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대와 달리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 시장은 수년간 침체기를 겪었다. 실패라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업계 사람들의 희망처럼 큰 시장이 형성되지는 못한 건 분명하다. 그러던 지난 9월 페이스북이 새로운 가상현실 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Oculus Quest) 2’를 발표했다. 페이스북은 유력 가상현실 플랫폼 오큘러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간 지속적으로 제품을 개량해왔다.
오큘러스 퀘스트 2는 PC 없이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PC와도 연결이 가능한 가상현실 헤드셋으로, 가격은 64GB 기준 전작에 비해 100달러 더 저렴한 299달러다. 스냅드래곤(Snapdragon) XR2 프로세서를 탑재해 성능은 2배 더 높고, 무게는 503g으로 10% 더 가볍고, 한쪽 눈당 1832×1920의 더 높은 해상도를 제공한다.
제품 배송이 시작되면서 속속 소비자 평가가 올라오고 있다. 일단 하드웨어에 대한 소비자 평가는 상당히 좋다. 화면, 사운드, 착용감, 컨트롤러, 가격 등 거의 모든 요소에서 만족도가 높고 가상현실 시장의 대중화를 가져올 자격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그런데 소비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페이스북에 반드시 로그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원래 페이스북은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최대한 입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대규모로 개인정보를 유출하거나 무단으로 타 업체에 개인정보를 제공한 적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페이스북에 가입할 의사가 없거나 사용하다가 환멸을 느껴 계정을 삭제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페이스북 사용을 강제하는 방침에 여러 소비자가 상당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오큘러스 퀘스트 2에 대한 아마존 소비자 평가를 보면 이와 관련된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 리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5성급 제품 1성급 경험’이다.
페이스북은 소셜 네트워크를 주업으로 하면서 광고로 대부분의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페이스북, 페이스북 메신저,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 여러 서비스를 보유한 세계 1위 SNS 기업이다. 그런 페이스북이 가상현실 헤드셋을 출시하고 플랫폼에 상당한 투자를 하는 이유는 가상현실 기반의 SNS까지 장악해 미래에도 큰 수익을 올리려는 명확한 전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행보로 페이스북은 작년 9월 가상현실 기반 SNS ‘호라이즌(Horizon)’을 공개하고 올해 8월부터 클로즈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상태다. 오큘러스 홈페이지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서비스로 호라이즌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텍스트, 사진, 동영상을 만들고 공유하는 페이스북 서비스와 달리 호라이즌은 가상현실이라는 특성에 맞춰 자신만의 창작물이나 세계를 만들고 사람들과 협업하거나 경쟁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정리하면 페이스북은 가장 인지도가 높은 가상현실 플랫폼 오큘러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 출시한 오큘러스 퀘스트 2 헤드셋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페이스북이 가진 자금력과 교묘한 마케팅 능력 또한 비즈니스의 긍정적인 요소다. 반면에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남용과 사용자들의 불신은 부정적인 요소다. 페이스북이 과연 가상현실 시장에서도 성공신화를 이뤄낼지 지켜보도록 하자.
<류한석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