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100만명이 모인다고 했던 지난 11차 촛불시위를 취재하러 갔습니다. 취재하던 와중에 기자가 초대돼 있는 여러 단톡방에 ‘용산 가는 행진 길’에서 찍은 다양한 ‘인증샷’이 올라왔습니다. 딱히 “현장에 있다”고 어디 올리지도 않았는데 한 취재원이 전화를 걸어와 “이 정도 인원이면 얼마 정도로 추산될 것 같냐. 정보과 형사 아는 사람 있으면 물어봐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경찰 추산으론 그날 보수단체의 윤석열 지지 집회에는 3만여명, 윤석열 퇴진 집회에는 1만80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하는데 글쎄요, 시위 참가자가 아닌 ‘관찰자’의 시각으론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 참석자보다 시청역에서 서울역에 이르는 촛불집회 참가자가 2~3배는 많아 보였습니다.
행사가 마무리되고 행진이 시작됐을 때 주최 측에서는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역까지 행진한다고 공지했습니다. 막상 행렬을 따라가 보니 삼각지역에서 훨씬 못 미치는, 남영역에서 조금 올라간 위치에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쳐두고 있었습니다. 집회 참석자 중 애초 목표한 장소까지 가지 못했다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폴리스라인 너머 사정이 궁금했습니다. 겹겹이 봉쇄 중인 기동대를 지나 캄캄한 인도를 걸었습니다. 한 500m쯤 갔을까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집회 현장을 만났습니다. 걸려 있는 노란색 플래카드엔 ‘윤석열 잘한다/이재명 구속’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날 ‘윤석열 지지’ 집회가 열린 지역은 삼각지역 근처였습니다. 대통령실에 더 가까운 장소지요. 말하자면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행진을 막기 위해 만든 봉쇄집회인 셈입니다. 인도 가로수는 이들이 내건 ‘윤석열 지지’ 플래카드로 도배돼 있었습니다.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사진이 인쇄된 플래카드와 피켓들의 제작비용은 어디서 났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집회가 끝난 뒤에도 아마 플래카드들은 남았을 겁니다. 서초동에서 용산으로 출퇴근하는 대통령의 눈에 띄었을지도요.
1주일 뒤 그 시각, 대통령 집무실에서 1.5km 떨어진 이태원에서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이날도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동원된 수천의 경찰기동대는 시위대가 용산까지 행진하지 못하도록 밤 9시까지 폴리스라인을 치고 지켰습니다. 약 한시간 뒤 꽃다운 156명의 젊은 영혼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국민 안전보다 퇴진 목소리가 용산까지 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 우선이었을까요.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