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말아야 할 사회민주주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신간 탐색]포기 말아야 할 사회민주주의

20세기를 생각한다
토니 주트,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조행복 옮김·열린책들·2만5000원

20세기는 지나갔다. 20세기는 이념의 시대였다. 홉스봄은 1917년 러시아 혁명부터 1989년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까지를 ‘극단의 시대’로 조명한다. 20세기는 파국적인 세계대전으로 시작해 그 시대의 신념체계 대부분이 붕괴하면서 끝났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보스니아 학살, 스탈린의 권력 장악, 히틀러의 몰락, 한국전쟁. 20세기는 인간의 불행과 집단적 고초가 끊이지 않는 슬픔의 시대였고, 그 배경에는 다양한 이념들의 갈등과 충돌이 있었다. 극단의 시대를 지나 20세기의 최종 승리자는 자유주의가 됐다. 20세기가 출발할 때는 누구도 이러한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는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을 사로잡는 중요한 두 축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가 토니 주트가 20세기를 ‘이야기’한 책이다. 말년에 루게릭 병으로 신체가 마비되어 갔던 토니 주트의 구술을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가 채록했다. 토니 주트는 20세기 최후의 승리자를 19세기 자유주의자라고 말한다. 자유주의 후계자들이 20세기에 복지국가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의 강력한 옹호자다. 그런 점에서 극단적인 시장경제를 옹호한 하이에크식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사회민주주의 체제들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회들에 속하며, 이 중 어느 체제도 하이에크가 국가에 주도권을 넘겨주는 대가라고 보았던 독일식 권위주의로 돌아가는 것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방향으로 크게 나아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 만큼 사회민주주의는 복원하고 강화해야 할 유산이다. “높은 세금을 부과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강력한 민주주의 입헌국가를 만들어냈고, 이 국가들은 폭력이나 억압에 의존하지 않고도 복잡한 대중사회를 품을 수 있었다. 경솔하게 이 유산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바보다.” 그가 마지막까지 강조했던 말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신간 탐색바로가기

이미지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오늘을 생각한다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