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도 홀로 달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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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난관이나 시련, 장애는 어느 날 갑자기 앞에 닥쳐 삶을 가로막기도 한다. 인간은 그런 상황에 굴하지 않고 궁리를 하고 연구를 해 완벽은 아닐지 모르나 희망을 만들어낸다.

그런 면에서 과학기술은 숭고한 낙관이다. 미증유의 팬데믹에서도 과학과 기술은 다시금 세계를 구원해보려 합세해서 매진하고 있다. 하지만 인류 전체의 난제와는 달리 당사자가 아닌 이들은 간과하고 마는 일부의 어려움도 있다. 감각의 장애가 대표적이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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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러닝 인공지능은 실은 지능이라기보다 감각의 탄생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시각 정보에서 의미와 맥락을 솎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시계열 정보를 지치지 않고 생성할 수 있다. 음성인식에서 자율주행에 이르기까지 감각기관을 탑재한 기계가 보여준 가능성은 곧 그 감각이 필요한 모두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시잉(Seeing) AI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이다. 카메라로 보이는 풍경을 묘사하는 것은 물론, 문자를 추출해서 읽어주거나, 바코드의 상품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친구의 감정까지 묘사해주기도 한다. 한글 지원은 아직 문자 인식 정도밖에 되지 않아 안타깝다. 시각장애인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앱이지만 아이들 영어공부를 할 수 있을 만큼 새로운 감각기관의 쓸모는 다양하다.

구글은 지난주 비영리 단체 가이딩 아이즈 포 더 브라인드(Guiding Eyes for the Blind)와 협력해 시각장애인이 안전하게 달릴 수 있게 하는 AI 기반 오디오 보조 도구를 파일럿으로 선보였다.

‘프로젝트 가이드라인’이라는 이름의 이 기획은 허리 앞쪽에 스마트폰을 차고 눈을 대신해 그 카메라로 세상을 보고 골전도 블루투스 헤드셋으로 음성 신호를 보내준다. 러너가 경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앱이 골전도 헤드폰에 신호를 보내주니 안심하고 달릴 수 있다. 사람이 달리는 동안 들어오는 화상신호는 상하좌우로 요동치게 마련이다. 게다가 사람이 달리는 길은 차선이 비교적 명확히 그려져 있는 도로보다 난도가 높다. 낙엽도 있고, 길의 경계가 불명확하기도 하다. 위험한 장애물이 있을 수도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달리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기술과 적잖은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프로젝트 가이드라인은 아직 프로토타입이지만 전용 웨어러블 없이도 양산형 폰과 블루투스 헤드셋으로 눈을 대신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줬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지팡이나 맹도견에 의지하지도 않고 앞으로 달려나갈 수 있다는 느낌은 잊고 있던 자유를 선사한다.

시각장애인인 가이딩 아이즈의 대표는 맹도견의 도움으로 하프마라톤을 완주한 경험을 가지고 구글 해커톤에 참가해 당사자 의식에서 비롯된 질문을 던졌다. “시각장애인도 홀로 달릴 수 있을까요?” 과감한 질문이었지만 당장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내자는 해커톤 모임의 성격상 그날 아이디어는 시제품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고 25년 만에 누구의 도움 없이도 숲길의 녹음을 달리는 자유를 느낀 그의 눈은 어느새 젖어 있었다. 세상은 과학기술에 의해 분명히 바뀔 수 있지만, 그 방향을 정하는 것은 이처럼 당사자의 용기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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