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부메랑이 된 서구의 탐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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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탐색]역사의 부메랑이 된 서구의 탐욕

왜 IS는 성공했는가
피에르-장 뤼자르 지음·박상은 옮김·현실문화·1만3500원

인질 참수, 강제결혼, 동성애자 처형, 노예제도 부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야만적 행동으로 세계 여론은 들끓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IS에 동조하는 세력들도 늘어간다. IS는 전투 없이 이라크 수니파 지역의 4분의 3을 점령했다. 지은이는 그 배경에 IS의 능숙한 책략과 정치감각이 있다고 말한다.

IS는 이 지역의 식민지 역사를 강조하며 이슬람인들을 서방 통치자와 이른바 신앙심이 없는 사람들의 한없는 희생자로 표현한다. IS가 야만적 행동을 강행하면서도 동맹세력을 모아 자신의 세력을 확산시킬 수 있는 데에는 이런 정당화 논리가 깔려 있다. 수니파 지역을 점령할 수 있었던 데에도 서구에 의한 희생자라는 정당성에 근거해 자신들이 ‘아랍의 봄’의 진정한 후계자임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철저히 연출된 장면들과 신비주의를 활용해 자신들을 정의의 사도로 치장하고, 중동지역의 식민지 역사를 강조하는 게 IS의 전략이다.

지은이는 IS가 중동지역에서 이슬람 대 비이슬람 구도를 만들어 ‘문명의 충돌’을 이끌어내려고 한다고 말한다. IS가 사무엘 헌팅턴의 주장을 그대로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두 문화 간, 동양과 서양 간, 아랍 세계와 유럽-대서양 세계 간의 갈등이 아니라 이슬람 세력과 비이슬람 세력 간의 거대한 충돌을 만들려는 게 IS의 의도다. 이들의 전략에는 편협한 배타주의를 넘어선 보편성이 있다.

“이슬람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환영해서 가톨릭 출신 파란 눈의 금발 유럽인들도 받아들이고, 아랍인들과 잘못된 이슬람인들을 포함한 불신주의 출신들도 받아들인다.” 프랑스, 영국, 미국과 같은 나라의 부도덕을 힐난하는 IS의 전략은 이라크와 시리아 등 중동지역을 넘어 서방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은이는 IS의 미래에 관해 섣부르게 전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IS가 초기에 거둔 성과의 원인을 살펴보지 않는다면, 그런 역사에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중동을 임의로 가위질하고 배후에서 분란을 조종했던 서구의 탐욕이 IS가 세력을 확대하는 역사의 부메랑이 됐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지적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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