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아라! 양심의 가책일랑 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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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탐색]놀아라! 양심의 가책일랑 잊고

놀이하는 인간
노르베르트 볼츠 지음·윤종석 외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1만5000원

출퇴근길 스마트폰 게임이나 일과 중 짬짬이 혹은 몰래 보는 야구경기. 놀이는 우리 일상 도처에 깔려 있지만 놀이에 대한 적대적 시각은 팽배하다. ‘놀지 못해 아픈 이들을 위한 인문학’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우리의 삶과 현대사회에서 천대받고 추방된 놀이를 복원해 학문적 접근을 시도한다.

책은 놀이가 ‘공공의 적’이 된 것은 자본주의적 가치가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되면서부터라고 설명한다. 놀이에 대한 적대가 근대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유럽에서 기독교가 노동을 삶의 우선적 가치로 설교한 이래 19세기부터 이런 흐름이 본격화됐고, 여기에 청교도적 ‘쾌락 적대주의’가 가세하며 부정적 인식이 더욱 강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기반에서 성장한 자본주의 국가는 노동이나 성취와 관련이 없는 놀이와 쾌락에 더욱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독일 베를린공대 미디어학과 교수인 저자는 비록 놀이가 생산성의 측면에서 쓸모없는 것일지라도, 놀이야 말로 삶의 즐거움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하는 행위이며, 놀이를 할 때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된다고 말한다. “놀이는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며, 게임은 우리 삶을 추진하는 모험심과 안정감, 인정, 응답과 같은 소망을 충족시켜줄 가장 훌륭한 도구”라고 놀이를 적극 옹호한다.

저자는 더 나아가 19세기까지는 ‘생산자의 시대’였고 20세기가 ‘소비자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놀이하는 사람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창의적 잠재력으로 우리 현실에 침투하고 있는 것이 바로 놀이라는 얘기다. 아울러 국가주의자들이 죄악, 혹은 중독이라고 공격하는 놀이가 결국에는 돈의 문제이거나 중독에 대한 사회적 용인의 차이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오히려 “놀이를 하지 않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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