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주의·상명하복에 젖은 국세청… ‘정치적 외풍’ 버텨낼 수 있는 개혁 절실
국세청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잊을 만하면 국세청 청장과 직원의 비리가 터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세청은 전위대가 되어 국정운영의 방향키를 쥐고 힘을 불리는 현상이 반복된다. 하지만 국세청은 비밀주의와 상명하복 문화에 젖어 내부 감시와 견제는 이뤄지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세청 조직문화를 바꿔야만 하고, 개혁적인 인사가 국세청을 개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3월 5일 경찰청은 국세청 직원의 비리 연루 혐의를 밝혀내기 위해 지능범죄수사대 소속 수사관 3명을 보내 서울국세청 조사1국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이 지방국세청을 압수수색한 것은 2010년 이후 2년여 만이다. 3월 14일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09년 9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세무조사를 한 7개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당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 1개팀 세무공무원 9명 전원을 적발했고, 당시 팀장 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세무조사 1개팀 전원이 금품을 수수해 적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국세청 비리는 잊을 만하면 터진다. 차관급인 국세청장이 비리에 연류되지 않고 임기를 마치는 사례가 오히려 드물 정도다. 세무조사라는 칼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만큼 유혹에 노출되기 쉽기 때문이다.
세무조사 칼 든 정권의 전위대
재무관료 출신으로 국세청에 몸담았던 이철성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쓴 책 제목은 <실록 국세청, 영욕의 세월>이다. 전직 국세청 인사가 국세청의 역사를 ‘영욕’이라고 표현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명예교수는 “역대정권은 검찰·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쥐고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자기들이 못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상대를 겁주고 매질하는 수단으로 악용해 왔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이 정권에 밀착하는 방식으로 존재해온 것을 비판했다.
하지만 국세청의 비리와 문제점은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국세청 내부 견제와 감시가 어렵기 때문이다. 군대문화에 비견될 만큼 국세청은 상명하복이 철저하다. 한국조세연구원의 모 인사는 “국세청의 조직 자체가 폐쇄적이다. 30~40년 전 분위기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면서 “조직문화를 오픈해야 한다. 직위를 개방하는 등의 방식으로 국세청 문화 자체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에 상명하복 문화가 자리잡게 된 것은 초기 국세청장이 군인 출신이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높다. ‘납세자의 날’로 기념하고 있는 3월 3일은 국세청이 출범한 날이기도 하다. 1966년 3월 3일, 당시 재무부 사세국을 따로 떼어내 재무부 외청인 국세청이 출범했다. 초대 청장은 군인 출신의 5·16 쿠데타의 주체세력이자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을 지낸 이낙선 청장이다. 이 전 청장은 청와대 조세행정특별조사반 반장을 지냈다. 당시 가장 유명한 일화가 국세청장의 승용차 번호가 700번이라는 것. 700은 당시 국세청이 세수목표액으로 삼은 700억원을 뜻한다. 국세청이 사전에 세수목표액을 배정해 지방청으로, 지방청에서 다시 각 세무서로 목표액을 강제로 할당했다.
2대 오정근 청장은 해병대 준장 출신이고, 3대 고재일 청장은 육사 8기로 육군 대령 출신이다. 5대 안무혁 청장은 육사 14기로 공병여단장과 건설공병단 단장을 지냈고, 6대 성용욱 청장도 육사 15기로 대령으로 예편한 군인이다. 박정희 정권이 믿을 만한 군인을 국세청으로 내려보내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는 임무를 지니게 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정부 부처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유신 사무관’(육사 출신으로 대위까지 복무한 사람 중 공무원으로 특채된 이들을 일컫는 말)이 가장 환영을 받았던 곳이 국세청이라는 자조적인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비리에 연루된 청장 구속 다반사
상관의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하는 분위기 때문에 내부 견제와 감시는 어렵다. 외부 사람에 대한 배타도 심하다. 철저한 정보 비밀주의까지 겹쳐 국세청의 비리가 외부에 알려지는 경우도 드물다. 청장이 비리에 얽혀 구속되는 일은 다반사다. 불법 대선자금 모집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안무혁 전 청장(5대)과 6대 성용욱 전 청장, 세풍사건으로 구속된 10대 임채주 전 청장, 부하직원으로부터 상납을 받아 재임 중 구속이 된 16대 전군표 전 청장까지 많은 국세청장이 구속되거나 사퇴하는 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비리에 얽혀 구속되지 않은 국세청장이 드물다”는 조세전문가들의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상률 전 청장의 뇌물비리 의혹을 폭로한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은 “국세청에서 윗사람의 말은 법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나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국세청 직원이 불법감금한 적이 있다”면서 “그때 그 직원에게 ‘무슨 근거로 나를 감금하느냐’고 물었을 때 ‘위에서 시킨 일이다’라고 대답했다. 상관의 지시라면 법이고 뭐고 없다.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이 국세청의 조직문화”라고 비판했다.
국세청의 어려운 승진구조도 상명하복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2년 9월 현재 국세청의 총인원은 2만14명이다. 정무직 1명을 제외하고, 고위공무원은 34명(0.2%), 3급 14명(0.1%), 4급 309명(1.5%), 5급 1084명(5.4%)을 차지하고 있다. 5급(사무관) 이상으로 승진하기가 무척 어려운 구조다. 현직 국세청 관계자는 “국세청장이 차관급이고, 1급 자리도 서울청·중부청·부산청뿐이다. 정부 기관의 사무관 비율이 15% 이상인데, 국세청은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면서 “1급청이 늘어나야 사무관의 비율이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의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국세청법 신설, 국세청장 임기제 도입 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국세청 개혁에 대한 소신있는 인사를 임명하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크다. 국세청을 포함해 4대 권력기관으로 꼽히는 검찰·경찰청·국정원은 각 기관의 정치적 독립성을 마련하기 위한 법과 임기제가 마련되어 있지만, 정치적 외풍 앞에선 힘을 잃게 마련이다. 홍익대 김유찬 세무대학원 교수는 “국세청법 제정이나 임기제도 국세청 개혁에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있어도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무력화가 되는 게 문제”라면서 “국세청을 잘 알고 개혁적 마인드가 있는 인사가 국세청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도 국세청 개혁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주당 홍종학 의원과 진보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좋은예산센터·복지국가소사이어티·내가만드는복지국가 등의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조세개혁포럼’을 만들려고 준비 중이다. 2월 28일 새누리당 이만우 의원은 ‘세무조사에 관한 법’을 발의했다. 세무조사의 실효성과 공평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전문가가 과반수 이상 참여하는 세무조사위원회에서 세무조사 기준을 승인토록 하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