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해방된 한글, 어떻게 새롭게 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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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운동가들은 새 시대의 한글은 한자 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 로마자를 쓰듯이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로로 쓰고, 띄어 쓰고, 그리고 풀어 쓰자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었다.

최초의 한글 타자기는 세로로 쓰는 타자기였다. 가로로 쓰도록 만든 로마자 타자기를 구태여 개조하여, 구태여 옆으로 누운 한글 글씨를 찍은 뒤, 구태여 그것을 다시 돌려서 읽게끔 만든 것이다.

어쩌자고 이렇게 많은 ‘구태여’를 무릅쓰고 세로쓰기 타자기를 만들었을까? 한글은 원래 세로로 쓰는 문자였기 때문이다. 돌돌 말려 있는 얇은 종이에 붓으로 글씨를 쓰던 동아시아에서는 두루마리를 왼쪽으로 펴면서 오른쪽부터 세로로 글씨를 쓰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훈민정음도 이 문화 안에서 생겨난 문자였으므로 당연히 오른쪽 위부터 세로로 썼다. 가로쓰기가 일상의 대세가 된 오늘날에도 서예는 세로쓰기가 보통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뒷날 ‘궁체’로 불리게 되는 한글 붓글씨가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되어 오면서, 모음의 세로획들이 시각적인 뼈대를 이루게 되었으므로 세로로 음절들을 이어 썼을 때 더 보기 좋은 것이다.

1920년대 사용하던 옆으로 찍어서 세로로 읽는 모아 쓰기 한글 타자기./경향신문 자료사진

1920년대 사용하던 옆으로 찍어서 세로로 읽는 모아 쓰기 한글 타자기./경향신문 자료사진

받침을 아래가 아닌 옆으로 옮겨 적어

글을 가로로 쓰는 서쪽 나라에서 온 이방인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기록이 남아있는 가장 오래 된 한글 타자기는 사실 미국인이 만든 것이다. 1913년 미국 특허청에 언더우드(Underwood)타자기회사를 대표하여 알라드(J. Frank Allard)가 한글을 찍을 수 있는 타자기의 특허를 출원하여 1916년 승인을 받았다(재미교포 이원익이 1914년 무렵 만들었다는 타자기보다 1년 가량 앞선다). 그런데 미국인이 만들고 미국에 특허를 신청한 이 타자기도 세로쓰기 타자기였다. 한글 자모가 반시계방향으로 90도 돌아가 있어서, 가로쓰기 타자기를 찍듯이 이것으로 글씨를 찍고 나서 종이를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세로 쓴 것과 같은 문서를 만들 수 있다. (여담이지만 언더우드타자기회사가 한글 타자기의 특허를 출원한 까닭은 회사의 설립자이자 사장인 존 토머스 언더우드가 한반도에서 ‘원두우’라는 이름으로 선교를 하던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의 형이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온 서양 사람들이 무조건 관행에 맞추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선교사들은 <성서>와 각종 종교서적들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왼쪽부터 가로 쓰는 서양식 책에 담아내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로마자나 아라비아 숫자와 어울려 쓰려면 아무래도 가로로 쓰는 것이 나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영어의 영향을 받아 구두점이나 띄어쓰기와 같은 새로운 요소들이 도입되기도 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서양 학문인 수학과 과학을 담은 교과서들도 더러 가로쓰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미국은 멀고 일본은 가까워서, 일제강점기가 끝날 때까지도 글은 세로로 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기술적으로는 세로쓰기에 맞춰 발달한 일문의 활자와 조판 및 인쇄 시스템에 한글을 추가해서 쓰는 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다.

최현배가 주시경에게 받은 한글학교의 졸업장. 풀어쓰기로 써 있다. 음가가 없는 초성 이응(ㅇ)을 아예 빼고 쓰는 것이 특징적이다. / 외솔기념관

최현배가 주시경에게 받은 한글학교의 졸업장. 풀어쓰기로 써 있다. 음가가 없는 초성 이응(ㅇ)을 아예 빼고 쓰는 것이 특징적이다. / 외솔기념관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고 일문이나 한문과 구별되는 한글 고유의 쓰기 문화를 만들어 내고자 했던 것이 한글운동가들이었다. 지금의 눈으로는 놀랍게 보일 만한 일이지만, 그들은 한글이 한자나 가나보다는 같은 소리글자인 로마자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새 시대의 한글은 한자 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 로마자를 쓰듯이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로로 쓰고, 띄어 쓰고, 그리고 풀어 쓰자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었다.

가로로 띄어 쓰는 것이야 이상할 것이 없지만, 굳이 풀어서까지 써야 하는가? 현대인의 눈에는 지나쳐 보이겠지만, 주시경과 최현배 등 한글운동의 선구자들은 ‘가로쓰기’와 ‘풀어쓰기’를 사실상 구별하지 않고 하나로 인식했다. 세로로 모아 쓴 한글을 가로로 고쳐 쓰면서 받침을 아래가 아니라 옆으로 옮겨 적는다면 이미 절반가량 풀어 쓴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아 쓴 한글이 네모 안에 부수를 욱여넣는 한자 문화의 잔재라고 보고, 이 속박에서 해방된다면 우수한 소리글자인 한글의 잠재력이 자유롭게 꽃 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컴퓨터 한글은 풀어쓰기 절반의 성공

한글 타자기를 더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가로) 풀어쓰기를 주장한 이들에게 또 하나의 매력이었다. 일본과 중국에서 쓰던 기계식 타자기는 1000여 자의 한자를 담아야 했기에 로마자 타자기와는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속도도 느렸기에 타자기라기보다는 간이 인쇄기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만일 로마자 타자기처럼 빠르고 효율적인 한글 타자기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소리글자인 한글의 우수성을 만천하에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리라는 것이 한글운동가들의 바람이었다. 그렇게 빠르고 효율적인 타자기를 만들려면 아무래도 풀어쓰기 쪽이 유리했으므로, “한글 기계화에 유리하다”는 것은 컴퓨터 시대가 오기 전까지 풀어쓰기를 옹호하는 주요 논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은 한글 전용을 전제로 한다. 한자는 풀어쓰기와도, 빠르고 효율적인 타자기와도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한글 풀어쓰기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미 한자는 더 이상 쓰지 않는 것으로 당연하게 전제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한국 사회에서 한동안 비주류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광복 후에도 1980년대 후반까지 신문이나 공문서 등에 한자를 섞어 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고, 풀어쓰기는 일부 과격한 이들의 망상 정도로 치부되었고 한글 타자기도 중요한 문서를 준비할 때는 뒷전으로 밀려나곤 했다. 1988년 창간한 <한겨레신문>이 순한글 가로쓰기로 신문 전체를 편집하고, 그것이 많은 독자들에게 충격적인 실험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은 한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오랜 논쟁의 역사를 반영한다.

풀어쓰기 자체는 널리 퍼지지 못하고 말았지만, 그것을 주장했던 이들의 정신은 살아남았고 마침내 승리했다고도 볼 수 있다. 오늘날 컴퓨터 등에서 한글을 다루는 방식은 ‘입력은 풀어쓰기, 출력은 모아쓰기’라고 할 수 있다. 낱글자의 크기와 모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전혀 생각할 필요 없이 풀어 쓰듯 글쇠를 누르면, 전자회로가 알아서 모아 써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글 전용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현대 젊은이들에게 한자를 섞어 세로 쓴 1970년대의 신문은 1910년대의 신문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고문서로 다가올 것이다.

20세기 초에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이 이웃 나라의 언어를 잘 몰라도 한자가 많이 들어 있는 문서는 대충 읽을 수 있던 것에 비해서,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일본과 중국의 글을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전혀 읽을 수 없다. 한글이 한자나 가나와 본질적으로 달랐던 것인가? 아니면 달라야 한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달라지는 방향으로 한글을 갈고 닦은 이들의 염원이 결국 차이를 만들어 냈던 것인가?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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