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30% 월급반납 계획, 누구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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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공문 올리면 잡혀가나.” 3월 25일 직장인 앱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이다. 전 직원 급여를 자율반납하라고는 공문이 내려왔는데, 어이가 없어서 그냥 공개해버리면 문제가 될까 하는 푸념 글이다. 이 직장인의 회사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다.

블라인드에 올라온 한수원 직원의 월급반납 공문 폭로 글 / 오늘의유머 캡처

블라인드에 올라온 한수원 직원의 월급반납 공문 폭로 글 / 오늘의유머 캡처

커뮤니티에 올라온 반응을 보면 “올 것이 왔다”라는 댓글이 있다. 댓글을 올린 이들은 모두 공기업 직원들. “올 것이 왔다”는 얘기는 3월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를 비롯해 장·차관들이 급여 30%를 4개월간 반납하기로 결의한 데 따른 ‘예상된 결과’라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과 고통을 분담하자는 취지의 자발적 결정이라고 하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사정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앞서 블라인드에 글을 올린 한수원 직원은 그 ‘공문’을 공개하진 않았다. 기자는 회사 측이 작성한 ‘고통분담을 위한 임직원 임금반납 계획’이라는 문서를 입수했다. ‘반납 추진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되, 3급 이하 직원은 노조와 협의하여 자율동참을 유도한다’라고 되어 있다. 모든 직급은 4월 급여부터 4개월간, 그러니까 4월에서 7월까지 월급의 일정액을 반납하는데 직급에 따라 금액은 연봉의 1~3%로 달라진다. 1·2직급은 개인별 반납동의서를 작성하고, 3·4직급은 노조와 협의를 추진해 반납할 비율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문건엔 자율동참을 ‘유도’한다는데, 이게 자율이 과연 맞을까. 한수원 노조에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노조와 아무런 협의 없이 이런 조치를 실행하고, 대외에 30% 임금반납 자율동참한다고 보도자료를 뿌린 것에 대해 항의성명을 이날(3월 25일) 오전에 낸 참”이라는 것이 노조 측 설명이다. 회사 측 주장은 다르다. 노조와 이미 수차례 협의를 했고, 전적으로 개인 자율판단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참 여부는 급여 담당 부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 치자. 궁금한 건 저 계획안이 회사 경영진 등의 지시 없이 단독으로 작성됐을까라는 점이다.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우리 회사가 처음 시작한 것도 아니고… 취재는 하셨겠지만 기사를 안 쓰면 안 되겠습니까?” 글쎄, 그럴 생각 없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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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