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와 몸을 망치는 ‘시간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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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탐색]뇌와 몸을 망치는 ‘시간 스트레스’

타임 푸어
브리짓 슐트 지음·안진이 옮김 더퀘스트·1만5000원

해도 해도 할 일이 줄지 않는다. 언제나 바쁘고 시간이 없다. 늘 피곤하다. 두 아이를 둔 워킹맘인 지은이는 늘 시간에 쫓기는 ‘타임 푸어’ 상황에 “더는 이렇게 못살아”라며 백기를 든다. 그는 유명한 시간 연구가를 찾아가 자신의 생활을 점검하고, 시간을 거슬러 고대 그리스인들이 제안한 ‘좋은 삶’의 모습을 살펴본다. 과학자를 찾아가 우리에게 가해지는 ‘시간 압박’이 건강과 뇌에 치명적이라는 이야기도 듣는다. 워킹맘들의 삶이 힘든 이유는 ‘역할 과부하’도 있지만, 노동 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데, 각각의 역할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의 가짓수가 너무 많고 책임은 무겁다. 2004년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실시한 종합 사회조사에서 6세 미만의 자녀를 둔 엄마들 가운데 여가가 있느냐는 질문에 ‘예’라고 답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육아에 동참하는 남성들이 늘면서 늘 허둥지둥한다고 답한 아빠들의 숫자도 1982년에서 2004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고작 5%만이 종종 여가를 갖는다고 답했다. 게다가 ‘바빠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강박이 됐다.

현대인들은 바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낀다. 한정된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일을 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자신이 다른 사람만큼 바쁘지 않으면 죄책감을 갖고 더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속도를 미덕으로 간주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시간 스트레스’는 뇌와 몸을 파괴한다. 쫓기는 삶은 단순히 마음이 불편하거나 힘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건강을 해친다는 게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지은이는 ‘세계에서 가장 여유롭게 사는 나라’ 덴마크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회가 보육의 책임을 상당 부분 맡고 있으며, 집안일을 구성원들이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문화가 정착됐다는 것이다.

시간 시야를 좁히는 것도 덴마크에서 얻은 해법이다. 먼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시간에 쫓길 때마다 살 날이 5년 내지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자신에게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가 좀 더 명확해지고 시간에 덜 쫓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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