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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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탐색]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오밤중 삼거리 작업실
홍동원 지음·동녘·1만8000원

“논리적이지 않은 것, 순간의 영감이 재현되는 것, 결코 글로써 설명될 수 없는 것, 글과 글보다 빠른 사람의 마음 사이, 그 간극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 베테랑 디자이너인 지은이는 디자인을 이와 같이 정의했다. 디자인은 정형화되고 체계화된 이론과 방법으로 체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정답이 없다. A에서 B가 나올 수도, A에서 C가 나올 수도 있다. 언어로 설명하기가 도저히 불가능하다. “가령 표지에 때려 죽여도 흰색을 넣어야 하는 경우”라면? 이 자연스러운 이끌림을 표현하기에 언어는 부족하다. “일반적인 언어, 정당화된 이론들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통계치에 집어넣는 것은 디자인을 망치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디자인에는 영감이 중요하다. 영감이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다. 삶 자체가 연기적 조건 속에서 일어나듯 디자인도 연기적 조건 속에서 창조된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일상의 소소한 건들이 연속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맞물리는 과정에서 디자인은 탄생한다.” 그러므로 낙서와 스케치야말로 디자인의 첫 단추다. 화장실에서 봤던 낙서가 작업의 길잡이가 되기도 하고,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엉망으로 그린 스케치에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새로운 디자인이 탄생한다.

디자인이 다른 예술과 달리 일반인들의 눈높이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디자인은 예술의 형이상학적인 언어로 포장하는 순간 사기가 된다.” 그래서 명품 열풍도 영 못마땅하다. “디자인이 예술입네 수작을 부리는 것”이고 “소비자를 돈 많은 돼지로 보는 디자인 현상”이라고 일갈한다.

지은이는 검찰청 CI를 비롯해 <국민일보> <스포츠 리뉴얼> 리뉴얼 디자인, <삼성을 생각한다> 등 화제가 된 많은 책들을 디자인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본가의 하청업체 수준을 면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개척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더 많아진다면 디자인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고 진단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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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