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년간 대한민국 군대에서 여군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던 곳의 문이 또 하나 열렸다. 올해부터 해군 잠수함에 여군 장교와 부사관들이 본격 배치됐다. 군에서 여성의 금단 지역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철책선을 지키는 GOP에도 여군이 있고, 전차에도 여군 승무원이 있다. 적진 깊숙이 침투해 항공기가 정확하게 병력과 장비를 투하하도록 유도하는 여군 공정통제사(CCT)도 있다. 이제는 해상·수중 침투와 타격,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는 해군 특수부대인 특수전전단(UDT/SEAL) 정도가 마지막 ‘금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여군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다. 군도 성평등이라는 사회적 추세를 피해갈 수 없고, 남군만으로는 필요한 군 인력을 충족할 수 없다.
군에서 여군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과 비례해 성평등한 조직문화도 확산하고 있다. 이제는 ‘최초의 여군’ 타이틀도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여군을 소수라는 이유로 우대해 주는 분위기 역시 옅어져 가고 있다. ‘군인은 하나다(One Soldier)’라는 구호 아래 남군과 여군이 동등한 처우를 받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군인은 하나다’
최초의 여군 전투중대였던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 예하 여군 중대는 2014년 해체됐다. 여군 중대원 중 위장요원이나 저격수 등만 707특수임무단에 남겨놓고 나머지 대원은 전국 특전여단에 분산 배치됐다. 여군으로만 이뤄진 중대 편성이 오히려 부대 전투력을 약화하는 ‘보여주기식’ 운영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유사시 국가적 차원의 극비임무 등 각종 특수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707특수임무단에 여군을 몰아넣은 것 자체가 본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전인범 당시 특전사령관의 생각이었다. 특전사의 여군은 ‘여군 중의 여군’으로서 오직 전투력과 실력, 능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녀의 신체조건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남군과 여군이 얼마든지 경쟁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전 당시 사령관의 철학이었다. 전투는 체력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특전사는 부대가 ‘검은 베레모’에서 ‘사나이’란 가사도 40년 만에 뺐다. “아아, 검은 베레 무적의 사나이~”를 ‘전사들~’로 바꿨다.
여군만의 조직은 시대가 흐르면서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고 있다. 1990년 설립된 여군 양성기관 육군여군학교도 2002년 폐지됐다. 육군의 여군 장교 및 부사관 양성은 육군3사관학교와 육군부사관학교로 각각 통폐합됐다. 여군병과도 남군과 함께하는 병과 체계로 재분류됐다. 국군간호사관학교도 이미 남성 사관후보생을 교육하고 있다.
사회문화적 성평등 인식이 뒷받침되면서 여군의 영역이 잠수함 근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여군의 영역 확대가 우리 사회의 성평등 수준을 높여가고도 있다고 볼 수 있다.
■호랑이로 변신한 독거미들
심지어 여군 조직으로 오해를 받는다며 이름을 바꾼 부대도 있다. ‘독거미부대(The Tarantula Unit)’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1경비단 소속 제35특수임무대대(SMB·Special Mission Batalion)의 옛 명칭이다. 육군은 1991년 3월 수도방위사령부에서 대테러 작전을 위한 특수 목적으로 독거미부대, 제35특공대대(SAT·Special Assult Team)를 창설했다. 대테러 초동조치, 요인 경호 등이 주요 임무였고, 지금은 제35특수임무대대가 공식 명칭이다.
독거미부대 창설 3개월 뒤에는 대테러 작전에 ‘여군도 필요하다’고 판단해 여군으로만 이뤄진 ‘특임중대(특수임무중대)’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해서 독거미부대는 제1지역대와 제2지역대, 특임중대 등 3개 중대급을 거느린 대대로 구성됐다. 독거미부대의 특임중대는 707특임단 소속 여군 중대가 해체되면서 대한민국 유일의 여군 중대가 됐다.
독거미부대는 2022년 5월 수방사 직할 조직에서 수방사 제1경비여단 예하로 소속을 바꾸면서 명칭도 ‘태호부대’로 변경했다. 유사시 도심 시가지 전투를 수행하고 수도 서울에서 테러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출동해 대테러 작전을 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대통령실이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청와대를 경비하던 제1경비단도 국가지정 대테러부대가 됐다.
태호(太虎)는 큰 호랑이라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심장인 수도 서울에는 1000만 명에 가까운 인구와 다수의 국가 중요시설이 밀집해 있다. 태호는 이런 서울을 수호하는 가장 강인한 동물이며, 민족의 역사혼을 상징하는 ‘큰 호랑이’라는 것이다. 부대 마크가 독거미에서 강인한 호랑이 얼굴로 바뀌면서, 여기에 충성·명예·단결이라는 대대훈(訓)과 ‘수도 서울을 절대 사수하는 부대’ 등 5대 긍지를 담았다.
부대 명칭을 독거미에서 태호로 바꾼 것은 35특임대대가 여군 대대로 오인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군 안팎의 해석이다. 독거미부대가 남녀 혼성의 대대급 조직으로, 예하 특임중대만이 여군으로 구성됐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이 대대 전체가 여군 부대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어 이를 바로 잡기 위한 차원이라는 것이다.
■그리운 ‘독거미’
여군만의 조직은 없어지는 추세지만 대한민국 유일의 여군 중대인 태호부대의 ‘특수임무중대’만큼은 예외다. 이 부대는 육군 전체에서 사격, 체력, 무도 실력이 출중한 극소수 여군을 선발해 구성한다. 과거 독거미 부대였을 당시 부대 마크에는 다리 12개의 독거미가 그려져 있다. 원래 거미 다리는 8개지만, 부대의 1개 중대급 팀원이 12명인 것을 독거미 다리 12개로 상징했다. 팀원 12명은 중대장 1명, 행정보급관 1명, 행동 부대원 10명 등으로 이뤄졌다. 과거에는 중대장이 독거미 몸통이고, 나머지 부사관 부대원들이 다리 12개를 상징했다는 말도 있다.
여군만으로 구성된 특임중대원들은 태권도, 유도, 합기도 등 무술 유단자들이다. 각종 무술 평균 단수는 6단 정도다. 특임중대는 중대원을 자체 선발할 권한이 있어 주로 임관을 앞둔 초임 하사 중에서 팀원을 뽑는다. 평균 경쟁률은 통상 10 대 1이 넘는다.
특임중대원들은 평시 테러 진압과 요인 경호를 맡는다. 테러 상황이 발생하면 일반 여성으로 가장하고 내부상황을 파악하거나 테러범을 직접 제압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를 위해 임무에 맞춰 화장 등을 하는 분장술과 편의대 교육을 받는다. 편의대란 사복을 입은 일반인 차림으로 목적지에 침투해 임무를 수행하는 임시 특별팀이다. 수방사 소속인 만큼 VIP(대통령) 경호에 주로 나선다. 대통령의 현충원 행사에 사복 차림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특전사가 여군 중대를 해체했지만, 수방사는 여군으로만 이뤄진 특임중대를 유일하게 운용하는 가장 큰 이유다.
다만 적에게 치명적이라는 이미지의 ‘독거미’란 명칭이 사라진 것에 아쉬움을 표하는 군인이 많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