결과를 공개하면서, “사회에 항상 일정 비율의 반대론자들은 있게 마련이다. 이들을 모두 바꿀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메시지가 온라인에서 압도적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지속적인 팩트체크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정부가 과학적 사실과 근거를 빠르게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현재 노년층에 카톡 등을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는 백신 가짜뉴스의 원인은 정부가 백신에 대해 불안해하는 국민에게 정서적으로 다가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집단면역에 도달하게 될 이스라엘은 백신 음모론을 퍼뜨리던 현직 의사 아리에 아브니의 면허를 영구히 취소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 결정을 주도한 전직 판사 암논 스트라시노프는 “그가 웹사이트와 페이스북, 유튜브에 게시한 코로나19에 관한 콘텐츠는 공중의 안전과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의료계와 보건부 지도부를 겨냥한 그의 근거 없는 주장은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백신 음모론은 소수의 정보생산자를 중심으로 퍼져나간다. 목 작가와 이 박사는 바로 그 정보생산자의 핵심이다. 음모론을 믿는 사람의 숫자가 역치를 넘어서면 정부는 시민의 불안을 통제할 수 없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문 대통령이 곧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공개 접종한다고 밝혔다. 성공적으로 코로나19를 막아온 한국사회가 백신과 함께 빠르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길 희망한다.

김우재는 한때 초파리로, 지금은 꿀벌로 세계정복을 꿈꾸는 과학자다. 동물의 행동을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며, 사회성 행동을 유전학적으로 이해하고 싶어한다. 연구 외에도 과학의 사회적 사용에 관심이 많으며 <플라이룸> 등의 책을 저술했다. 현재 하얼빈공대 생명과학연구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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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전범의 아들 노다 마사아키가 쓴 <전쟁과 죄책>에는 포로의 목을 베라는 상관의 명령을 거부한 병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관동군 중대장으로 근무했던 도미나가 쇼조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 후베이성에서 포로를 베는 ‘담력’ 교육 도중 한 초년 병사가 “불교도로서 할 수 없습니다”라며 명령을 거부했다. 불교도로서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키려 했던 이 병사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홀로코스트 연구자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이 쓴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학살 임무를 거부하고 총기를 반납한 나치 대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 101예비경찰대대 빌헬름 프라프 대대장은 유대인 학살 임무에 투입되기 직전 병사들에게 “임무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앞으로 나오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10명 남짓 병사가 앞으로 나왔고, 그들은 소총을 반납하고 대기했다. 그 병사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각 부대에서 학살 임무를 거부한 병사와 장교들이 속출했지만, 나치 독일의 가혹했던 군형법은 이들에게 명령불복종죄를 비롯한 어떠한 형사처벌이나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