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 회장에 취임… “실제 상왕은 권오준 전 회장” 등 뒷말 무성
숱한 논란 끝에 포스코 최정우 회장 시대가 열렸다. 7월 27일 열린 회장 취임식에서 최 회장은 미래 비전으로 ‘With POSCO(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를 제시했다. 사람과 사회, 협력사들과 상생의 길을 통해 100년 대계를 열겠다는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를 기치로 내건 문재인 정부의 주요 경제기조 중 하나가 ‘공정경제’인 점을 감안하면 시대의 요구를 받아들인 일성으로 해석된다.
포스코는 올 상반기에만 2조74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7년 만에 최대실적을 기록했다. 침체기를 뚫고 회사는 반석 위에 올라 있지만 최 회장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그리 우호적이지 못하다. 당장 최 회장의 회장 선임과정 등을 놓고 검찰에 고소·고발건이 여러 건 올라와 있다. 회장직의 정당성부터 의심받아야 하는 처지다. 상반기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미·중 무역분쟁으로 철강업계가 언제 폭풍에 휘말릴지도 예견하기 어렵다. 실적을 수성하고 비전을 이끌고 갈 경영자로서의 능력도 입증해내야 한다.
선임 과정 의혹 불거져···법정공방 불가피
최 회장의 취임은 필연적으로 전임인 권오준 회장과 연관될 수밖에 없는 배경이 있다. 권오준 전 회장이 올 4월 임기를 2년이나 남기고 돌연 사퇴하면서 최 회장에게 대권이 넘어왔기 때문이다. 권 회장은 사퇴의사를 밝히며 “새로운 100년을 위해 포스코가 변해야 할 시점”이라고 이유를 밝혔지만 재계에선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끊이지 않았다.
추측이 나온 데도 이유가 있었다. 권 회장은 2017년 4월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연임에 성공하면서 입지를 굳혀온 터였다. 역대 포스코 회장들의 ‘흑역사’를 돌아보면 연임을 성공적으로 마친 사례가 없었다. 5대 회장인 유상부 전 회장부터 6대 이구택 전 회장, 7대 정준양 전 회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연임에 성공했지만 연임 도중 여러 비위와 의혹에 휩싸이면서 중도 사퇴했다. 권 회장의 경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과 함께 검찰 참고인 조사까지 받았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은 이를 들어 연임을 반대했지만 권 회장은 정면돌파에 성공했다. 이렇게 어렵사리 쟁취한 연임 자리를 갑자기 포기하자 뒷말이 무성했던 것이다.
재계에서는 ‘비위 연루설’, ‘건강 이상설’ 등 여러 추측을 내놓았지만 명확하게 드러난 다른 배경은 없다. 그리고 권 회장의 갑작스러운 퇴진과 함께 최 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낙점되자 불거진 게 바로 최 회장과 권 전 회장의 연관설이다. 재무통인 최 회장이 예전부터 이른바 ‘권오준 라인’으로 불렸던 점을 들어 최 회장을 새 회장으로 세운 게 다름아닌 권 전 회장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포스코바로세우기시민연대는 최 회장 선임을 승인하는 주총 행사장 앞에서 “실제 상왕은 권오준 전 회장”이라며 기습시위를 벌였다.
최 회장을 선출한 포스코의 ‘CEO 승계카운슬’도 도마에 오른 상태다. 포스코는 “2009년에 이미 승계카운슬을 만들었고, 2013년부터 시행했다”고 밝혔지만 외부에서 볼 때 승계카운슬이란 조직은 낯설었던 게 사실이다. 승계카운슬을 통해 선임된 첫 회장도 권 전 회장이었고, 최 회장의 승계카운슬이 열리는 와중에는 한 후보가 공개적으로 “승계카운슬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현재 포스코바로세우기시민연대 등은 승계카운슬과 최 회장을 모두 배임 및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포스코도 이에 맞서 시민연대를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했다. 포스코는 7월 9일 “근거없는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법적대응하겠다”며 엄포를 놓았지만 양측 간 법적분쟁에 최 회장이 취임 초기부터 휘말리게 된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권 전 회장이 올해 중도 퇴진 의사를 밝힐 때 포스코 주가는 ‘회장 리스크 해소’를 이유로 상승한 바 있다. 최 회장의 취임은 포스코에 회장 리스크를 재차 가져오게 된 셈이다.
성과 유지하며 ‘위드 포스코’ 가능할까
최 회장이 직면한 경영현안은 크게 두 가지다. 당장은 글로벌 확산 위기에 놓인 무역분쟁 틈바구니 속에서 실적을 유지해내는 게 급선무다. 포스코의 2분기 제품 수출비중은 42.5%다. 올해 전략적으로 내수비중을 높여 수출비중을 40%까지 낮춘다는 계획이지만 여전히 수출실적은 중요하다. 이 와중에 미국의 관세폭탄 정책, 중국의 철강제품 반덤핑 조사, EU의 세이프가드 등 주요 수출대상지의 무역장벽이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최 회장은 취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스코가 주요 수출국으로부터 통상규제를 받고 있고 장기적으로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현지 생산·수출과 제휴, 신성장사업 육성 등을 통해 실적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현안은 본인이 공언한대로 이른바 ‘기업 시민’이 되는 문제다. 협력사와의 상생문제도 언급했는데, 당장 조선업계와의 올해 후판가격 협상이 눈앞에 닥쳐 있다. 침체기를 겪고 있는 조선업계는 수년째 포스코 등 철강업계에 후판가격 안정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포스코는 7월 23일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후판가격이 하반기에도 강세를 보일 수 있어 시장 상황에 맞춰 가격을 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격을 올리겠다는 뜻이다. 상생을 강조하는 최 회장의 방침대로라면 후판값을 올릴 경우 비난여론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포스코만 독단적으로 후판값 동결에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주들 눈치도 봐야 하고, 내달 한국철강협회장에 최 회장이 당연직으로 선임될 예정임을 감안하면 업계의 반발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기업 시민의 비전으로 사회적 공헌, 이익 공유 확대, 포항·광양 벤처밸리 조성 등 다양한 계획을 밝혔다. 하나같이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벤처밸리 조성만 해도 “1조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힌 상태여서 포스코도 상당한 금액의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벤처밸리의 경우 벤처 육성에는 도움이 될 만한 일이지만 계획 자체가 정권과의 ‘코드 맞추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포스코는 이미 포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운영 중인데 그간 벤처 육성에 큰 의지를 보였다고 보긴 어렵다”며 “최 회장이 갑자기 1조원 펀드를 거론한 게 다소 의아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밑그림 단계로 나와 있는 청사진을 어떻게 구체화시킬지도 관건이다. 최 회장이 제시한 비전 중 눈에 띄는 게 바로 ‘기업시민위원회’의 신설이다. 최 회장은 “윤리경영과 투명경영을 강화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을 강력하게 실행하기 위해 경영진, 사외이사,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기업시민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화두만 던져졌을 뿐 기업시민위원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포스코는 이미 역대 회장들이 줄줄이 비위로 낙마하는 과정에서 총수가 없는 기업임에도 폐쇄적인 이사회와 의사결정 문제로 많은 지적을 받아왔다. 정권과의 끊임없는 유착문제도 고질병이었다. 기업시민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최 회장 역시 이 같은 비판과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벤처펀드의 경우 기존 창조센터를 통해 기업과 여러 펀드를 연결해온 활동을 보다 넓혀 추진하는 차원”이라며 “기업시민위원회의 구체적인 윤곽 등은 최 회장 취임 100일 정도 되는 시점에 보다 세부적인 내용이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