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업계 ‘열정 노동’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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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탐색]출판업계 ‘열정 노동’ 실태

출판, 노동, 목소리
고아영 외 지음·숨쉬는 책공장·1만5000원

동문제가 심심치 않게 이슈에 오르내린다. 그린비출판사의 노동탄압 문제나 쌤앤파커스의 성폭력 사건, 자음과모음의 부당전보 사건 등이다. 출판산업은 영화산업을 비롯한 여타의 문화산업들처럼 ‘열정 노동’으로 움직이고 있다. 노동자들이 급여, 휴가, 노동시간 등 노동조건을 이야기하고 개선해나가기보다는 사명감으로 인내하도록 강요 아닌 강요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출판업계 노동자들은 ‘노동’에 대한 책을 만들지만, 스스로의 노동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왔다. 이 책은 디자인, 영업, 편집 세 분야에서 일한 11명의 노동자들이 각자의 노동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출판업계의 노동권은 열악하다. 책의 부록에는 노동조합이나 노사협의회 등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이 있는지 설문조사가 나와 있다. 전체 응답자 495명 중 노동조합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17.0%(84명)에 그쳤다. 노사협의회(8.3%), 직원협의회·사우회(4.2%) 등이 대체한다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응답자의 대다수인 73.1%(362명)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린비출판사에서 근무했던 고아영씨는 사내에서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던 경험을 기록했다. 노동조합은 한 번에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수차례의 사전 모임과 논의를 거친 끝에 만들어졌다. 오랜 기간 물밑에서 준비 중이던 노동조합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회사는 야근금지 명령을 내렸다. 6시가 되면 회사에서 내쫓기듯 퇴근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업무량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출퇴근 기록기가 설치되고 회사는 지각을 하면 분당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통보했다. 노사갈등은 갈수록 심화됐다. 조합원들은 파주출판단지 앞에서 회사의 문제를 알리는 피켓 시위를 시작했다.

출판사들은 출판계가 어렵다고 이야기하며 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노동력과 인건비를 짜낸다. 그러나 책은 노동권의 보장이 답이라고 말한다. “책 만드는 일을 더욱 완성도 있는 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 요구돼야 하는 건, 일하는 사람에게만 강요되고 포장되는 열정과 희생이 아니라, 제대로 된 노동조건을 제시하고 그 권리를 말할 수 있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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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