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불협화음 예상되는 실효성 없는 법안 처리에 적극 협조
통일부가 거꾸로 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들어 급격히 보수화되고 있는 것이다. 통일부는 최근 북한과의 불협화음이 예상되는 ‘북한인권법안’과 실효성이 없는 ‘통일경제특구법안(통일경제특별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등 여당인 한나라당이 제출한 법안처리에 대해 적극 협조하고 있다. 특히 이들 법안이 당정합의안 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가뜩이나 경색된 남북관계에 다시 한번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지금은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개성공단 이외의 민간인 방북이 제한되는 등 남북간의 교류가 사실상 정지된 상태다.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통일부가 파트너인 북한과 적대적인 상태로 치닫는 것을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 이와 관련,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년6개월 동안의 활동을 보면 통일부의 존재가치가 의심스럽다”며 “과연 통일부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일관된 정책을 펼치려는 의지가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통일부가 정부부처 간 합의를 사실상 이끌어 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외통위)에 제출한 ‘통일경제특구법안’을 보자. 국회 외통위 관계자는 “법률소관부처인 통일부에서 다른 부처와 당정협의를 거쳐 조정안을 마련해왔다”면서 “이 조정안을 중심으로 법안심사 소위위원들이 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각 부처 의견들이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국회 전문위원에게 얘기했을 뿐 정부조정안을 내지는 않았다”고 부인했다.
‘통일경제특구법안’은 민원용 법안
‘통일경제특구법안’은 북한의 개성공업지구에 상응하는 통일경제특별구역을 파주, 철원, 강화도 등 남측 접경지역에 설치하여 남·북한 간의 경제적 상호 보완성을 증대하자는 취지의 법안이다. 이에 따라 접경지역인 파주, 강화도 등을 지역구로 갖고 있는 황진하·이경재 의원 등이 지역발전 차원에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 의원은 이 법안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오랜 숙원인 군사보호구역 해제 등 수도권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거기에 인천 송도 경제자유지역과 유사한 통일경제특구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통일경제특구법안’은 지역구 국회의원, 10여개의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 등이 관련된 복잡한 법안이다. 법안소관부처인 통일부 뿐만 아니라 국토해양부, 국방부, 환경부 등이 관련돼있으며, 특히 국방부는 군사보호구역 해제 문제와 관련해 반대가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는 난마처럼 얽힌 부처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해냈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 법안은 일종의 ‘민원용 법안’이다. 지역주민들의 지역발전 열망을 수용하기 위한 법안으로 정치인들로서는 지역주민의 표를 의식해 앞장서서 법안을 내놓을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나서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현 시점에서 굳이 ‘통일경제특구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이유도 없다. 민주당 송민순 의원은 “통일경제특구의 성공은 개성공단을 먼저 성공시키고, 그 성공에 기초해 북측이 볼 때 남쪽 통일경제특구에 북측 인력을 보내도 괜찮을 것이라는 확신을 줄 때만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통일부는 당정협의를 통해 이견을 좁혔으며, 통일부는 최근 정부 조정안을 국회 외통위 법안심사소위에 제출하는 등 법안 통과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통일경제특구법안’은 외통위 소위에서 통일부가 제출한 조정안을 토대로 축조심사를 벌일 예정이다. 축조심사란 국회 외통위 소위위원, 수석전문위원 및 통일부가 법안 조문별로 심의하고 자구를 결정하는 심사다. 이 법안은 소위 의결 후 외통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통일경제특구법’은 그 실효성이 의심받는 등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첫째, 통일경제특구법은 값싼 임금의 북한 노동자들이 통일경제특구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즉 신발, 섬유 등 남한지역에서 이미 사양산업이 된 기업들을 통일경제특구에 입주시켜 북한의 저임금 노동자들을 이용해 수익성을 개선시키겠다는 의도다. 개성공단처럼 남한의 자본과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된 공단을 상정한 것이다. 개성공단의 북측 노동자 최저임금은1인당 55달러다. 기업들이 북측에 제공하는 사회보장료(사회보험)까지 포함하면 1인당 70달러 정도다. 때문에 남한에 있는 내·외국인 노동자들을 이 정도 임금으로 통일경제특구에 끌어들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북한이 체제동요를 우려해 개성공단마저 울타리친 마당에 주민들을 남한 땅인 통일경제특구에 내려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남·북관계 악화로 언제 개성공단이 폐쇄될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으로 내걸었던 ‘나들섬 구상’이 실현되고 있지 않은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나들섬 구상’이란 비무장지대인 경기도 강화군 교동도 북동쪽 한강 하구 퇴적지 일대에 30㎢(여의도 10배 면적) 규모의 섬을 만들어 통신·통행·통관 등의 애로가 없는 남·북경제협력단지를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통일부는 한 때 ‘나들섬 구상’을 추진하기 위한 태스크포스까지 구성했으나, 이같은 구상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개성공단 폐쇄 염두에 둔 법안’ 의구심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결국 파주, 김포 등 접경지역의 개발논리로 통일경제특구안이 나온 것 같다”며 “강원도 고성군이 금강산 관광중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당에 또 다른 남·북협력모델을 꾀하고 있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둘째, 이 법안(21조)에 따르면 북한진출기업이 통일경제특구에 입주하려 할 경우 이에 대해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는 개성공단에 진출한 남측 기업들도 포함된다. 당연히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를 염두에 두고, 그 대안으로 통일경제특구를 조성하려 하거나 폐쇄위기에 처한 개성공단 기업들을 달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정철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가 개성공단이 잘 안 되니까 고육지책으로 나온 것 같다”면서 “정책의 실현가능성 보다는 정책의지를 과시함으로써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달래는 목적이 강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통일부는 “개성공단 입주업체는 (통일경제특구 입주 대상에)포함되지 않는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통일경제특구에는 평양 등 북한 내륙지역에 진출한 기업만 입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셋째, 이 법안(29조)은 통일부 장관은 입주한 내국인기업이 북한과의 물자교역·협력사업 등을 추진할 경우 남북협력기금법에 따른 남북협력기금을 지원 또는 융자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조항도 통일경제특구에 있는 기업과 남한 내 다른 공단지역에 있는 기업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국회 외통위 관계자는 “같은 남한지역에서 기업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통일경제특구 내에 있는 기업들에만 경협기금을 제공한다는 것은 일종의 특혜”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반발이 일자 통일부도 한 발짝 물러섰다. 통일부 관계자는 “소위가 열리면 경협기금을 줘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셋째, 통일부는 통일경제특구 안에서 발생하는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통일부 내에 통일경제특별구역사무처를 설치·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법안 제24조) 그러나 특구 사무처문제는 유일하게 정부 내에서도 조율이 안 된 부분이다. 행정안전부는 정부조직 확대로 인한 공무원 인원을 늘릴 수 없다는 입장이며, 기획재정부는 예산문제로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통일경제특구 사무처가 통일부 소속으로 귀결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여권이 추진하는 ‘통일경제특구법안’에 대해 국회 외통위 전문위원들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지속적으로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외통위 관계자는 “개성공단의 인력문제를 북한과 협의해야 하는 등 실효성이 없다고 누누이 지적했다”며 “하지만 여권이 당정협의까지 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한나라당 황우여·황진하·윤상현 의원 등이 발의한 ‘북한인권법안’에 대해서도 수정의견을 제시하는 등 국회 처리에 협조하고 있다. 국회 외통위 소위는 지난 7월 7일 황진하 법안심사소위원장, 김충환 의원 등 2명이 출석해 ‘북한인권법안’ 축조심사까지 마쳤다. 야당인 민주당 의원이 이에 대해 크게 반발하지 않는 한 ‘북한인권법안’은 소위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축조심사에서는 한나라당 의원뿐만 아니라 통일부 관계자가 배석해 각 조항에 동의했다.
‘북한인권법안’ 명칭부터 자극적
사실상 축조심사가 끝난 ‘북한인권법안’은 기존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발의했을 당시 정부에 북한 주민 인권실태를 조사할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치 등 강경안에서 대폭 후퇴한 법안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문제는 ‘북한인권법’이라는 용어 자체의 상징성이다. 정부 여당이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킴으로써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 인권향상에 기여하는 것이 전혀 없는데도, 북한을 쓸데없이 자극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남한에서의 북한인권법 제정 움직임과 관련, “반공화국(반북) 대결책동을 위한 제도적 장치”라며 강력히 반발해왔다. 심지어 여당인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 조차도 “북측이 체제 위협으로 의식해 주민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시킬 수 있어 오히려 북한 인권 상황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다”며 반대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인권법이 시행되면 북한이 남북대화 등 통일부와 접촉과정에서 반드시 북한인권법 문제를 걸고 나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서보혁 코리아연구원 기획위원은 “북한이 남북대화를 한다면 협상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북한인권법을 거론할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하고 “북한은 이에 대응해 이명박 정부의 표현의 자유 억압과 같은 남한 내의 인권침해 상황을 물고 늘어질 가능성도 크다”고 예측했다.
북한인권법안에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이 발의한 ‘북한인권재단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포함시켜, 북한인권재단을 두도록 한(제15조) 것도 눈총을 받고 있다. 북한인권재단은 북한인권에 대한 조사나 연구 외에 북한인권관련 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통일부가 관장하는 북한인권재단은 정부의 출연금과 보조금으로 운영된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북한인권재단이 정권과 코드가 맞는 단체들만 지원할 가능성 높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북한인권재단이 통일부 퇴직 관료들의 일자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한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북한인권재단 설립이 정부 관료들의 사후보장책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