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가짜 뉴스’로 골머리… 포털과 SNS 책임 도마에
올해 미국은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인터넷상에 쏟아진 ‘가짜 뉴스(fake news)’로 몸살을 앓았다. 가짜 뉴스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글로벌 포털사이트인 구글에서 허위정보가 마치 언론사가 취재를 통해 작성한 기사인 것처럼 유통되는 것을 말한다. SNS와 포털의 거대한 영향력을 등에 업고 다량 유통된 가짜 뉴스는 주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하고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를 옹호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면서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선거 이후에도 가짜 뉴스의 영향과 SNS와 포털 업체의 책임에 대한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최근 페이스북과 구글은 가짜 뉴스를 유통시킨 데 대한 지적에 따라 사용자가 가짜 뉴스를 신고하거나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가짜 뉴스를 선별해내는 정책을 시행하는 등 가짜 뉴스 잡기에 나섰다.
대부분 트럼프 옹호하고 클린턴 공격
올해 가짜 뉴스의 최대 피해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엔딩 더 페드라는 사이트에서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다”는 뉴스를 만들어 페이스북에 유통시킨 것이다. 허위정보를 담은 이 기사는 페이스북 등에서 96만회 공유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 가짜 뉴스에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가짜 뉴스 파동 이후 벨기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짜 뉴스를 좇는 사람들은 식분증(배설물을 먹는 병)에 걸린 것과 같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 외에도 페이스북에는 다양한 가짜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위키리크스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이슬람국가(IS)에 살상무기를 판매했다는 자료가 공개됐다든지, 클린턴이 IS와 연루됐다는 이메일이 공개됐다는 내용의 가짜 뉴스도 70만건 이상 공유됐다. 클린턴의 대통령 자격을 의심하는 내용의 기사라든지, 그의 이메일을 유출한 FBI 요원이 자살했다는 내용의 기사도 나왔다.
글로벌 포털사이트이자 세계 최대 검색엔진이라는 구글에서도 가짜 뉴스가 버젓이 유통됐다. 미국 대선 개표 결과 트럼프가 클린턴보다 득표수가 많다는 허위내용을 담은 기사가 구글 검색 뉴스검색에서 상위에 올랐다. 그러나 실제 이번 대선에서 득표수는 클린턴이 트럼프보다 많았고, 클린턴은 선거인단 확보 수가 적었다. 이 뉴스는 ‘70뉴스’라는 트럼프 지지 사이트에서 올린 가짜 뉴스로 판명났다.
가짜 뉴스는 언론사의 뉴스보다 더 큰 관심을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IT전문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는 미국 대통령 선거일(11월 8일) 이전 3개월간 인터넷에 유통된 기사를 분석한 결과 대선일까지 인터넷상에서 공유된 가짜 뉴스는 870만건으로, 진짜 뉴스 공유횟수인 736만건보다 많았다. 가짜 뉴스는 반클린턴 성향이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가짜 뉴스에 휘둘렸다는 자조가 나왔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전 세계에서 수십억명의 회원을 거느리면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이들 사이트는 인터넷을 통해 정보의 접근권을 높여주면서 ‘정보의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집트에서는 SNS를 통해 시위 참여 정보가 공유됐고, 이를 바탕으로 시민들이 30년간 이어져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독재체제를 무너뜨렸다. 페이스북은 누구나 관계(네트워크)를 맺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을 기반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SNS로 성장했다. 구글도 인터넷상의 방대한 정보를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기술과 사용자 맞춤형으로 관련 정보를 추천하면서 세계 최대 검색 엔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번 미국 대선은 SNS의 무책임한 정보 유통이 갖는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유로운 정보의 소통창구라는 SNS의 장점이 정보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이용자들의 편견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특히 페이스북과 구글은 가짜 뉴스 논란 초기단계에서 무책임한 태도로 비판을 받았다. 미국 대선 직후까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페이스북의 가짜 뉴스 논란 책임을 회피했다. 그는 미국 대선 직후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는 콘텐츠의 99%가 진짜”라고 주장했다. 구글도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한국은 검증되지 않은 댓글이 문제
페이스북과 구글은 표현의 자유를 들어 제재를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가짜 뉴스 논란이 격화되자 SNS와 포털이 책임감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의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영향력이 커진 데다, 이용자들은 이 사이트가 유통시키는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미국 학생 7804명을 대상으로 기사형 광고와 진짜 뉴스 구분 실험을 한 결과 중학생의 82%가 구별하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는 포털과 SNS가 적극적으로 가짜 뉴스 퇴치에 나서야 함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페이스북과 구글은 뉴스를 유통시키며 수익을 얻기 때문에 이 같은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결국 페이스북과 구글은 대안 마련에 나섰다.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가짜 뉴스를 없애기 위해 이용자들이 허위정보와 가짜 뉴스를 신고할 수 있는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또한 허위로 판명된 정보는 꼬리표를 붙여 사용자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자동화 및 정보 추천기술을 활용해 가짜 뉴스 콘텐츠를 걸러내는 정책도 시행하기로 했다. 가짜 뉴스 사이트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방법도 내놨다.
구글도 지난달 성명을 내 “구글의 광고 플랫폼인 ‘애드센스’에서 가짜 뉴스 생산 누리집을 차단하겠다”며 “정확한 뉴스가 검색될 수 있도록 검색 알고리즘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포털과 SNS의 상황은 어떨까. 한국은 포털사이트가 언론사와 제휴를 통해 뉴스를 공급받고 이 뉴스가 검색된다는 점에서 가짜 뉴스가 유통될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포털은 뉴스제휴평가위원회를 통해 뉴스 제공 사업자를 검증하는 장치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도 포털사이트에 실린 뉴스의 댓글에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올리는 등의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대선에서 댓글부대라든지 국정원 댓글 조작 등의 이슈가 이에 해당한다. 결국 포털과 SNS는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으면서 허위정보를 걸러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목정민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mo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