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연금 차별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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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일해야 지급 방침에 “몸이 멀쩡한 실업자 취급” 비난 일어

연방 정부의 장애인 복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 남호주 주 정부의 유인물.

연방 정부의 장애인 복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 남호주 주 정부의 유인물.

장애인에게 다양한 생활 보조비를 제공하는 호주의 세심한 장애인 복지 정책은 세계 어느 선진국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 자국의 장애인 복지 정책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가진 호주인이 많다. 하지만 이러한 자부심이 앞으로도 지속될지 의문이다. 그 이유는 올 7월 1일부터 호주의 장애인 복지 정책이 대폭 변경되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새롭게 바뀔 장애인 복지 정책의 핵심 내용은 “일할 수 있는 장애인은 모두 일하라”는 것. 따라서 거동이 가능한 장애인은 앞으로 정부 보조금을 받으려면 최소 일주일에 15~30시간은 일해야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앞으로 장애인들에게 지급될 정부 보조금 제목이 ‘장애인 연금’이 아닌 ‘실업자 수당’으로 바뀌며 보조금 액수 역시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됐다는 것이다.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 시간당 9달러를 받고 일하는 리자.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 시간당 9달러를 받고 일하는 리자.

호주 정부는 장애인이 혼자일 경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 달에 80여만 원의 생활 보조금을 장애인 연금으로 지급해왔다. 하지만 실업자 수당은 60여만 원만 지급하고 있어, 장애인 연금을 실업자 수당으로 대치하면 20여만 원이 줄어든다.
장애인 연금을 실업자 수당으로 변경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액수만이 아니다. 장애인도 이곳의 실업자처럼 앞으로 직업소개소를 정기적으로 찾아가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실업자 수당마저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장애인 연금 정책은 장애인과 몸이 멀쩡한 실업자를 동등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정책 자체에 이미 차별적인 요소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이런 복지 정책을 고안한 호주 정부를 맹렬히 비난하는 이유다.

구직활동 안하면 지급 중단

하지만 호주 정부는 새로운 장애인 연금제도가 장애인의 사회 적응에 오히려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호주 재무장관인 피터 카스텔로는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올 7월 1일 이후 장애인 연금을 신청할 장애인이 2만 명 정도인데, 이들 중 일부 장애인은 시간제 일을 너끈히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다”며 “새로운 장애인 연금 정책의 목적이 바로 이들 장애인의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직업 알선 정부 부서 책임자인 피터 듀톤 역시 “지금까지 호주 장애인 연금 정책은 실질적으로 장애인의 사회 적응을 돕는 데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며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일방적인 재정 지원이 아니라 그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 대해 장애인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그 이유는 현재 호주 정부가 발표한 장애인 연금 정책은 겉으로 보기에는 장애인의 사회 적응을 돕는 듯하지만, 호주 역시 실업률이 매우 높은 상황에 장애인이 일자리를 얻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기업가도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을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주 국립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밥 그레고리 교수는 “현재 장애인 연금을 받는 호주인 대부분은 55세 이상의 고령자”라며 “이들의 능력에 맞는 직업을 알선하지는 않은 채 무조건 나가 일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벼랑에 선 그들을 아예 떼미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호주 언론에 소개된 리자 메커리(35)의 예는 이런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리자는 3년 전부터 시드니 시내에 있는 한 법률회사에서 사무 보조원으로 매주 25시간 일한다. 그런데 비장애인이 시간당 15달러를 받는 데 비해 리자는 시간당 9달러를 받는다. 따라서 앞으로 호주에서 새로운 장애인 연금 정책이 실시되면 더 많은 장애인이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 값싼 임금도 마다하지 않고 일할 가능성이 커 앞으로 이런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장애인 복지 정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시드니/김경옥 통신원 kelsy0312202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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