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족에게 ‘문화자본의 안전한 세습’은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다. 급격한 산업화로 ‘먹고 살 만’해지고 역시 급격한 민주화로 ‘표면적으로는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다’고 여겨진 시대였다. 합리적인 전략은 자녀가 변화하는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문화자본을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자녀가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 혹은 자녀에게 집안의 성공을 걸고 투자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당시의 부모세대들은 아직까지는 자녀들이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녀의 어엿한 성공은 부모의 노후에 대한 가장 강력한 투자였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 기대가 충족되지 못할 때 부모와 자녀 관계는 파탄이 나고는 했다.
90년대의 문화적인 다양성 속에서 문화산업이 장려되고, 젊은이들이 소비적 주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녀들에게 소양을 길러주고자 했던 세대적인 의식이 배경에 있었다. 장발 단속을 당했던 시대와 달리, 90년대에는 많은 것이 넘쳐흘렀다. 문화대통령 서태지가 나온 것도 이 시기였으니 말이다.
소위 청년층의 문제라 불리는 것들은 사실 그 부모세대를 관통하는 문제다. 대학 등록금 문제는 단순히 등록금 액수로 환원되지 않는, 한 가계의 경제상황을 의미한다. 자식을 하나 대학 보내는 데에는 등록금만 드는 것이 아니다. 용돈을 제외하고라도 교재비, 영어학원비, 스펙 마련 비용, MT 참가비, 심지어 대학을 다니는 최소 4년 이상의 기간 고졸 이상 임금에 해당하는 기회비용까지 계산에 넣어야 한다. 종종 부모들은 이 비용을 축소해 인식하거나 대학생 자식이 아르바이트를 통해 이를 충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오히려 중산층 부모들은 이 현실을 일찍이 깨닫고 비용을 대줄테니 자식에게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에 차라리 학원을 다니라고 권한다. 휴학하고 어영부영할 바에는 돈을 대줄테니 어학연수를 가라거나, 취업을 못하고 있는 상태를 보다 못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하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지난 대선 투표 독려를 위해 대선후보들의 청년 공약을 분석하는 글을 여러 편 썼다. 생각보다 알려지지 않은 문제들, 더 이슈화하지 못해 아쉬운 쟁점들이 많이 보였다. 이 작업을 했던 이유는 청년 문제가 더 이상 청년의 어려움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다. 청년 문제라고 불리는 것들은 기실 가계의 문제이자, 부모에게 전가되는 사회 구조의 문제이다. 등록금, 취업, 결혼과 출산, 주거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청년 문제는 사실 베이비붐 세대의 생존과 직결된다. 그들은 자녀들이 더 이상 서둘러 돈을 벌어 오지 못하고, 취업과 결혼을 유예하는 것을 봐야 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경제적 조건에 따라 선택을 했을 뿐이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준석 전 비대위원의 접근 방식은 등록금과 불안정 노동 등의 이슈에 집중한 민주당의 김영경 전 청년유니온 위원장보다 더 폭 넓은 제스처를 보인 것 같다. 벤처기업가 출신으로 이번 대선 청년 공약에 참여하기도 했다는 그의 말대로 박근혜 캠프의 청년정책은 고용보다는 창업 지원과 해외 취업 등이 눈에 띄었다. 이번 대선의 결과에서 ‘내 자식이 김영경과 같이 되기보다는 이준석과 같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50대 부모의 바람을 읽어내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것일까? 기성세대는 표면적으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성실하다고 여겨지는 바람직한 청춘의 상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다른 요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야권은 결국 이준석에 대응할 무엇 하나 만들어내지 못했다. 선거 결과만큼이나 이 사실에 낙심하게 된다.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