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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말리는 이스라엘 ‘이성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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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선박 무차별 공격에 국제여론 ‘최악의 수’비난 고조

이스라엘이 지난 5월 31일 해군 특공대를 동원해 지중해를 지나던 구호선박을 공격했다. 이미 2008년 말 가자 지구 침공으로 이스라엘의 공격성이 세계에 알려져 있는 상태지만 이번 사건의 파장은 크다. 이스라엘의 오만함과 무법적 행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감이 커질대로 커져 있는 상태에서 저지른 일이기 때문이다.

유엔 안보리 회원국 대표들이 5월 3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구호품을 싣고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로 가던 구호선박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공격받은 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엔 안보리 회원국 대표들이 5월 3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구호품을 싣고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로 가던 구호선박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공격받은 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스라엘 특공대가 구호선단 6척의 배 가운데 선두인 마비 마르마라 호를 공격할 때 이 배에 타고 있던 독일 정치인 아네트 그로스는 “저들은 계획이 이미 있었고, 그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는 “그들은 공포 분위기를 연출하더니 경고도 없이 사격을 시작했다. 힘을 과시하는 것, 가자 지구에 가려 하는 자는 감히 꿈도 꾸지 말라며 위력을 보여 주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고 격분했다.

이라크전의 데자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회의를 열어 6월 1일 미온적, 우회적으로나마 이스라엘의 행위를 비판하고 가자 지구의 살길을 터 주라는 의장 성명을 채택했다. 그 뒤 이스라엘의 반응은 적반하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집권 강경우파 리쿠드당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의 적들이 가자 지구에 계속 무기를 건네려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 “세계가 비난해도 가자 봉쇄는 못 멈춘다”고 큰소리쳤다. 극우파인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 외무장관은 “국제사회가 두 얼굴을 하고 있다”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난 한 달 동안 태국,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이라크에서는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겨우 9명 죽인 걸 가지고 이스라엘을 욕하느냐는 뜻이다.

구호단체 ‘자유가자운동’(FGM)이 선박을 띄우기로 했을 때부터 이스라엘은 ‘충돌’을 예고하고 있었다. FGM은 가자 지구 봉쇄의 문제점을 알리고 세계에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인터넷으로 탑승자들을 모집했다. 탑승자 명단은 사전에 미리 FGM 사이트에 공개됐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탑승자들이 포함돼 있는 터키, 그리스, 키프로스, 스웨덴, 아일랜드의 외교관들을 불러 “FGM의 행위는 도발”이라 주장하면서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한 압력을 넣으려 했다.

이스라엘은 2008년 말 가자 지구를 공격해 초토화시켰다. 이미 그 전부터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고사시키기 위해 봉쇄를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가자는 이스라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남의 땅임에도 가자 해안을 멋대로 접근금지구역으로 설정해 선박 출입을 통제했다. “FGM은 국제 테러집단과 연결돼 있다” “테러 조직 하마스에 전달할 무기를 싣고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스라엘 땅에 짐을 풀어 놓고 검사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FGM이 이를 거부하자 국제사회를 상대로 자신들의 엠바고(금수조치)는 정당하다고 강변했다. ‘홍보’가 통하지 않자 강경 대응도 불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고, 결국 구호선박을 공격해 9명이 숨지는 참사를 일으켰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 이라크전을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든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을 압박한다면서 이라크 남부에 비행금지구역을 만들어 옥죄었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하려 한다는 의혹을 내세워 무기 사찰을 강요했다. 그래도 후세인이 굴복하지 않자 경제 제재로 모든 이라크인의 숨통을 조였다. 이라크가 국제 테러조직과 연결돼 있다면서 위협을 했다. 조작·왜곡된 ‘증거’를 들이대며 전쟁의 당위성을 설득하려 했지만 먹히지 않자 유엔 승인 없이 전쟁을 강행했다.

‘비정상 국가’가 된 이스라엘
로이터 통신은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공격을 미국이 막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스라엘은 미국을 믿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행태를 그대로 흉내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호가호위라 해도 최근의 극단적인 행동들은 도가 지나쳤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지적대로 이스라엘의 행태를 ‘국가테러리즘’이라 부르는 사람이 늘어간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로 향하던 구호선단을 이스라엘군이 공격한 데 격분한 터키인들이 5월 31일 이스탄불 타크심 광장에 모여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로 향하던 구호선단을 이스라엘군이 공격한 데 격분한 터키인들이 5월 31일 이스탄불 타크심 광장에 모여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스라엘을 편들어 온 논자들조차 “최악의 수를 뒀다”고 지적한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네이셔스는 “정부가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현명한 정부라면 그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게 있어야 한다”며 가자 지구 침공으로 고립됐던 이스라엘이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음을 개탄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가자 봉쇄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점”이라고 단언했다. 150만명을 빈사 상태로 몰아가면서 정당성을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자유주의적 견해에 있는 해외 유대인들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당혹스런 상황을 이스라엘 정부가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봉쇄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국제적으로 고립·봉쇄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다. 아집과 오만에 싸여 이스라엘이 ‘비정상 국가’가 됐다는 지적이 많다. 캐나다 작가 겸 사회운동가인 마거릿 앳우드는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에 기고한 이스라엘 방문기에서 “해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동물들이 산으로 치닫고 새들도 나무 꼭대기로 날아간다는데 이스라엘 분위기가 꼭 그렇다”고 적었다. “이스라엘에는 그늘이 져 있다. 그 그늘은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다스리는 이스라엘의 태도다. 이스라엘 자체가 지닌 두려움, 비판에 귀를 닫으려는 시도들이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다.” 유대계 프랑스 지식인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이스라엘을 ‘자폐증’에 비유하면서 “자폐증이 정부의 정책이나 전략이 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현대문학의 거장 데이비드 그로스먼은 가디언 기고문에서 “가자 봉쇄는 도덕적으로는 물론 실질적으로도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이 남을 못살게 굴고 스스로도 동굴 안에 갇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는 방법은 있다. 미국, 이스라엘, 이집트는 2006년 팔레스타인 선거에서 하마스가 합법적으로 집권했음에도 자치정부의 마흐무드 압바스 대통령과 ‘파타’ 정당이 사실상 쿠데타를 일으켜 하마스를 축출하게 만들었다. 하마스는 이에 반발해 2007년 파타와 유혈충돌을 벌인 뒤 가자를 장악했다. 이집트는 하마스 식의 민중 봉기가 자국에 전염될까 겁내 가자 목 죄기에 동참했다. 미국은 말 잘 듣는 압바스를 구슬러 이스라엘과의 협상 자리를 만드는 형식적 중재에만 급급해 했다. 하레츠는 “이스라엘이 이제는 진짜로 가자 지구에 대한 통제와 간섭을 그만둬야 한다”며 당장 봉쇄를 푸는 것이 이스라엘과 국제사회를 다시 이어주는 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국제부·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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