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지옥’ 중고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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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좋은 중고차는 잘 없다’는 말이 요즘 들어 부쩍 와 닿는다. 믿을 만한 지인에게 아주 헐값에 사지 않는 한 세상에 공짜 같은 건 없는 법이다. 그러나 그럴싸한 매물로 꼬드기면 누구나 뻔히 보이는 거짓말 같더라도 한 번쯤은 혹하게 돼 있다. 소비자 김모씨의 경험을 비롯해 <주간경향> 제1160호에 허위매물 등 중고차 사기 기사를 쓰고 난 뒤 마음이 착잡했다. 당사자는 정말 속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일부 취재원은 “좀 더 세게 비판하지 그랬느냐. 아직도 멀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리고 몇 통의 메일을 받았다. 한 중고차 매매 사이트 대표는 기사를 고치거나 내려달라는 부탁 내지 항의 서한을 보내왔다. 딜러와 중개업체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매매단지 관계자는 자신들이 욕먹을 수 있다며 참고용 자료사진도 지워달라고 요청했다. 중고차 매매업체 대표는 그러면서 “(사이트는) 허위매물을 금지할 것을 명시해 두었으며, 적발 시 처벌 가능 여부도 공지해 두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관리가 허술한 시간대에 허위매물을 올리는 딜러들이 존재하며, 관리자 또한 24시간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BMW코리아가 인증해 파는 중고차 매장 / BMW코리아 제공

BMW코리아가 인증해 파는 중고차 매장 / BMW코리아 제공

기사에도 이미 밝혔듯, 반칙하는 일부 딜러의 사기성 영업으로 일반 중고차 매매업체나 직원들이 뜻하지 않는 피해를 보게 된다. 그보다 먼저 지금도 구매자들이 받고 있을 고통부터 제대로 헤아렸는지 돌아봐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먼저 업체와 딜러가 풀어야 한다. 피해를 주장한다면 사기친 딜러를 잡아내 배상을 청구해야 맞다. 이제 와서 “일부 악덕 딜러만의 문제다. 우리는 모르겠다”고 한다면 ‘선량한 관리자’로서 책임을 상당히 회피하는 측면이 있다.

오히려 여론을 탓하기 전에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는 성숙된 태도를 보여야만 소비자가 다시 발길을 돌릴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시민들은 차라리 대기업이 더 주도적으로 나서라고 요구할 것이다. 물론 대기업 거래라도 무조건 믿기는 힘들 만큼 중고차 시장은 어지럽기 그지없다.

최근 중고차 사기가 새삼 화제가 되자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도 한술 거들었다. 강 장관은 지난 12일 청년벤처 기업가들과 가진 간담회 중에 특히 언론에 보도된 중고차 거래 사기 등에 대해 업계에 보완방안을 마련하고 정부와 적극 협의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딘지 적극적인 태도는 읽히지 않는다. 지자체는 물론 이제 국토부 같은 중앙부처가 나서서 서민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할 때다. 박근혜 정부가 떠들던 ‘4대악 근절’ 따위의 공허한 말 이전에 중고차 매매 같은 피부에 와 닿는 부조리부터 푸는 게 더 절실해 보인다. 예컨대 딜러 사기가 세 번 적발되면 매매업체 면허 취소 같은 ‘삼진아웃제’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근본대책을 세운다면 박수 받을 일이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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