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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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탐색]역사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세계의 역사교육 논쟁
린다 심콕스 외 지음·이길상, 최정희 옮김 푸른역사·3만5000원

2006년 10월 역사학자 및 교육학자와 교육 관련 종사자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 모여 소규모 원탁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책은 이 토론회에 참석한 학자들이 발표한 글을 엮었다.

지난 10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대한민국은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낸 자랑스러운 나라”이므로 “대한민국의 우수성을 세계에 전파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자부심과 전통성을 심어줄 수 있는”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토대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역사교육을 통해 애국심을 고양하고 과거를 영광스럽게 채색하려는 시도는 20년 전 미국에서도 있었다.

린다 심콕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교육학 교수는 이 책에 실린 ‘미국 역사교육 과정의 세계화: 국가/민족주의로부터 세계주의로’에서 미국에서 1990년대 중반에 ‘국가 역사 표준’을 채택하여 역사를 애국주의 배양의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움직임을 비판한다. 1989년 미국의 국가인문학기금을 이끌던 린 체니(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의 부인)는 역사교육에서 애국적 가치가 차지하는 위상을 높이기 위해 보수적 교육개혁 프로젝트를 설계했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는 달리 국가 역사 표준 초안에는 여성과 소수자와 빈곤계층의 역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5년 후인 1994년 10월, 그는 국가 역사 표준이 미국의 역사를 ‘어둡고 우울하게’ 만들었다며 공격을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역사의 종말>이라는 칼럼에서 린 체니는 당시 고등학생들이 배우던 역사교과서가 ‘반미국적’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선거를 앞두고 보수세력은 총동원돼 국가 역사 표준을 비판했고, 그 결과 국가 역사 표준은 좌초하게 된다.

린다 심콕스는 역사교육을 애국심 선동에 동원하는 시도를 비판하며 대안으로 세계주의적 접근법을 제안한다. 역사교육의 목적은 유연하고, 개방적이며, 다중적인 정체성을 지닌 세계시민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외에도 이 책에 수록된 다양한 세계의 역사교육 논쟁은 국정화 강행 고시로 이어진 한국의 역사교육 현실과 비교해볼 만하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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