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의 향기를 내뿜는 ‘덕수궁미술관’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덕수궁은 근대 역사의 영욕을 간직한 곳이다. 고종은 아관파천 이후 이 곳에 머물며 나라를 다시 세우려 했고,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은 덕수궁 앞에서 3·1독립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일제는 이후 덕수궁을 공원으로 만든다. 1933년 왕이 머물던 석조전에는 일본 근대미술이 전시된다. 5년 뒤엔 석조전 서쪽에 2층짜리 전시건물이 완공된다. ‘이왕가미술관’이다. ‘이왕가’는 조선 황실을 일본에 편입된 왕공족의 일개 가문으로 격하하는 표현이다.

덕수궁미술관 정면 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덕수궁미술관 정면 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석조전에는 일본 근대미술품이, 신관에는 조선시대 이전 불상과 공예품이 전시된다. “조선인의 작품을 같은 공간에 전시할 수 없다”는 일본 예술가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근대적인 일본 작품과 대조되도록 조선의 작품은 과거의 유물만이 이왕가미술관을 채운다. 일제의 문화가 조선 미술보다 우수하다는 생각을 녹이려는 의도였다.

해방 이후 이왕가미술관은 덕수궁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다 각종 관공서에 자리를 내준다.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문을 열며 ‘미술관’의 역사가 다시 열렸다. 올해 덕수궁관은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이왕가미술관 건립부터 따지면 80돌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를 기념해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 전을 오는 10월 14일까지 개최한다. 전시는 미술관 자체가 지닌 근대의 굴곡과 근대 예술작품들을 한데 조망한다. 또 80년 전 이왕가미술관에 한국의 근대미술품을 한 점도 소개할 수 없었던 ‘설욕’과 ‘한’을 씻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가 특별한 것은 ‘덕수궁미술관’을 하나의 작품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석조전이 대한제국의 상징적 공간으로 주목받은 것과 달리, 미술관은 일본인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이유에서인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설계한 미술관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3분할의 양식을 그대로 도입해 중앙홀을 중심으로 3×3m를 확장한 고전주의 건축미를 뽐낸다. 2014년 11월 일본에서 발굴돼 이번에 처음 일반에 공개된 덕수궁미술관 설계도(1936~1937)를 보면 홀, 기둥, 계단, 브리지 등 건물의 미세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고려됐음을 알 수 있다. 미술관은 건축 당시의 사진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도록 곳곳에 관람 포인트를 마련했다. 덕수궁관 정면, 원형계단, 중앙홀, 브리지 등 ‘덕수궁관 8경’을 선정해 미술관 자체를 작품으로 선보인다.

박수근 <할아버지와 손자>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박수근 <할아버지와 손자>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시장을 채운 작품도 화려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 이후 모아 온 주요 근대 미술 작품이 나들이를 한다. 이중섭의 <투계>,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 고희동의 <자화상>,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 김종태의 <노란 저고리>, 김환기의 <여름달밤> 등 근대미술사를 장식한 굵직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발굴·소장의 뒷이야기도 재미있다. 미술관이 1972년 최고가 100만원에 구입한 박수근 작품과 1971년 20만원에 산 이중섭 작품은 현재 수십억 원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시장의 작품도, 80돌 미술관도 걸작의 향기를 내뿜는다.

<이윤정 올댓아트 에디터>

문화내시경바로가기

이미지
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오늘을 생각한다
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관료 출신으로 경제와 통상의 요직을 두루 거쳐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내고,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다 21대 대통령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사퇴해 공직에서 물러난 자연인 한덕수씨에게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묻는다. 2007년 첫 총리 지명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이 제기한 ‘2002~2003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재직 시절 외환은행 매각 사태(론스타 게이트) 연루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첫 총리직과 주미대사를 역임하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 2012년부터 3년간 무역협회장으로 재직하며 받은 급여 19억5000만원과 퇴직금 4억원, 2017년부터 5년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18억원, 2021년 3월부터 1년간 에스오일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8000만원 등 퇴직 전관 자격으로 총합 42억3000만원의 재산을 불린 일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은 지금도 그대로인가? 이처럼 전관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다시 윤석열 정부의 총리 제안을 수락해 공직으로 복귀한 것 역시 관료로서 부적절한 처신이 아니냐는 문제 인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