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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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탐색]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의 기억

릴리트
프리모 레비 지음·한리나 옮김 돌베개 펴냄·1만3000원

현대 증언문학의 대표 작가이자 국내에선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로 잘 알려진 프리모 레비(1919~1987)의 단편 소설집 <릴리트>가 국내에서 처음 번역 출간됐다.

36편의 짧은 단편이 수록된 이 책은 소설가로서의 프리모 레비가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책은 ‘가까운 과거’, ‘가까운 미래’, ‘현재’로 이름 붙은 3개의 부로 구성돼 있다. 표제작 ‘릴리트’가 수록된 1부에는 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경험이 담겼다. 그의 전작에서 일관되게 다뤄온 주제이자 작가 자신이 천착해온 화두인 인간과 인간성, 선과 악, 폭력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1부의 제목이 ‘가까운 과거’라는 점에서, 레비에게 아우슈비츠란 언제든 새로 쓰일 수 있고 상기될 수 있는 현재에 밀착한 시간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라고 이름 붙인 2부에는 작가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환상적인 성격의 이야기들이 실렸고, 3부 ‘현재’엔 1부와 2부에서 다룬 이야기들이 혼용돼 있다.

올해 프리모 레비 30주기를 맞아 꾸준히 레비의 저작을 국내에 소개했던 출판사는 레비의 장편 <지금이 아니면 언제?>(이현경 옮김) 역시 새로 펴냈다. 1943~1945년 나치독일과 맞서 싸운 러시아와 폴란드계 유대인 유격대원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레비의 친구가 밀라노의 난민 지원 사무실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러시아 유격대원에게 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1981년 발표한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증언이나 회고가 아니라 실화에 상상력을 더한 레비의 첫 소설이기도 하다. 2009년 국내에 영역판으로 소개됐다가 절판됐고, 이번에 이탈리아판으로 재번역됐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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