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불천탑’ 운주사의 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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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모습을 많이 잃었어도 운주사의 기운은 신비롭다. 저무는 햇살에 천불산의 골짜기는 따사로운 빛이 가득했다.

옛 모습을 많이 잃었어도 운주사의 기운은 신비롭다. 저무는 햇살에 천불산의 골짜기는 따사로운 빛이 가득했다.

해가 서서히 먼 서쪽 산 능선을 따라 저물어갔다. 어느덧 가을이 절정을 지나 겨울로 향해 가는 길목이었다. 전남 화순은 남쪽에 있는 지역이니 가을이 떠나는 마지막을 볼 수 있으려니 했다.

운주사의 앞에는 늘 ‘천불천탑’이 붙는다. 도선국사의 신묘한 능력으로 천계의 석공들을 부려 지었다는 설화가 있다. 그 하루 사이에 1000기의 석불과 석탑을 만들어 올렸다는 이야기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한동안 운주사라는 이름은 구전으로만 전했다. 현재 남은 건 석탑 21기, 석불 93구뿐이다.

대웅전 오른편 봉우리의 와불을 만나러 가는 길. 계단 끝자락에 세워진 두기의 탑이 벌써 마음을 빼앗는다. 너럭바위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계단 끝에 와불이 누웠다. 그 커다란 불상 두기에 마침 노을이 물들어왔다. 와불이 일어나면 세상이 바뀐다고 했던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와불은 평온해 보였다.

좋은 날이 올 거다. 희망을 잃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해라. 불상은 말없이, 그리 말하는 듯했다.

<정태겸 글·사진 정태겸 글 쓰고 사진 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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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