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러시아 포위한 ‘K-9 자주포’와 ‘9’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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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1일 인천 서구 장도훈련장에서 실시된 17사단 통합방위 실기동훈련. 이날 기동훈련에는 천무, K-9 자주포, K1E1 전차, K55A1 자주포, 수리온헬기, 소방헬기 등 장비 50여대가 참여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21일 인천 서구 장도훈련장에서 실시된 17사단 통합방위 실기동훈련. 이날 기동훈련에는 천무, K-9 자주포, K1E1 전차, K55A1 자주포, 수리온헬기, 소방헬기 등 장비 50여대가 참여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이 만든 K-9 자주포가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하는 상징적 무기로 자리 잡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루마니아도 최근 러시아의 군사적 팽창을 우려해 K-9 자주포를 도입하기로 했다. 루마니아는 한국산 자주포 K-9을 도입하는 10번째 국가다. 나토(NATO) 회원국으로는 6번째다. 10개국 가운데 절반인 5개국이 러시아와 인접하고 있는 국가다. 루마니아는 K-9 자주포 54문과 K-10 탄약운반차 36대, 정찰·기상 관측용 차륜형, 장비탄약 등을 패키지로 2027년부터 도입할 계획이라는 게 제작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설명이다. 총 1조3828억원 규모다.

현재 K-9 자주포를 운용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1999년 계약). 튀르키예(2001년), 폴란드(2014·2022년), 노르웨이(2017년), 핀란드(2017년), 인도(2017년), 에스토니아(2018년), 호주(2021년), 이집트(2022년) 등이다.

■러시아와 ‘K-9 벨트’

국제 무기 시장에서는 수년 전부터 ‘K-9 벨트’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폴란드, 에스토니아, 핀란드, 노르웨이 등 동유럽 및 북유럽 국가들이 K-9을 집중적으로 구매해서 나온 말이다. 이들은 모두 러시아 인접 국가다.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해 앞다투어 K-9 자주포를 도입했다. 결과적으로 K-9이 러시아를 벨트처럼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여기에 루마니아도 가세했다. 통상 무기 도입은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 국가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K-9을 구매했다. 최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급상승한 결과다. 이에 편승해 한국이 K-9 특수 효과를 누리고 있다. 재주(위협)는 러시아가 부리고 돈(수출)은 한국이 챙기고 있는 셈이다.

K방산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K-9 자주포의 수출은 김대중 정부 때 시작했다. 1999년부터 국내에서 양산하기 시작한 K-9은 2001년 터키(현 튀르키예)에 총 280문 수출 계약을 체결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 윤석열 정부에 이르러서는 루마니아 수출로까지 이어졌다.

제작사는 유럽의 분위기가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으로까지 이어져 제2의 ‘K-9 벨트’가 형성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K-9 자주포에 대한 정보를 지속해서 수집하고 있고, 베트남도 관심을 두고 있다. 몇몇 국가는 군 고위관계자들이 방한해 직접 자주포 사격 시범을 참관했다.

수출 초기에 K-9은 고객 요구에 맞춘 ‘맞춤형 수출 전략’을 택했다. 2014년 핀란드가 예산이 부족하다고 하자 한국군이 쓰던 중고 K-9을 정비해 새 자주포의 절반 가격으로 수출했다. 중고 K-9의 수출은 처음이었다. 중국에 맞서는 군사 강국인 인도에는 ‘메이드 인 인디아’ 정책에 맞춰 현지에서 생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호주와도 현지 생산 방식으로 공급계약을 맺었다.

국제 무기 시장의 ‘핫 잇템’으로 급부상한 K-9은 포신 길이만 8m에 달한다. 자주포는 별도의 차량이 필요한 견인포와 달리 스스로 움직이는 화포다. 그만큼 기동력과 화력이 뛰어나다. 사거리 역시 유도탄을 제외하고는 지상화력 중 가장 길다.

지난 6월 21일 오후 인천 서구 장도훈련장에서 실시된 17사단 통합방위 실기동훈련에서 K-9 자주포, K1E1 전차 등 장비들이 기동훈련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21일 오후 인천 서구 장도훈련장에서 실시된 17사단 통합방위 실기동훈련에서 K-9 자주포, K1E1 전차 등 장비들이 기동훈련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 ‘나인(9)’인가

K-9의 이름을 다 풀어쓰자면 ‘K-9 155㎜ 자주곡사포 천둥(Thunder)’이다. 무기 이름은 ‘개념설계’ 때, 설계대로 움직이는지 시험할 때, 전력화할 때 그때그때 조금씩 달라진다. 국방과학연구소(ADD) 화포체계실은 1989년 K-9을 처음 만들 당시 ‘신형 155㎜ 자주곡사포’라고 명칭을 부여했다. 별칭은 ‘천둥’이었다. 이에 따라 ADD는 연구개발을 완료한 1998년까지 10여 년 동안 ‘신자포’ 사업이란 이름으로 K-9의 개발 및 전력화 사업을 진행했다. 신자포는 ‘신형 155㎜ 자주곡사포’를 줄인 말이다.

K-9의 별칭 ‘천둥’은 나중에 튀르키예와 인도에서도 사용됐다. 튀르키예는 기술 라이선스 수출 방식으로 현지 개발 생산한 K-9의 파생제품에 폭풍 또는 천둥이라는 뜻의 ‘프르트나’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도에서는 현지 생산한 K-9에 힌두어로 천둥을 의미하는 ‘바지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호주에서 생산하는 호주형 K-9은 덩치가 큰 거미라는 뜻의 ‘헌츠맨(Huntsman)’, 핀란드에서는 북유럽 전통 무기인 ‘무카리’로 명명했다. 무카리는 슬레지 해머(대형 망치)를 의미하는 단어로, 일본말로 하면 ‘오함마’쯤 된다.

K-9은 모델번호다. 모델번호는 통상 ‘영문부호+숫자’로 구성한다. 1998년 합참이 ‘전투용 적합’ 판정을 내리면서 K-9이란 모델번호를 부여했다. 이전까지 모델번호는 시제품의 테스트 단계에서 붙인 XK-9이었다. K-9 앞에 붙은 ‘X’는 시제(experimental)를 의미한다.

XK-9이란 모델번호가 탄생한 것은 ADD에서 실시한 시제품 테스트 단계였다. K는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대한민국’을 의미하는 영문명 ‘Korea’의 머리글자다. 통상적으로 국내 독자 기술력으로 개발한 무기에 붙이는 알파벳이다. XK-9에서 ‘나인(9)’은 총기·화력무기 시리즈의 9번째 제품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7번째 제품이다. ADD 개발팀은 당시 모델번호가 비어 있던 ‘K-7’과 ‘K-8’을 건너뛰고 한 자리 숫자 단위에서는 가장 높은 K-9을 선택했다. ‘9’란 숫자를 선택해 1990년대에 반드시 신형 자주포를 전력화하겠다는 연구진의 의지가 담겼다. 일부에서는 가장 높은 숫자인 ‘9’를 선택해 최고의 자주포라는 자신감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한다.

자주포는 외관상으로는 기동무기인 전차와 비슷하지만 ‘출생 족보’가 다르다. K-9의 족보는 화력무기 계열이다. K-9에 앞서 국내에서 개발돼 전력화한 화력장비 시리즈로는 K-1 기관단총, K-2 소총, K-3 경기관총, K-4 고속유탄발사기, K-5 권총, K-6 중기관총 등이 있다. 사람의 가문이나 문중으로 비유하자면 K-9의 덩치는 전차만큼 크지만, 권총이나 소총의 동생뻘이다. K-10은 K-9 자주포에 포탄과 장약을 보급해주는 장갑차를 말한다. K-7 소음기관단총은 K-9이 개발되고 난 2003년에 출시됐다. K-8은 아직 이름의 주인을 찾지 못했다.

ADD가 K-9에 155㎜·52구경장의 포신을 채택한 것은 국제간 탄약 호환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이는 개발 초기부터 국제탄도협정을 적용함으로써 수출이 가능토록 고려한 조치였다. 그 결과 자주포 수출 시장에서 K-9은 점유율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국제 무기 시장에서 K방산이 K-9 붐을 타고 마이너리그를 벗어났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K-9은 경쟁 제품보다 가성비가 좋은 점도 있지만, 북한과 오랜 대치상황에서 실전 운용을 통해 성능과 안정성이 검증됐다는 점이 수출에 큰 몫을 했다. 루마니아 수출까지 이뤄지면 K-9 자주포의 누적 수출금액은 13조원을 넘게 된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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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역경루
오늘을 생각한다
용산의 역경루
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